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형제’ 최호섭·귀섭

김희연·사진 정지윤기자

‘세월이 가면’을 부른 가수 최호섭이 가족뮤지컬 <아기공룡 둘리>에서 고길동 역으로 등장한다. 뮤지컬 배우 최호섭은 낯설 뿐 아니라 삐쩍 마른 몸매에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둘리’ 내쫓을 궁리만 하는 고길동과도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대중스타의 티켓파워를 노린 캐스팅도 아니고 뭔가 싶었다. 최호섭(45)·귀섭(43) 형제를 만나기 전까지 그들 몸안에 흐르는 피를 몰랐던 탓이다.

형제의 아버지는 1966년 초연된 현대 뮤지컬의 첫 작품 <살짜기 옵서예>를 비롯해 <꽃님이> <바다여 말하라> 등에서 작곡·편곡 등을 맡은 고 최창권 선생이다. 뮤지컬 전문극단인 예그린의 음악실장과 시립 가무단 대표 등을 지낸 뮤지컬계 대부일 뿐 아니라 한국 영화음악의 거장이기도 하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고교얄개> <삼포가는 길> <뽕> 등 영화 음악도 110여편에 이른다.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 음악도 그가 작곡했다. 귀에 쩌렁쩌렁하게 남아 있는 <로보트 태권V>의 씩씩한 노래는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형제가 불렀다.

[무대에서 만난 사람]‘뮤지컬 형제’ 최호섭·귀섭

최호섭은 “가수로만 알려져 있지만 어려서부터 곽규석, 신구, 배인숙, 추송웅씨 등과 뮤지컬에 출연해왔고 ‘가업’으로 여기고 있다”면서 “일본에까지 수출된 창작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는 동생이 작곡했고, 나는 배우로 무대에 직접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75년 부친이 설립한 뮤지컬센터 ‘미리내’의 단원으로 발레, 연기, 노래, 악기, 봉산탈춤 등 뮤지컬 배우로서 조기교육까지 받았다.

동생 최귀섭은 오는 11월 국립극장에서 공연될 뮤지컬 <심청>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쇼코메디> <대박> <정글북> 등 뮤지컬 음악을 만들어왔다. 알고 보면 맏형 최명섭씨(48)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작사·작곡가이다.

이들 ‘뮤지컬 형제’는 지난해 1월 부친이 돌아가신 뒤 창작뮤지컬에 더욱 애정을 쏟게 됐다. ‘무대에서 망가지기로 작정한’ 최호섭이 <아기공룡 둘리> 출연에 선뜻 응한 것도 창작뮤지컬에 끌려서다. 그는 요즘 ‘세월이 가면’ 이후 14년 만에 내놓을 새앨범 작업에도 바쁘다.

“수입 작품이었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동안 해외 뮤지컬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수입 뮤지컬에는 별 흥미를 못 느낀 때문이죠. 뮤지컬 시장이 커졌다고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창작뮤지컬은 활성화돼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두 사람은 부친의 뮤지컬에 대한 열정 때문에 힘든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 78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살짜기 옵서예>의 제작을 부친이 직접 맡으면서였다. 현재의 대형 뮤지컬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규모의 40인조 오케스트라를 매회 동원했다. 제작비 부담에 가세가 기울면서 가족은 해마다 전세방을 옮겨다녔고 형제는 밀린 공납금 때문에 교무실에 불려다녔다. 대종상음악상, 아·태영화제음악상 등 부친의 수많은 트로피는 오히려 짐스러웠다고 한다.

최귀섭은 현장에서 ‘최핏대’로 불린 부친에 대해 “음악뿐 아니라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상업적인 타협이나 계산을 하지 않는 카리스마 넘치는 분이셨다”고 말했다. 그에게 <심청>은 더욱 각별하다.

97년 초연 당시 60여곡 가운데 10여곡을 부친이 직접 편곡하며 뮤지컬 음악상을 공동수상한 작품이다. 그는 “뮤지컬 초창기 창작의 길을 닦아놓으신 분인데 창작뮤지컬의 역사가 단절되면서, 예술가로서 제대로 인식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형제는 “아버지께서 ‘뮤지컬은 참 좋은 것’이란 말씀을 남기셨다”며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고 때론 슬픔까지 전하는 작품들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기공룡 둘리>는 오는 24일~9월27일 잠실 롯데월드 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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