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뉴타운’ 미봉 말고 미뤄라

김수현 세종대 교수도시부동산대학원

지난 25년 동안 서울의 산동네는 재개발 사업을 통해 사라졌다. 서울시민의 13%가 거주하던 그야말로 서민들의 동네였다. 판자촌은 아파트로 바뀌었고, 주민들은 인근의 낡은 단독주택 동네로 흩어졌다. 당시에도 지금과 똑같은 탄식들이 계속됐다. 원거주민 입주율이 5%도 안 되었으니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하는 문제였다. 철거폭력 역시 그 당시에도 문제였다. 줄잡아 20여명이 재개발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기고]‘뉴타운’ 미봉 말고 미뤄라

이제는 그때 산동네 사람들이 옮겨갔던 곳이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범위는 더 크다. 서울시민의 15%가 영향을 받는다. 서울시 자문위원회가 뉴타운 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내린 결론을 보면 이 사업의 실체는 명백하다. 원거주민의 15% 정도만 다시 입주할 뿐이고, 인근의 전·월세 가격이 오르며 멀쩡한 집을 부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파트는 공급되지만 주민은 떠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돈 한푼 안 들이고 아파트를 가질 수 있다는 선전은 완전한 거짓으로 판명됐다. 뒤늦게 주민들은 속았다며 사업을 중지해달라고 나서고 있다. 지난 대선, 총선에서 정치인들이 앞장서 헛된 꿈을 부풀렸고, 거짓 약속을 남발했다. 그러나 정작 책임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건 안 되는 사업”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이러던 사이 ‘용산 참사’가 터졌다.

그러나 지금 용산 참사의 충격은 온 데 간 데 없고, 거론되는 대안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한나라당 대안은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보상을 많이 해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는 이런 문제투성이 사업의 속도를 더 빨리 하겠다고 한다. 집값이 오르는 것은 아파트가 모자라기 때문이고, 아파트를 공급하려면 뉴타운 사업을 해야 된다는 공식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서민들의 주거지를 희생한다는 사실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오세훈 시장은 자문위원회의 뉴타운 사업 실패 판정에도 불구하고 비겁하게 얼버무리고 있다.

지금 방식의 뉴타운 사업은 불가능하다. 정부나 가옥주 모두 비용부담은 하지 않으면서, 주거환경도 개선하고 세입자도 보호하며 주택가격도 안정시킬 수 있는 그런 환상적인 방법은 없다. 부담 없는 대가가 어디 있는가? 유일한 방법은 공공지원을 늘리면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길밖에 없다. 매년 서울에서만 2조원은 족히 필요하다. 낡은 동네의 도로, 공원, 임대주택 공급에 꼭 필요한 돈이다. 이게 있어야 서민들의 재입주가 가능하다. 만약 정부가 당장 댈 형편이 안 된다면 사업을 미루는 것이 정답이다. 당장 뉴타운 안 한다고 나라가 어찌 될 일도 아니다. 잘못된 줄 뻔히 알면서도 얼버무리고 가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문제의 원인도 알고 있고, 해답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모른 척 넘어가려 할까? 잘못된 이들 사업이 가져온 고통이 작아서일까? 혹은 고통을 빨리 잊으려고 기억이 멈춘 것일까? 이번에도 미봉하고 넘어가면 확실한 기억을 위해 더 큰 고통을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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