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중립 논란 휩싸인 클래런스 토머스 미국 대법관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클래런스 토머스 미국  연방대법관과 부인 버지니아 지니 토머스가 2016년 2월 워싱턴에서 열린 안토닌 스캘리아 대법관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후 걸어가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클래런스 토머스 미국 연방대법관과 부인 버지니아 지니 토머스가 2016년 2월 워싱턴에서 열린 안토닌 스캘리아 대법관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후 걸어가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73)의 위치는 독특하다. 그는 역사상 두번째 흑인 대법관으로 현역 대법관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인 31년 동안 재직하고 있다. 그는 6 대 3으로 보수 절대 우위 구조인 대법원에서 가장 보수적인 법관으로 평가된다. 그는 동성결혼 합법화와 성소수자 고용차별 금지에 반대했고, 불법 이민자 자녀 추방 유예 제도 폐지에 찬성하는 등 일관되게 보수 성향의 판결을 해왔다.

토머스 대법관이 최근 미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일주일 가량 병원에 입원하면서 건강 문제가 관심을 끈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그의 부인 버지니아(지니) 토머스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와 CBS방송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 습격 사건을 조사 중인 하원 ‘1·6 특위’로부터 지니가 2020년 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 정국 당시 마크 매도스 백악관 비서실장과 29차례에 걸쳐 주고 받은 문자 메시지를 입수해 보도했다. 이 메시지는 토머스 대법관의 정치적 중립과 직업 윤리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문자 메시지 중에는 “크라켄을 풀어서 좌파가 미국을 끌어내리지 못하도록 우리를 구하세요”라는 내용도 있었다. 크라켄은 북유럽 민담에 나오는 바닷속 괴물이다. 다른 메시지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을 “우리 역사상 가장 거대한 강도짓”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대법원에서 가리겠다고 공공연히 밝힌 상황에서 현직 대법관의 부인이 소송 핵심 당사자들과 기밀히 소통하면서 전략을 조언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지니는 1월 6일 의사당 습격 직전 백악관 앞에서 열린 트럼프 지지 집회에도 참석했다.

토머스 대법관은 한 차례 이혼 뒤 1987년 지니와 재혼했다. 유망한 흑인 법률가와 백인 여성 로비스트의 결합이었다. 토머스는 1991년 조지 W H 부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대법관이 됐다. 지니가 관여하거나 후원한 보수단체가 제기한 소송이 대법원에서 다뤄지면서 비판도 많이 제기됐다. 토머스 대법관은 2000년 대선 개표 시비 관련 재판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손을 들어준 5명의 대법관 가운데 한 명이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당시 지니가 보수 성향 헤리티지 재단에서 부시 대통령 선거 캠프와 정부에서 일할 인사들을 모집하는 일을 했다고 전했다. 지니의 컨설팅 회사는 트럼프 정부 당시 무슬림 입국 금지 운동을 주도한 단체에서 거액을 자문료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토머스 대법관은 무슬림 입국 금지 조치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지니는 지난달 보수 매체인 워싱턴프리비컨과의 인터뷰에서 “클래런스는 그의 일을 나와 상의하지 않고 나도 그를 내 일에 관여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머스 대법관 부부에 대한 미국 여론은 차갑다. 대선 불복 사건은 미국 사회를 두쪽으로 갈라놓은 첨예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부인이 이 정도로 트럼프 전 대통령 측과 가까웠다면 토머스 대법관은 최소한 2020년 대선 관련 사건은 회피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토머스 대법관은 2020년 대선 관련 재판에서 여러 차례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이 지난해 2월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의 대선불복 소송을 각하할 때도 그는 정식으로 심리해야 한다고 소수의견을 냈다.

에미이 클로버샤 민주당 상원의원은 27일 방송 인터뷰에서 “대법관 부인이 반란을 옹호하고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합법적 선거를 뒤집으라고 주장했으며, 이 사건이 남편 앞으로 갈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 “그를 사건에서 기피시켜야 하는 교과서적 사례”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연방판사들은 엄격한 이해충돌 방지 규정을 적용받지만 대법관은 그런 규정이 없다. 토머스 대법관은 부인과 관련해 재판을 회피한 사례가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6 특위에서는 지니를 조사하기 위해 소환장을 발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토머스 대법관 스스로 특위에 출석해 해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토머스 대법관의 보수 일색 판결에 불만이 쌓인 진보 진영은 탄핵을 외치기 시작했다. 여성단체인 위민스마치는 “토머스는 지명되는 순간부터 합리적 법률가라기 보다 직업적 보수 활동가인 그의 부인처럼 행동했다”면서 즉각 탄핵을 요구했다.

만약 토머스 대법관이 물러나고 바이든 대통령이 진보 성향 대법관을 새로 임명하면 미 대법원은 ‘보수 절대 우위’에서 ‘보수 우위’ 구도로 재편된다. 하지만 공화당이 상원 의석 절반을 차지한 현 상황에서 탄핵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1805년 새뮤얼 체이스 대법관이 미 대법원 233년 역사상 유일하게 하원에서 탄핵됐지만 상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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