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4일 근무 시대’ 열릴까···임금 삭감없는 주4일제 실험 들어간 세계 기업들

노정연 기자
영국 런던에서 통근자들이 빅토리아 기차역에서 줄을 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Gettyimages/이매진스

영국 런던에서 통근자들이 빅토리아 기차역에서 줄을 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Gettyimages/이매진스

2년여 간의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난 세계 기업들이 주4일제 실험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임금 삭감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과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이 목표다. 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의 업무 방식이 큰 변화를 맞이한 가운데 주4일 근무가 대세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6일(현지시간) 영국의 은행과 병원, 투자회사 등 70여개 기업들이 임금 삭감없는 주4일 근무제 실험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비영리단체 ‘주4일 글로벌’과 옥스퍼드, 캠브리지, 보스턴 대학 연구진이 기획한 이 실험에는 다양한 업종 종사자 3300명 이상이 참여해 향후 6개월간 주4일 근무를 시행한다. ‘100:80:100’ 모델을 기반으로 했다. 근무 시간은 80% 줄이면서 생산성과 임금은 100%를 유지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골자다. 연구자들은 참가 회사들과 협력해 주4일제 시행에 따른 기업 생산성, 노동자의 복지 여건 변화, 환경이나 성 평등성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측정할 예정이다.

가디언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업무 방식이 완전히 바뀌며 노동자의 삶의 질이 기업 경쟁의 새로운 영역이 됐다고 분석했다. 주4일 글로벌의 조 오커너 최고 운영자는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노동시간 단축과 생산성에 집중하는 노동 방식이 경쟁력을 높여주는 도구가 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주4일제 도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으로 지난 2016년부터 기업들에게 재택근무와 근무일수 단축을 장려해 왔는데, 코로나 이후 주4일 근무가 가능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며 선택적 주3일 휴일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일본 최대 전자업체인 히타치는 직원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주4일제를 도입하며 내년 3월 안에 노동시간을 자신의 근무일에 맞춰 유연하게 배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기로 했다.

일본 최대 전자업체인 히타치는 직원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주 4일제를 도입하며 노동시간을 자신의 근무일에 맞춰 유연하게 배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기로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최대 전자업체인 히타치는 직원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주 4일제를 도입하며 노동시간을 자신의 근무일에 맞춰 유연하게 배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기로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에서 처음으로 주5일제를 도입한 파나소닉홀딩스도 연내 주4일 근무제 시험 도입에 나선다. 초대형 은행인 미즈호파이낸셜그룹과 시오노기제약 등도 희망자를 대상으로 주4일 근무제를 추진한다. 일본의 경우 근무 일수는 줄이되 총 노동시간과 임금은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으로 주4일 근무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일주일에 나흘간 주5일 분량의 근무시간을 채웠다면 평일 하루는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앞서 글로벌 생활용품기업 유니레버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2020년 12월 뉴질랜드사무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주4일 근무를 시행하며 일찌감치 ‘포스트 코로나’ 대비에 나섰다. 독일 정보기술(IT)기업 아윈도 올해 들어 급여와 복지 혜택 등을 줄이지 않고 주4일 근무제를 시작했다.

기업들은 주4일제를 통해 생산성 증대와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노동 시간과 성과가 반드시 비례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만큼 노동자들의 휴일을 하루 더 늘려 집중력과 근로 의욕을 고취시키겠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재팬은 지난 2019년 여름 한달동안 주 4일제를 시범 운영한 결과 직원 1인당 매출이 40%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기 소비량이 23% 줄어들고 직원들의 프린터 용지 사용량은 59% 감소하는 등 환경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시스템 고도화 등 IT의 발달로 근무시간 대비 업무효율이 높아진 것도 노동 일수를 줄이는데 뒷받침이 됐다.

정부 차원에서 주4일제 도입을 지원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벨기에 정부는 지난 2월 노동자의 필요에 따라 주4일 근무(38시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노동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노동자들이 정규 근무 시간 이후에 걸려오는 상사의 전화나 문자에 답하지 않아도 되는 단절권도 보장한다. 스페인과 스코틀랜드에서는 정부가 지원하는 주4일제 시범운영이 시작될 예정이다. 정부가 기업들에 금전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고용주가 손실을 입지 않고도 주4일 근무제 시범 운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50개 주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가 주4일제 법제화에 나섰다.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지난 4월 500명 이상 규모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기존 ‘주5일·40시간’을 ‘주4일·32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줄이는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을 금지하고, 초과근무에 대해선 정규 급여의 1.5배 이상의 수당이 지급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의 노동비용 증가, 노동시장의 양극화 등을 이유로 주4일제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 상공회의소는 주4일제 법안에 대해 “노동비용을 너무 높여 되레 ‘일자리 킬러’가 될 것”이라며 “기업을 죽이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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