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오선 웰스의 영화 <시민 케인> 개봉

백승찬기자

영화사에 획을 그은 작품

역사상 최고의 영화는 무엇일까.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권위 있는 리스트들 중 상당수가 오선 웰스가 주연·감독한 1941년작 <시민 케인>을 1위에 놓는다.

[어제의 오늘]1941년 오선 웰스의 영화 <시민 케인> 개봉

<시민 케인>은 한 기자의 시점에서 언론 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의 삶을 재구성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케인은 ‘로즈버드’라는 말을 남긴 채 숨을 거둔다. 가난하지만 순진무구한 아이였던 케인은 예기치 못한 유산을 상속받는다. 야심만만한 청년으로 자라난 케인은 신문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뒤 성공을 거두지만 결혼생활에는 실패한다. 정계에도 입문했으나 빛을 보지 못한 케인은 자신의 대저택에 틀어박혀 쓸쓸히 말년을 보내다 세상을 뜬다. 기자는 ‘로즈버드’의 의미를 끝내 알아내지 못하지만, 관객은 어린 시절 케인이 즐겨 타던 썰매 이름이 로즈버드란 사실을 마지막 장면에서 본다.

영화는 당대의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삶에 기반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허스트는 <시민 케인>의 개봉을 막기 위해 압력을 가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자신이 소유한 수십개 언론사에서 이 영화를 언급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이 때문인지 <시민 케인>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고, 오선 웰스는 이후 다시는 <시민 케인>같이 많은 예산을 들인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

<시민 케인>은 여러 가지 점에서 영화사에 혁신적인 작품이다. 이전까지 영화는 화면의 특정 부분에만 초점을 맞췄지만, <시민 케인>은 화면의 전경, 중경, 후경을 모두 명확히 보여주는 ‘딥 포커스’를 실현했다. 딥 포커스 덕에 영화는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는 ‘텍스트’가 됐다. 또한 <시민 케인>은 영화에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방식, 음악·음향 사용 등의 면에서 모두 과거의 영화와 단절하는 창의성을 보여줬다.

오선 웰스가 데뷔작 <시민 케인>을 내놓았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5세였다. 이 조숙한 천재는 <시민 케인> 이전에도 ‘사고’를 친 적이 있다. 한때 라디오 드라마 연출가로 일했던 오선 웰스는 HG 웰스의 <우주 전쟁>을 연출했다. 라디오 버전 <우주 전쟁>이 워낙 실감나게 꾸며진 나머지, 청취자들은 실제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한 줄 알고 놀라 거리로 뛰쳐나오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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