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에 맞서 돈 풀자…부메랑이 된 ‘물가 상승’

이윤정 기자

전 세계 인플레이션 적신호

유로존 10년 만에 최고 수준
미국 집값, 자료 집계 후 최고
중남미에선 식량난 걱정까지

각국 빈익빈부익부 더 심화
물가 잡으려 부양책 철회 땐
“경제 빠른 속도 침체” 우려도

전 세계에서 인플레이션 신호가 강력하게 감지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맞서기 위한 각국의 경기부양책이 경제 위기를 넘기는 데 일조했지만 시장에 풀린 돈이 부메랑이 돼 물가 상승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실업률은 팬데믹 이전으로 회복되지 못했고, 소비자신뢰지수도 떨어지는 등 비정상적 호황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세가 뚜렷한 가운데 각국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으려 경기부양책을 철회하면 빠른 속도로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의 인플레이션은 1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로존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3%를 기록해 지난 7월 상승률(2.2%)을 크게 웃돌았다고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2.7%)보다 높은 것으로, 2011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특히 독일은 8월 소비자물가가 2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독일 통계청은 이날 독일의 8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3.9% 상승해 동·서독 통일 후인 1993년 12월(4.3%) 이후 최고 상승률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현지 대중일간지 빌트는 1면에 ‘새로운 인플레이션 쇼크’라면서 “독일 노동자들은 물가 인상률보다 낮은 임금 인상으로 연봉이 깎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물가상승 요인으로 FT는 경기부양책으로 늘어난 현금 유동성과 코로나19가 촉발한 공급 부족 사태 등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내년이면 물가상승 기세가 꺾일 것으로 내다봤지만, 당장 오는 9일 통화정책 회의를 앞둔 유럽중앙은행(ECB)은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채권 매입 속도를 줄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있다. WSJ는 미국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6월 전미주택가격지수’가 전년 대비 18.6% 상승해 자료가 집계되기 시작한 1987년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교외의 대형주택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공급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 데다 자재비와 인건비까지 오르면서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도 지난 7월 전년 동월 대비 5.4%를 기록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에 물가상승률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여전히 실업률은 5.4%로, 팬데믹 이전(3.6%) 상태로 회복하지 못했다. 향후 경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전망을 보여주는 소비자신뢰지수도 8월 113.8을 기록해 지난 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진자 급증과 가파른 물가상승이 각종 경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넘어 브라질에서도 물가상승곡선이 가파르다. FT는 “브라질이 올해 1, 2분기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경제 회복을 이뤄 올해 말까지 5% 이상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하지만 물가와 금리가 치솟고 있어 내년 경기 전망은 어둡다”고 예측했다. 지난 7월까지 1년간 브라질의 인플레이션은 8.99%로, 올해 목표치(3.75%)를 훨씬 웃돌았다.

FT는 다른 중남미 국가들도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물가상승이 식량난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브라질경제연구소 경제학자 앙드레 브라즈는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는 빈부 격차가 매우 심하다”면서 “식료품비 등이 급격하게 오르면 부유한 사람들보다 엥겔지수가 높은 가난한 이들에게 더 큰 충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의 인플레이션 현상은 비정상적 호황 패턴이 뚜렷하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대기업과 고소득층 지갑은 두꺼워지고 있지만 중소기업과 저소득 노동자들은 점점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고르지 못한 경기회복에도 각국 중앙은행이 자산매입 축소를 결정하면 경기침체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짐 오설리번 TD증권 거시전략가는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끝나고 나면 모두가 놀랄 정도로 경제가 빠른 속도로 침체될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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