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주유소 마비시킨 사이버 공격, 그 뒤엔 이스라엘?

김윤나영 기자
이란 테헤란의 한 주유소에서 27일(현지시간) 기름을 채우려는 자동차들이 줄을 서고 있다. 테헤란|AP연합뉴스

이란 테헤란의 한 주유소에서 27일(현지시간) 기름을 채우려는 자동차들이 줄을 서고 있다. 테헤란|AP연합뉴스

중동의 산유국 이란 전국의 주유소에서 사이버 공격으로 ‘주유 대란’이 일어났다. 기름값 인상에 항의하던 2019년 11월 이란의 반정부 시위 2주년을 앞둔 공격이었다. 이란의 앙숙 이스라엘이 공격 배후로 지목됐다.

이란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전국 4300개 주유소 곳곳에서 26일(현지시간) 기름을 넣으려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이 주유소 밖까지 길게 줄을 서는 일이 벌어졌다. 테헤란 근처의 고속도로 전광판도 해킹돼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우리의 연료는 어디 있나요?”라고 조롱하는 문구가 표시됐다.

이란인들은 보통 국가가 발급한 ‘주유 카드’를 통해 50% 할인된 금액으로 기름을 사는데, 석유부 전산망이 해킹돼 주유소의 카드 인식 기계가 먹통이 됐다. 기다리다 지친 일부 운전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주유 카드 없이 두 배 가격으로 기름을 사 갔다. 이란의 리터당 휘발유 가격은 할인 전 140원 정도다.

이란 정부는 이번 공격이 기름값 인상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 2주년을 불과 몇 주 앞두고 일어나 긴장했다. 2019년 11월 하산 로하니 전 정부가 휘발유 가격을 인상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란에 전국적인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정부의 폭력적인 시위대 진압으로 사망자만 200명이 나왔다.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27일 내각 회의에서 “이번 공격은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켜 분노하는 사람들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하지만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상황을 즉시 처리했다”고 말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피해 복구가 이뤄진 테헤란의 한 주유소를 방문하는 ‘민심 달래기’에도 나섰다. 아흐마드 바히디 내무 장관은 국영 TV 연설에서 “정부는 휘발유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란 관료들은 이번 사태의 배후에 외국이 있다고 말했다. 이란과 이스라엘 매체들은 이스라엘을 공격 배후로 지목했다. 이스라엘 매체 하레츠는 “이스라엘이 과거에는 이란 핵 프로그램을 억제하기 위해 핵시설 등을 직접 해킹했다면, 이번에는 이란 중산층의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방향으로 해킹의 전략을 틀었다”고 분석했다.

이란 해커들도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해킹을 단행했다. ‘모세 스태프’라는 이름의 해커 그룹은 이날 베니 간츠 국방장관을 비롯해 이스라엘 군인 수백명의 개인 정보를 온라인에 유출했다고 테헤란타임스가 보도했다. 이들 그룹은 “우리는 당신이 상상하지 못했을 때 당신을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수년간 서로를 비공식적으로 공격하는 ‘그림자 전쟁’을 수행해왔다. 지난 7월에는 이란 철도가 사이버 공격으로 하루 동안 마비됐고, 4월에는 이란 나탄즈 핵시설 전력망이 사이버 공격으로 파손됐다. 일부 이란 매체들은 이스라엘이 미국의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복원을 방해하기 위해 이란에 해킹을 단행했다고 보고 있다. 이란은 이날 그간 교착상태에 빠졌던 JCPOA 협상을 다음달부터 재개한다고 밝혔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