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성추문 입막음 의혹에 관한 형사재판 이틀째인 16일(현지시간) 그의 운명을 결정할 일부 배심원단이 처음으로 선정됐다. 검찰과 변호인 측의 입장 차로 장시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던 배심원 선정이 예상보다 빨리 이뤄지면서 이번 재판의 주요 단계가 빠른 속도로 추진력을 받게 됐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검찰과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이날 전체 배심원 수 중 3분의 1이 넘는 7명의 배심원 선정을 완료했다. 이날 선정된 배심원들은 남자 4명·여자 3명으로 구성됐으며, 변호사·교사·엔지니어·간호사·세일즈맨 등 다양한 직업과 신분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출신과 인종, 연령대 역시 대체로 다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사법제도에서 일반 시민이 재판 과정에 참여해 범죄의 사실 여부와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배심원의 선정은 매우 중요한 절차로 꼽힌다. 배심원이 누구인지에 따라 사건의 결과가 현저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에서 유무죄를 평결하는 배심원단은 12명으로 구성되며, 추가로 결원이 생길 때를 대비해 예비 인원 6명도 선정해야 한다.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뉴욕 맨해튼에서 열리는 이번 재판에서 트럼프 측은 자신에게 우호적인 배심원을 최대한 가려내는 데 사활을 걸었다. 재판 첫날인 전날 96명의 배심원 후보자 중 절반 이상이 공정하게 판단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로 즉시 후보에서 제외됐다. 이 때문에 배심원 선정이 2주 넘게 소요되며 난항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재판 둘째날인 이날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배심원 선정이 이뤄졌다.
트럼프 측 변호인은 배심원 후보자들이 그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게시글 등을 면밀히 검토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견해와 정치적 의견, 공정한 심리 능력에 대해 질문한 뒤 배심원 선정에 합의했다. 트럼프 측은 과거 이들이 SNS에 썼던 글들을 바탕으로 일부를 배심원에서 제외시켜달라고 요청했고, 일부는 스스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공정하게 판단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선정된 배심원들은 모두 이번 재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정하게 대하겠다고 맹세했다.
트럼프 측 변호인은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담당 판사인 후안 머천 판사에게 경고를 받기도 했다. 머천 판사는 “이 법정에서 어떤 배심원도 위협받지 않게 하겠다. 이 점을 아주 명확하게 하고 싶다”면서 “(예비) 배심원이 당신의 의뢰인(트럼프 전 대통령)에게서 4m밖에 안 떨어졌는데, 당신 의뢰인은 그녀에게 소리가 들리게 얘기했다”라고 주의를 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법정을 떠나면서 “머천 판사가 재판을 서두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다만 이날 배심원 선정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그는 “아직 판단하기에 이르다”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답했다.
머천 판사는 앞으로의 재판 일정이 유동적이지만, 이번 주까지 남은 배심원 선정을 모두 마무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배심원 선정이 수일 내로 완료되면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증인심문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된 4개의 형사사건 중 첫 번째 재판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소 6주로 예상되는 재판 일정 내내 주 4회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 그는 법정 출두 이후 할렘 등에 방문해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