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년 영국의 존 왕, 마그나카르타 승인

유정인 기자

‘울며 겨자먹기’로 대헌장에 도장

조카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선대에서 어렵게 쌓은 대외 영토 대부분을 잃어 무지(無地)왕, 실지(失地)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선 프랑스와의 전쟁에서는 참패했다. 교황과 다투다 파문당했다. 영국 역사상 가장 못난 왕으로 불린 존 왕 얘기다. 그럼에도 그는 역사에 족적을 남겼다.

[어제의 오늘]1215년 영국의 존 왕, 마그나카르타 승인

일반적 영웅들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1215년 6월15일 존 왕은 윈저성 근처 러니미드에서 ‘영국 헌법의 성경’으로 꼽히는 ‘마그나카르타(대헌장)’에 도장을 찍었다.

물론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다. 존 왕의 잇따른 실정과 과도한 조세에 반발한 귀족들은 급기야 무력봉기를 일으켰다. 이미 국민들은 왕에게서 등을 돌린 터였다. 결국 존 왕은 귀족대표와 회합해 그들의 요구사항이 담긴 마그나카르타에 ‘울며 겨자먹기’로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왕 역시 법에 종속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순간이었다.

마그나카르타에는 교회의 자유, 봉건적 부담의 제한, 재판 및 법률, 도시특권의 확인, 지방관리의 직권남용 방지 등 63개조가 포함됐다. 이 조항들이 귀족들의 새로운 요구사항은 아니었다. 봉건시대 귀족들이 군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며 받는 권리를 재확인한 것이었을 뿐이다. 당시 피지배층인 농민들은 애초에 이 문서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마그나카르타는 보통 사람들의 법적 권리를 확인한 역사적 문서로 평가받고 있다. 마그나카르타 제3조는 귀족 전체회의의 승인없이 군역대납금이나 특별보조세를 징수하지 못하도록 규정했으며, 제39조는 ‘자유인’은 정당한 합법적 절차 없이 구속되거나 투옥되거나 재산을 박탈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국법에 따른 과세와 재판의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마그나카르타의 정신은 4세기 뒤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한 권리청원(1628)과 권리장전(1689)으로 이어지며 근대 민주주의 헌법의 토대로 자리잡았다. 현재 남아있는 1215년 헌장 4부 중 2부는 대영박물관에, 2부는 각각 링컨 대성당과 솔즈베리 대성당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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