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위 조동익 ‘동경憧憬

담담하고 섬세한 어린시절의 풍경

1980년대 초반, 음악계의 기존 행로를 벗어나 새로운 음악을 꿈꾸던 젊은이들이 있었다. 조동진으로 대변되는 차세대 포크의 움직임과 맞물려 있었지만 이들은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외국의 음악을 들으며 “우리도 뭔가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일부는 재즈가 대안일 것이라며 비행기에 올랐고, 다른 이들은 그 암울한 시대의 척박한 땅에 남아 꿈을 키웠다. 그러던 86년 말, ‘어떤날’이 등장했고, 역사가 됐다. 조동익이 없었다면 한국의 음악은, 지금 우리의 음악 듣기는 어땠을까.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주저앉아 저녁놀을 마주하고 싶어졌을 때, 그의 음악이 없었다면 저녁놀은 언제나 먹구름 일색이었을 게다.

[대중음악 100대 명반]46위 조동익  ‘동경憧憬

단지 ‘어떤날’이나 그가 남긴 몇 안되는 앨범들이 아니더라도, 그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수많은 곡들은 우리의 90년대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곱씹게 한다. 2007년 현재 그는 음악계를 떠나 있지만, 많은 이들은 그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산다. 아니, 결국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만으로 위안을 삼을 수도 있다.

94년 발표된 조동익의 솔로 앨범 ‘동경’은 막상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첫 앨범이 되는데, 그가 10년간 철저하게 언더그라운드의 상징으로 남아 있던 것처럼 이 작품은 결코 화려하거나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다. 앨범에서 울려퍼지는 모든 소리 속에는 섬세하고 연약한 감성이 가득하다.

일단 그 원인은 앨범의 소재가 어린 시절의 추억이란 사실에서 찾아야 하겠지만, 곡을 통해 드러난 조동익의 음악적 개성과 편곡 노하우가 단 하나의 음도 무심히 넘기지 않았다는 점을 무엇보다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동경’의 음악은 안식을 갈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편하게 마주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순간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예민한 감각이 수반됐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 앨범에서 80년대 퓨전 재즈의 흔적과 영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재즈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이보다 앞서 ‘어떤날’의 음악성도 결코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곡과 편곡에서 조동익이 추구한 것은 결코 재즈가 아니었다고 믿는다. 물론 ‘동경’을 이룬 음악 요소를 파헤쳐 들어가다보면 그 안에서 재즈의 파편이 여럿 발견되지만, 최종적으로 완성된 앨범을 들으며 우리는 이것이 재즈라는 인상을 거의 받지 못한다. 그만큼 조동익의 음악은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면서 많은 것을 필요에 따라 완벽하게 제것으로 흡수해버리는, 차분하지만 섬뜩할 만큼 무서운 구석을 지녔다.

‘동경’은 모두 공감할 만한 어린 시절의 풍경을 담담히 그렸다. 그에게는 그런 할머니와 어머니가 있었구나 싶다. 따지고 보면 누구에게든 추억할 만한 유년의 기억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 사람의 감성을 형성하는 데 얼마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조동익은 그렇게 자신에게 자리했던 감성의 모든 흔적을 이 앨범 한 장에 고스란히 담아냈고, 우리에게 감정이입의 더없는 기쁨을 맛보게 했다. 험한 세상 속에서 짐을 진 모든 이들, 이 안에서 휴식하라.

김현준|재즈비평가(선정기획 |가슴네트워크)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