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의 귀환’을 기다리며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오랫동안 새벽에 수산시장에 다닌다. 아침에 자명종이 울면 정말 지옥의 호출 같지만, 불 환하게 켜 놓고 경매하는 시장의 활력이 떠올라 근근이 몸을 일으키곤 한다. 특히 물이 좋아 탐나는 생선과 해물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불끈 옷을 꿰입는 것이다. 싱싱하다못해 거의 무지개빛으로 투명한 오징어는 몸을 둥글게 부풀리고 아직도 탱탱하다. 오징어가 오래되면 내장과 살의 탄력이 죽으면서 납작해지기 때문이다. 키조개는 철이 지나서 색이 나빠지고 있지만 아직은 싱싱하고, 멍게도 제철은 아니지만 알싸한 맛이 먹을 만하다. 조개는 한여름을 벗어나면서 제맛을 살살 올린다. 아시겠지만 조개는 봄가을이 제철이니까 말이다. 홍합은 여름을 넘기며 고전했는데, 요즘이 알이 굵고 맛이 진할 때다. 독소가 발생한 지역은 위판 자체가 금지되므로 시장에 나오는 건 안전하다. 그저 바락바락 씻어서 찜을 해먹기엔 오히려 가을 초입인 요즘이 더 진한 맛이 나는 듯하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꽁치의 귀환’을 기다리며

낙지는 그야말로 제철을 만나기 직전으로 단단하고 기름지게 몸을 불리고 있을 것이다. 여름 동안 먼바다에서 놀다가 가을에는 갯벌로 와서 마구 살을 찌운다. 그래서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고 하는 것인가 보다. 산낙지가 비싸면 철사로 코를 꿰어 파는 코낙지도 싱싱하고 좋다. 매콤한 낙지볶음이 당기는 계절이 당도할 것이다.

문어는 몇 해 동안 최악이었다. 수요는 느는데 공급이 모자랐다. 요즘 반짝 자그마한 왜문어가 시장에 깔린다. 문어는 원래 5㎏ 내외의 적당한 크기가 맛이 좋다고 하는데, 식구 수가 적어서 큰놈을 살 수 없었던 형편이라면 지금 사기에 적당한 크기가 아닐까 싶다.

일본 방사능 여파로 도미와 고등어는 수요가 줄고 있다고 한다. 방사능 검사를 철저히 한다고 해도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바다 고등어가 나오는 가을 제철을 마다할 수 없다. 고등어는 여름 산란철을 끝내고 한동안 살이 없더니 요즘 바짝 기름이 오르기 시작했다. 지지거나 구워 먹으면 정말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 또 있나 싶다. 나는 이 고등어로 스파게티 요리를 한다. 로마의 가난한 서민들이 먹는 전통적인 스파게티다. 살져서 배가 불룩한 고등어를 들어보니 묵직하다. 요리사로서 가장 행복한 때다. 전어가 철이 시작됐다고 얘기했던가. 구워서 머리를 깨물었더니 맛이 제법 들었다. 시장에 나오면 ㎏에 5000원까지도 살 수 있을 만큼 물량도 풍부하다. 그저 비늘을 벗기고 석쇠에 굽기만 하면 맛있는 제철 전어구이다.

그런데 한때 흔하던 것이 안 보인다. 정어리가 대표적이다. 너무도 싸고 흔해서 개도 안 물어간다던 정어리가 이젠 귀품이다. 등이 푸르고, 고등어 못지않게 고소하게 기름이 올라 있던 녀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또 하나, 아무 때나 상에 오르던 그 흔한 우리 바다 꽁치도 왜 그리 귀해졌을까. 싱싱해서 표면의 푸른빛이 찬란하게 빛이 나던 꽁치들은 언제 귀환할까. 속을 알 수 없는 바다, 그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늘 불안하다. 그래도 오늘도 바다는 생선을 우리에게 준다. 풍요의 식탁, 가을 식탁을 준비해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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