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진정되자 '이민자 혐오' 카드 꺼내드는 유럽 정치인들

윤기은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이 한풀 꺾이자 유럽 우파 정치인들이 다시 이민자 문제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5일 방역 지침을 사실상 전면 해제했던 영국은 망명 신청자가 망명 지위를 얻을 때까지 입국을 막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스페인 극우 정당도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선거운동을 펼치며 지지율 올리기에 나섰다.

영국 내무부는 6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영국에 망명을 신청한 사람이 망명 지위를 인정받을 때까지 해외에서 머물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적 및 국경법’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에는 영국의 망명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 나라에 대해 비자 발급을 제한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내무부는 “고장난 입국 시스템을 바로잡겠다”며 “망명을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영국 인권단체들은 반인도주의적 법안이라고 비난을 쏟아냈다. 앰네스티 영국지부는 해당 법안이 “망명자의 인권을 치명적으로 해칠 것”이라며 “이 부당한 법안은 영국의 국제적 명성에 수치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난민위원회는 난민이나 망명자들이 그간 영국에 정착해 꾸준히 세금을 내오며 법을 잘 준수해왔다는 점도 언급했다.

덴마크 의회도 지난달 덴마크에 망명을 신청한 이들이 유럽 밖에 있는 국가에 설치한 시설에서 심사 결과를 기다리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타임스오브런던은 영국 정부가 덴마크 정부와 함께 르완다에 망명자 수용소를 세우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해왔다고 지난주 보도했다.

덴마크와 영국의 법안은 국제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 연구자인 미셸 페이스는 두 나라가 ‘망명 신청자 추방은 국가 안보를 해치는 심각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는 유엔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을 위반할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스페인에서도 이민자 혐오를 이용한 정치가 부활하고 있다. 극우 정당 복스는 지난 5월 열린 마드리드 지방선거 운동 기간 동안 지하철역에 백인 할머니와 두건을 두른 아랍인 사진 사이에 “메나(이민자를 비하하는 단어) 한명에 드는 비용은 4700유로, 할머니 연금에 드는 비용은 426유로”라고 써진 광고판을 게재했다. 이주민이 없다면 스페인 시민들이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선전물이다.

시민단체들은 해당 광고가 혐오 표현에 해당한다며 광고 철회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마드리드 지방법원은 지난 4일 “정치적 구호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있다”며 항소심을 기각했다.

스페인 극우정당 복스가 마드리드 지하철역에 게시한 선거운동 광고. 스페인 언론 엘파스 홈페이지 캡쳐

스페인 극우정당 복스가 마드리드 지하철역에 게시한 선거운동 광고. 스페인 언론 엘파스 홈페이지 캡쳐

전문가들은 이민자 혐오 정서를 부추기는 것은 득표를 위한 정치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존슨 정부가 그간 BBC 자금지원 중단과 투표시 유권자 얼굴 확인 등의 정책을 추진하려 했지만 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입법이 흐지부지된 상황”이라며 “정부는 시민들에게 ‘우리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극우 세력이 이민자 혐오 정서를 이용해 다시 득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럽 정당 지지율 추이를 보여주는 폴리티코 폴오브폴스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이민자 혐오 선거운동을 펼친 복스의 지지율은 16%로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던 지난해 7월(12%)에 비해 4%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이들은 카탈루냐 지방선거가 이뤄진 직후인 지난 3월 역대 최고 지지율(18%)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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