아베의 ‘우경화 폭주’… 안보협력 발 묶여 바라만 보는 한국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일 노골적 ‘과거사 바꾸기’ 뻔히 보고도 말뿐인 대책… 북 위협에 운신 폭 더 좁아

“일본만 상대해선 못 풀어, 동북아서 입체적 접근 필요… 일 양심세력 목소리 키워야”

올해 한·일관계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라는 연륜이 무색하게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주변국을 의식하지 않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의 노골적 우경화 행보 탓이다. 정부는 전략적·외교적 필요에 따라 한·일관계를 이대로 둘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아베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제어장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7일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라고 주장한 2015년판 ‘외교청서’를 발간한 가운데 서울 서대문구 독도체험관을 찾은 학생들이 독도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일본 정부가 7일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라고 주장한 2015년판 ‘외교청서’를 발간한 가운데 서울 서대문구 독도체험관을 찾은 학생들이 독도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은 7일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2015년판 ‘외교청서’를 각의에 보고했다. 올해 외교청서에는 독도에 대해 “역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일본 고유 영토”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한국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등 기본적인 가치와 이익을 공유한다”는 기존 표현도 삭제했다. 지난 6일 ‘한국이 일본의 고유 영토인 다케시마(독도)를 불법 점령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중학교 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연이틀 한국에 고강도 도발을 한 셈이다.

일본의 역주행은 아베 정부의 장기적 국정과제로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과거사를 덮는 대신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을 바꿔 정당화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시에 어디에서나 있었던 보편적 현상으로, 주변국 침략은 근대화를 위한 작업으로 합리화하고 전쟁 배상은 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원조로 치장하는 식이다. 일본은 강력한 경제력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이 같은 역사관을 세계적으로 보편화시키고 부끄러운 과거를 ‘자랑스러운 역사’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배려나 한·일관계 정상화에 대한 의지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아베 정부의 행보에는 한국과 같이 가지 않아도 좋다는 인식, 또는 이래도 한국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은 안보 협력 문제에 발이 묶여 있다. 미국·일본으로 이어지는 군사·안보적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 때문에 일본의 반복되는 역사퇴행적 행태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더욱이 남북관계가 단절되고 북한 위협이 증가되는 상태에서는 더욱 운신의 폭이 좁다. 일본이 교과서 검정결과와 외교청서를 발표하면서 한·일 안보대화가 서울에서 5년 만에 개최될 것이라는 사실을 자국 언론에 흘렸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못한 채 곤혹스러워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의 존재감 확대를 전제로 한 미국의 아시아 전략도 아베의 폭주를 부추기는 요소다. 미국은 사실상 아베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지만, 아베의 행보가 상당부분 미국과 이해관계를 같이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이 같은 외교적 딜레마를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동북아시아에서 운신의 폭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 관계자는 “한·일관계는 일본과 상대하는 것만으로는 풀 수 없다”며 “한·미관계와 남북관계 등 아시아 지역의 다이내믹스를 모두 고려하는 입체적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일본 전문가는 “일본과 당장 관계 개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일본 내 양심세력의 목소리를 키우고 민간교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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