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2년

보급은 줄고 피로감 쌓이는데…독재자는 휴가를 가지 않는다

정원식 기자
<b>전선은 진창길</b>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21일(현지시간) 러시아의 공격을 받고 있는 최전방인 자포리자 지역 로보티네 마을의 버려진 장갑차 근처를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선은 진창길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21일(현지시간) 러시아의 공격을 받고 있는 최전방인 자포리자 지역 로보티네 마을의 버려진 장갑차 근처를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년 전 “승리의 빛” 자신했던 우크라군
오판에 전황 역전…서방 관심 중동으로
북 무기 받는 러와 달리 무기지원 지연
최근 전략요충지 아우디이우카 내줘
교착 빠진 전쟁에 여론 지지도 식어가
11월 미 대선 이후 상황도 낙관 어려워
전문가 “휴전 협상, 현실적 수용 필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을 맞은 지난해 2월24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승리의 빛이 보인다”면서 “우리는 모든 영토를 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 발발 2주년을 앞둔 22일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분위기는 1년 전과 딴판이다. 서방의 관심은 중동으로 이동했고, 무기 지원 속도는 우크라이나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전세는 러시아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지난 18일 뉴욕타임스는 1년 전만 해도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러시아의 전략적 패배를 거론했다면서 “지금 돌아보면 그와 같은 낙관론은 시기상조였거나 망상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1년 만에 확 바뀐 분위기, 왜?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6월 대반격을 통해 남부 크름반도와 동부의 러시아 점령지를 잇는 육로를 차단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애초 봄에 시작할 계획이었던 공세가 서방의 무기 지원 지연으로 여름으로 늦춰지면서 러시아에 방어벽을 구축할 시간을 준 데다 전술적 오판까지 겹치면서 우크라이나군은 이후 6개월 동안 7.5㎞를 전진하는 데 그쳤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전쟁은 최근 우크라이나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17일 러시아가 동부의 전략 요충지 아우디이우카를 장악하며 최근 9개월 사이에 최대 전과를 올린 것은 러시아가 우위를 차지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우크라이나군이 수세에 몰린 것은 유럽과 미국의 지원이 약화된 탓이 크다. 유럽연합(EU) 정상들은 헝가리의 어깃장에 가로막혀 애초보다 두 달이나 지연된 지난 1일에야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 예산에 합의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24일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에 요청한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 예산이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혀 넉 달 가까이 통과되지 않으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한 상태다. 미국 싱크탱크 외교관계위원회(CFR)는 지난 17일 정책 브리핑에서 “키이우가 올해 함락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미국의 지원이 없으면 우크라이나는 전쟁에 패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쟁이 길어지면 대러시아 경제 제재가 효과를 발휘해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이 약화할 것이라는 서방의 기대는 오판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마틴 헤렘 에스토니아군 총사령관은 지난달 24일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자원의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면서 “러시아는 연간 수백만발의 포탄을 생산해 유럽을 훨씬 앞지르고 있고 수십만명의 병력을 추가로 동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부족한 물량은 북한과의 거래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지난해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고 이에 이스라엘이 보복 전쟁을 시작한 것도 우크라이나에 악재로 작용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쏠렸던 서방의 관심이 중동 지역으로 급격히 이동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올해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약화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미래에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8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오랫동안 불화설이 제기된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을 경질하는 등 우크라이나의 내부 분열마저 노출되는 등 악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굴욕’인가 ‘현실’인가…휴전 협상 딜레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 휴전 의사가 있다고 밝혀왔다. 지난 13일에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말~올해 초 사이에 미국에 휴전 의사를 타진했으나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협상은 안 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는 로이터통신 보도도 나왔다. 다만 러시아는 전쟁으로 획득한 영토를 포기할 생각이 없고 우크라이나는 영토를 모두 회복하기 전에는 협상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무기 지원이 중단된 데다 미국의 지원이 재개되더라도 오는 11월 미 대선 이후의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휴전 협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윌리엄 갤스턴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2일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에서 “전쟁의 결말에 대한 현실적 고려가 필요하다”면서 우크라이나가 휴전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의 진의를 의심할 이유가 충분하다면서도 “교착상태에 빠진 전쟁을 서방의 여론이 무한정 지지할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짚었다.

실제로 유럽의 여론은 우크라이나의 승전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범유럽 싱크탱크 유럽외교협회(ECFR)가 EU 12개 회원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21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이길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10%에 불과했고 러시아의 승리를 예상한 이들은 20%였다. 37%는 전쟁이 협상을 통해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럽의 대응과 관련한 질문에서도 ‘우크라이나가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응답이 41%로, ‘우크라이나의 영토 회복을 지원해야 한다’는 응답(31%)보다 많았다.

우크라이나 내부에도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들 중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60%)이 ‘협상을 지지한다’는 응답(31%)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으나, 2022년 조사(70%)보다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선에서 가까운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에서는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이 각기 45%와 52%로,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북부(72%)나 서부(71%)보다 확연히 낮았다.

대통령령으로 푸틴 정권과의 협상을 금지한 우크라이나에서 휴전은 금기시된 주제다. 2년간 수많은 희생을 치른 최전선의 병사들에게도 휴전은 받아들이기 힘든 굴욕이다. 반면 전쟁을 무한정 지속할 수 없다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정치학자 볼로디미르 페센코는 지난 18일 가디언 일요판 옵서버 인터뷰에서 “우리가 내년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휴전 협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휴전을 재침공 준비 기회로 삼지 못하도록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불가리아 싱크탱크 자유전략센터의 소장 이반 크러스테프는 지난 16일 파이낸셜타임스 칼럼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일원이 되어야만 일부 영토에 대한 통제권을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상실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7일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독재자는 휴가를 가지 않는다”며 휴전 협상이 필요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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