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아프간

카불 거리, 여성들이 사라졌다

김윤나영 기자

외출 땐 해코지당할라 집 머물러

얼굴·몸 가리는 부르카 구매 급증

탈레반, 전 정부 공무원 사면령

유화책에도 아프간 국민들 불안

<b>얼굴 드러난 사진에 페인트칠</b>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거리에서 한 남성이 웨딩 광고 속에 나온 여성 사진을 흰 페인트로 덧칠하고 있다.   톨로뉴스TV 대표 트위터 캡처

얼굴 드러난 사진에 페인트칠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거리에서 한 남성이 웨딩 광고 속에 나온 여성 사진을 흰 페인트로 덧칠하고 있다. 톨로뉴스TV 대표 트위터 캡처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한 첫날인 16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의 거리에는 여성들이 자취를 감췄다. 남성 보호자와 동반하지 않거나 부르카(얼굴을 포함한 전신을 가리는 복장)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레반에 해코지를 당할까봐 두려워한 여성들이 집에 머문 것이다.

현지 매체 톨로뉴스는 탈레반 통치 첫날 카불이 눈에 띄게 변했다고 보도했다. 상점, 기업, 관공서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남녀 행인들로 북적였던 거리에 여성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상점에서 흘러나오던 음악도 들리지 않았다.

카불 시내 한복판에는 미용실이나 결혼식 광고 속 머리카락이 드러난 여성 사진들에 흰 페인트가 덧칠해졌다. TV에 방영되던 외국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은 광고 없는 종교 프로그램으로 대체됐다. 뉴욕타임스는 “인간과 동물의 그림을 허용하지 않고, 음악과 남녀가 함께 있는 것을 금지해온 근본주의 세력인 탈레반이 앞으로 아프간을 어떻게 통치할지 엿볼 수 있는 광경”이라고 분석했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부르카 구매가 폭증했다. 아프간 여성 네긴은 “나에게 부르카는 항상 노예제의 표시였고, 그걸 다시 입는 것을 상상해보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요즘은 목숨을 구하려면 부르카를 입어야 한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부르카는 없어서 못 구하는 물건이 됐다. 한 벌에 200아프가니(3000원) 정도 하던 부르카 가격이 최대 3000아프가니(4만5000원)까지 올랐다.

탈레반은 시내 곳곳에 검문소를 세우고 오후 9시부터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탈레반이 이날 아프간 정부 관리의 자택과 언론사 사무실을 수색해 카불 전역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전했다. 한 20대 여성 공무원은 “탈레반 습격에 대비해 집에 있던 공문서를 모두 불태웠지만 내 대학 졸업장은 차마 못 태웠다”면서 “내 모든 과거의 노력까지 태우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탈레반은 여성 인권 침해로 악명 높다. 여성에게는 남성 동반자 없는 외출을 금한다. 여성 교육과 경제 활동도 금지하고, 비혼 여성들을 강제로 탈레반 대원에게 결혼시키기도 한다. 이슬람 샤리아법에 따라 도둑의 손을 자르고, 간통으로 지목된 여성은 돌로 처형했다.

탈레반은 지난 15일 “히잡(머리카락만 가리는 스카프)을 쓴다면 여성이 학업과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여성 혼자 집 밖에 나가는 것도 허용하겠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16일에는 전 정부 인사들과의 회담을 준비하고, 전 정부에서 일한 공무원들에 대한 사면령을 발표했다. 새 정부 구성 작업에 착수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유화정책을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탈레반이 과거 엄격한 사회 통제 방식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실제 카불 서쪽 지역에서 가족을 위해 음식을 사러 혼자 밖에 나온 할머니를 탈레반 대원이 밀쳐서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시골 지역에서는 여성들에게 강제 결혼 명령이 떨어졌다는 보고도 있다. 대학생 하비바(26)는 “우리가 힘들게 싸워 얻은 성과를 잃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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