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영국, 미지근한 독일...유럽 주요국 우크라 대응 온도차, 왜?

정원식 기자
지난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접경 지대에서 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눈으로 덮인 참호를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접경 지대에서 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눈으로 덮인 참호를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영국과 독일이 대조적인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영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이어가는 반면 독일은 무기 지원을 거부하면서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독자적 존재감을 확보하려는 영국과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독일의 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은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해 러시아에 대해 강경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영국 외무부는 지난 22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하고 친러 정부를 세우려 한다고 주장했다. 외무부 성명이 나온 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지난 17일에는 벤 월리스 국방장관이 더타임스에 ‘나토는 러시아를 포위하려는 서방의 수단이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한 뿌리’라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주장을 논박하는 글을 실어 화제가 됐다. 영국은 지난 19일 우크라이나에 개인용 대전차 무기를 등을 제공한 데 이어 병력과 무기를 추가로 지원할 계획이다. 영국 의회는 러시아 침공시 제재를 가하기 위해 법안을 준비 중이다. 영국 외무부는 24일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 직원들이 철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냉전 시기 소련과 적대 관계였던 영국은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와도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2018년 3월에는 영국 솔즈베리에서 전직 러시아 정찰총국 대령과 그의 딸이 화학무기로 독살당하면서 영국과 러시아가 상대방 외교관 23명씩을 추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7월에는 영국 의회 정보안보위원회(ISC)가 브렉시트 국민투표 등 영국 선거에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보고서를 내놔 파문이 일었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맬컴 찰머스 부소장은 뉴욕타임스에 “영국은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이고 어느 정도는 미국과도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면서 “그 배경에는 영국이 독립적인 중견국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생각과 브렉시트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봉쇄 기간 술파티를 열어 사임 압력을 받고 있는 존슨 총리가 우크라이나 위기를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려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가디언은 “총리실이 존슨 총리의 이미지를 술파티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제적) 위기에 적극 대처하는 활력적인 지도자의 모습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독일의 대응은 영국과 대조된다. 독일은 우크라이나의 전함과 대공방어 시스템 지원 요청을 거절한데 이어 에스토니아의 자국에 배치된 독일한 곡사포를 우크라이나로 이전하게 해달라는 요구도 거부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살상무기 수출을 자제하는 것이 독일의 원칙”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독일이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고 있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시 유럽이 선택할 수 있는 제재 옵션이 제한적이고,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중단할 경우 독일도 취약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실제 독일 가스 수입량의 절반 이상이 러시아산이다. 평균 40%인 다른 EU 국가들보다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다. 독일은 탄소배출 저감 차원에서 원전과 화력발전소 가동을 줄이고 있어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독일 싱크탱크인 유럽외교관계협회(ECFR)의 구스타브 그레셀 수석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유럽의 안보 질서가 위기에 처했고 독일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독일 역사학자 카차 호이어도 지난 21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면서 “독일은 나토의 방어 전선에서 약한 고리가 됐다”고 말했다.

영국과 독일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들 사이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미묘한 입장차는 이어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9일 미국을 배제한 유럽 자체의 집단 안보 체제 구축을 강조했다. 아나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미국이 대러시아 제재 방안으로 고려 중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 시스템 배제 카드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EU의 외교를 총괄하는 조셉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24일 “협상이 진행되는 현 상황을 실제보다 더 심각하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우크라니아 주재 외교관 가족을 철수시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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