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인간광우병

1990년 5월 존 검머 영국 농림부 장관은 자신의 네살배기 딸과 함께 BBC 방송에 출연해 햄버거를 먹었다. 안전한 쇠고기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는 영국은 광우병 발생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검머는 “광우병이 사람에게로 옮겨진다는 증거는 없다”고 호언했다. 그로부터 17년 후인 지난 10월4일 검머 전 장관 친구의 딸(23)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언론에 보도됐다. 그가 거짓 ‘쇼’를 벌인 것이 뒤늦게 들통난 셈이다. 하지만 이런 대국민 사기극은 1996년 3월 영국정부가 “사람에게 변형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이 발생한 것은 광우병 쇠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인정할 때까지 계속됐다.

[여적]인간광우병

이 변형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vCJD)이 인간광우병의 공식 이름이다. 1913년에 보고된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은 주로 평균 60세 이상의 노인에게서만 발병했고 치사율도 높지 않았다. 그러나 vCJD는 일단 발병하면 1∼2년 안에 100% 사망하는 병이다. 잠복기간은 몇년에서 길게는 40·50년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치사율이 높은 이유는 ‘프리온’ 때문이다. 바이러스처럼 전염력이 있는 프리온이 동물이나 인간의 뇌 속에서 축적되면 세포를 파괴하고 소뇌에 스펀지 같은 조직을 형성한다. 프리온이 소뇌를 파괴하면 기억력 감퇴, 평형감각 둔화와 치매로 발전하며 움직이지도 못하다 끝내 사망한다.

우리를 전율케 하는 것은 vCJD와 유사한 뇌질환들이 ‘동족 섭취’의 결과란 사실이다. 이미 1950년대 뉴기니 포레족을 연구한 미국의 칼턴 가이듀섹 박사는 이들에게 발생하는 치명적 뇌질환 쿠루가 식인풍습의 결과임을 밝혀냈다. 광우병의 발단도 동족의 고기가 섞인 사료였다.

영국의 vCJD 권위자 존 컬린지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교수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과거 오랜 기간 소비한 결과 치명적인 뇌질환이 대량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의 공식 인간광우병 사망자는 162명이지만 1980∼1996년 사이에 수백만명분의 감염된 쇠고기가 섭취됐고 질병이 수십년 동안 잠복해 있는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 맥스 보커스 상원의원의 미국산 쇠고기 시식 장면과 함께 뼈있는 쇠고기까지 무조건 수입하라는 으름장이 생각난다.

〈김철웅 논설위원〉



Today`s HOT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