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여학생 가스테러 용의자들 체포”…늑장 대응 봉합 급급

선명수 기자

4개월 미적대다 최고지도자 “엄단” 하루 만에 검거

“반체제 세력과 연관”…정부 비판엔 계속 재갈 물려

지난 2일(현지시간) 독성 가스로 추정되는 공격을 당한 이란 여학생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독성 가스로 추정되는 공격을 당한 이란 여학생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정보당국이 최근 여학생들을 표적으로 이뤄진 ‘독성가스’ 공격 용의자들을 처음으로 체포했다. 이란 정부는 첫 사건 발생 약 4개월 만에 용의자를 검거했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늑장 대응을 비판하는 언론과 야권 인사들을 탄압하는 등 사태를 봉합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이란 현지 매체에 따르면 마지드 미르 아흐마딘 내무부 차관은 이날 “이란 정보부가 5개 주에서 사건 관련자 다수를 체포했다”며 “진행 중인 조사가 마무리되면 그 내용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시작된 독성가스 공격과 관련해 사건 용의자가 체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통신은 파르스주의 한 학교에서 5명이 체포됐으며, 이들이 반정부 세력과 연관이 있다고 보도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학교와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고 이슬람공화국의 신성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내무부 관계자도 “이들은 최근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전력이 있으며, 외국에 본부를 둔 반체제 언론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번 검거는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사건 ‘엄단’을 주문한 지 하루 만에 이뤄졌다. 그는 “(독성물질 공격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라면서 이 사건을 처음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독성가스로 추정되는 테러는 지난해 11월30일 시아파 성지 도시 쿰의 한 고등학교에서 18명이 이상 증세를 보인 것으로 시작돼 이란 전역의 학교로 확산됐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란 인권단체는 99개 도시의 최소 103개 학교에서 최소 7068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피해 학생들은 냄새를 맡은 뒤 메스꺼움과 숨 가쁨, 두통, 호흡 곤란 등의 증세를 겪었다.

이란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독성가스 공격의 배후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돼왔다. 의료단체들은 지난해 히잡 시위에 참여한 여학생들을 ‘처벌’하고자 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보안당국이 외면하고 있다며, 학생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정부에 촉구했다. 지난해 9월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자, 이란 전역에선 사건의 진상 규명과 여성 인권을 요구하는 히잡 시위가 일었고 반정부 시위로 확산했다. 독성가스 테러는 이 시위와 맞물려 발생했다.

전국에서 벌어진 테러에도 이란 정부는 사건 축소에만 급급했다. 피해 사례가 처음 보고됐을 때 의도적인 공격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겨울철 난방기기 사용에 따른 일산화탄소와 대기오염이 증세의 원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신 보도가 잇따르고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사무소가 투명한 조사를 촉구하자 그제야 사태 파악에 착수했다. 이후 이란 보건부가 피해자들이 ‘확인되지 않은 화학물질’을 흡입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1차 조사 결과를 내놓자, 일부 정부 관리들은 학생들이 ‘집단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부의 늑장 대응을 비판하는 언론과 시민사회에 대한 당국의 탄압도 이어지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란 경찰은 지난 6일 정부의 사건 처리를 비판해온 언론인 3명과 개혁 성향 인사 3명을 소환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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