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춤과 노래로 피어나고

이종민 | 전북대 교수·영문학

일본 노동요 ‘시라가와와지마’

[이종민의 음악편지]그리움은 춤과 노래로 피어나고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에 전통문화의 봄바람이 제법 훈훈합니다. 우리 대표적인 전통문화의 일상화, 세계화, 산업화를 주도할 한스타일진흥원이 꽃샘추위의 심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공의 깃발을 힘차게 날리더니, 아시아·태평양 무형문화유산의 보존과 전승을 위한 중심(허브) 역할을 톡톡히 해나갈 전당도 산수유와 매화의 산뜻하고 진한 축하를 받으며 가상한 출범의 북소리를 울렸습니다.

전통문화가 ‘오래된 미래’임을 웅변해줄 한스타일연구개발본부가 들어선 것만도 반가운 일인데, 국내 유일의 국제기구가 될 아태무형문화유산전당이 전주 한옥마을 언저리에 들어서 ‘전통문화중심도시’ 전주를 마음껏 시위하게 되었으니 한 모퉁이에서 이를 거들던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위기가 기회라던가? 산업화 소외지역이 이제 전통문화를 앞세워 문화도시로 당당하게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반전의 드라마는 세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 중북부에 있는 시라가와코도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1년 중 4개월 이상이 눈으로 뒤덮이는 곳,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와의 소통이 어려운 육지 속의 섬. 그 덕에 가쇼즈쿠리라는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주거형태를 지금까지 잘 지켜낼 수 있었으며 1995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까지 하게 되었으니 긍정적 상전벽해의 극적인 예라 할 것입니다. 이제는 관광명소가 되어 전 세계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강조하지만 눈앞의 ‘실용’에 눈 어두워 ‘삽질’ 함부로 할 일이 아닙니다.

전통문화도시 전주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 나선 일본 전통문화도시기행. 나라와 다카야마 등의 지속적이며 치밀한 전통문화정책에 주눅들고 4대강에 실종되어버린 우리 문화정책에 한숨만 내쉬게 되었지만 이곳 두 손을 맞댄 모습의 띠집(合掌造)에서의 1박은 그 모든 것을 잊게 할 만큼 아늑하기만 했습니다. 주인 내외의 아기자기한 주도권 다툼도 정겨웠고 전 마을회장님의 너스레도 고향의 포근함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눈이 쉽게 흘러내리라고 급한 경사를 준 지붕 위에 덩그러니 걸린 달, 그 달빛 아래 드러난 아득한 설산도 번다한 세상사를 잊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더욱 반가운 것은 이 동화 속 마을 같은 곳에도 그곳에 어울리는 ‘아리랑’이 있다는 점입니다. 눈이 많이 쌓여 다른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집안 난로(이로리) 주변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춤을 곁들여 부르는 노래. 물론 사미센 반주는 빠질 수 없는 것이고요. 외부와 단절되어 수백 년 세월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이제 이곳은 그들 나름의 독특한 민요의 보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그중 대표적인 민요를 ‘전주의 잔치’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시라가와와지마>라는 노래인데 노토(能登)반도의 와지마를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아리랑만큼이나 그 가사가 소박합니다. 겨울철에 이곳으로 돈 벌러 왔던 와지마 사람들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가쇼즈쿠리의 상량식이나 지붕갈이가 끝난 후의 뒤풀이 등에서 불리던 일종의 노동요라 하겠습니다. 이 합장 띠집은 매우 규모가 커서 십수 년 만에 한번 마을 전체 주민이 모여 지붕교체를 해야 합니다. 지금은 전 세계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여 축제 형태로 진행되는데 이때 부르는 노래 중 대표적인 것입니다. 막걸리(도부로쿠)축제의 제례나 결혼식 피로연 등에도 빠지지 않는 노래랍니다. 사미센과 큰북, 피리, 죽박(대나무 조각으로 만든 일본 전통악기)들의 반주가 곁들어진 선율이 단조롭고 반복적이지만, 노동요 특유의 신명과 애틋함의 정서가 묘하게 섞여 있는 그리움의 노래입니다.

이 곡 들으시며 ‘실용’으로 내팽개친 소중한 그리움의 마음 되살리기 바랍니다. 세월을 핑계로 무심함이 습관이 되어버린 연인(부부)들이라면 ‘잔도코이 잔도코이’(이 말은 ‘어서 오게’라는 뜻이랍니다), 흥얼거리며 이 합장집을 찾아 두 손을 모아보라고 권하고도 싶습니다. 그것이 어려우면 전주 한옥마을의 뜨듯한 구들에 함께 누워 보시든가요.

※ 음악은 경향닷컴(www.khan.co.kr) 또는 이종민 교수 홈페이지(http://leecm.chonbuk.ac.kr/~leecm/bbs/zboard.php?id=mletter)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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