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금융이 그라민은행처럼 되려면

이선근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대표

저신용계층이 80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를 틈타 대부업체와 상호저축은행, 신용카드사들이 연 49%에 육박하는 고리대이자를 노리고 그물을 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원회가 지난 17일 발표한 ‘미소금융중앙재단’을 출범시킨 것은 오랜 가뭄 끝에 단비 같은 소식이라 할 것이다.

미소금융재단을 이야기하며 정치권에서 제일 먼저 꺼내는 말은 유누스 총재의 그라민은행이다.

“인간이 달에까지 가는 세상에 어째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가슴에 안고 최빈국 방글라데시의 유복한 경제학 교수는 24달러를 가지고 시골(그라민)로 침투(?)한다. 왕골바구니를 만들며 살아가는 빈민여성들은 단 1달러의 왕골구입자금이 없어 바구니를 판 돈을, 100%가 넘는 이자로 왕골구입자금을 빌려주는 마을 고리대업자에게 바쳐야 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유누스 총재의 1달러 대출금의 도움으로 고리대업자의 횡포에서 벗어난 빈민여성들은 유누스 총재와 뜻을 함께하는 치타공대학 학생들과 함께 자립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간다.

필자는 10년 전부터 가계부채 SOS운동을 전개하며 서민금융생활보호제도 도입을 추진해 왔다. 그 과정에서 신용이 낮은 서민이 의지할 수 있는 은행이 하나만 있어도 이런 참극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미소금융재단이 생긴다고 하니 어찌 가슴이 울렁거리지 않겠는가? 그것도 물경 2조원의 자금조달계획까지 내놓는다니 말이다.

그러나 필자에겐 몇 가지 걱정이 밀려든다.

첫째, 저신용층에 대한 금융위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점이다. 한편에서는 49%라는 세계 최고의 금리를 합법화하여 고리대대부업체를 육성하고 금융기관도 ‘하이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며 고금리약탈을 해도 방치하고 있으면서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민간기업들의 돈을 내놓으라는 정책은 병 주고 약주는 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은행 퇴직 인력을 재단운영의 중심인력으로 해 저신용자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점이다. 유누스 총재가 절절히 겪은 바 있는 은행의 고답적인 태도는 평생을 은행원으로 지낸 분들의 직업윤리다. 만일 그렇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그것은 은행의 정신에 투철하지 못했던 분들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분들의 연체에 대한 걱정과 적개심은 저신용층에 대한 구제의지를 초월하게 마련이어서 저신용층의 자립을 충분히 기다려줄 자세가 결여된 분들이다.

금융위가 진정으로 저신용층의 자립을 걱정한다면 위 두 가지 필자의 걱정을 진지하게 검토해 주기 바란다.

일본은 이자상한선을 15~20%로 대폭 낮췄을 뿐만 아니라 금융당국이 대부업체에 대해 즉각적인 업무개선명령까지 내릴 수 있도록 고리대 횡포 규제강화에 나서고 있다. 또 한국에서는 퇴직은행원들이 아니라도 유누스 총재의 뒤를 잇겠다며 저신용층 지원에 온힘을 기울여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년 후 2조원에 달하는 기금을 정말 효율적으로 사용했는가는 질문을 받을 때 금융위원장의 당당한 ‘미소’를 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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