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우리의 언어는 소통 친화적인가

김종목·이호준·이청솔기자

인신공격·조롱·낙인찍기 논평… ‘섬뜩한 적의’ 드러내

독설 넘쳐나는 공론장

한국 사회 공론장은 정제되지 않은 독설의 언어로 넘쳐난 지 오래다. 비아냥·조롱은 익살과 풍자의 범위를 벗어나 섬뜩한 적의를 드러낸다. 모든 사안을 한두 개의 비합리적·불공정한 언어로 규정하는 낙인찍기가 횡행한다. 의견·입장이 다른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불통의 세태가 반영된 결과다.

[한국, 소통합시다](8)우리의 언어는 소통 친화적인가

정당의 언어는 다른 정당에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하기 일색이다. 경향신문이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0일까지 미디어법 관련 논평을 분석한 결과 상대비난·비아냥·책임전가·낙인찍기·인신공격·색깔론을 벗어난 논평은 없었다. 한나라당은 ‘야당의 독재 탐욕’ ‘완장놀이 세력의 후예 민주당’ ‘좌파들의 방송채널 독점’으로 공격했고, 야당은 ‘기만술의 대가 홍 반장(홍준표 원내대표)’ ‘한나라당은 조작대왕’ ‘한나라당 언론 5적’으로 맞받아쳤다.

인터넷 공론장인 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도 낙인찍기가 난무하고 있다. 경향신문이 7월 셋째주 네이버·다음의 최다 댓글 기사 4건에 달린 1876개 댓글을 조사한 결과 ‘빨갱이’라는 단어는 220개였다. ‘전라디언’ ‘개상도’ 등 지역감정 조장 표현은 132개, ‘좌파빨갱이’를 뜻하는 ‘좌빨’은 102개, ‘딴나라당’ ‘왜나라당’ 등 한나라당 비하 표현은 100개였다. 전·현직 대통령을 비하·조롱하는 표현은 219번 나왔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리키는 ‘(핵)펭귄’ ‘슨상님’ 등이 116개였고, 이명박 대통령을 일컫는 ‘쥐박이’ ‘이메가’ 등이 83개 댓글에 쓰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 중환자실 이송’ 기사를 두고는 “(서거하면) 전라도민장으로 해야 한다” 등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표현도 모두 85개의 댓글에서 발견되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빨갱이와 좌파라고 모는 것은 곧 죽여 없애겠다는 공포와 협박을 수반했고, 실행으로 나타났다”며 “지금도 그런 말을 너무 쉽게, 함부로, 매우 적대적이고 공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론장에 자주 등장하는 진보와 보수 지식인·논객들은 낙인찍기와 불통의 언어로 상처받은 경험을 털어놨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협박 전화와 e메일에 쓰인 언어 때문에 상처받을 때가 많다”며 “자기하고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모독하는 걸 보면 공존의 지혜가 없는 것 같다. 상대방을 비하하는 표현은 소모적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우리 단체(경제개혁시민연대)는 소액주주운동 같은 건전한 자본주의를 하는 단체인데, 보수언론에서는 나를 두고 ‘삼성저격수’라고 부른다”며 “저격수라는 부정적 인식·이미지가 단체 이미지로 고착됐다는 게 가슴 아프고 언어 폭력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심광현 한예종 교수는 “보수 언론과 논객이 한예종을 ‘좌파의 온상’이라고 부르는 순간 다른 논의·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았다”며 “논지를 흐리는 ‘좌파’라는 일방적 공격에 반론을 하면 ‘실력 없다’ ‘예산을 낭비했다’는 식으로 다중초점을 만들며 논쟁을 피했다”고 말했다.

한재갑 한국교총 본부장은 “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은 자유지만, 예를 들어 ‘미친교육’ ‘돈교육’ ‘평둔화교육’ 같은 언어는 상대를 낙인찍고 소통이 아닌 불통을 강화시키는 결과만 빚을 뿐”이라며 “교육 분야만큼은 언어의 선택, 사용에 신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념·사상 전향자에게는 ‘변절자’라는 딱지가 붙는다. 최진학 자유주의진보연합 사무국장도 “좌파 사상에 빠져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다 전향했는데, 당시 동료들이 ‘변절자’라 낙인을 찍으며 멀리하는 것을 보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불통의 언어가 넘쳐나는 현상에 대해 허현준 시대정신 사무국장은 “언어를 통한 낙인찍기는 제대로 된 이념·노선 투쟁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권력 투쟁을 벌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매도해서 사회적 쓰레기로 만들고 승리하면 그뿐”이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내용·과정보다는 결과만 중요시한 사회가 되었다”며 “상대를 인정치 않고 역지사지가 안되는 분위기 때문에 자극적인 표현에만 반응하게 된다”고 말했다.

낙인찍기와 선정적·자극적 조어·구호에 반응하는 언론의 문제점도 지적된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정치인 등 자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대중한테 다가가는 말을 잘 만들어내는 것이 일종의 능력이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보다는 단순 반복적인 언어가 난무하는 것은 문제다”라면서 “그런 말을 언론이 많이 다룬다는 점이 문제다. 오히려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약자의 입장에서 ‘이명박의 졸개’니 ‘MB 인플루엔자’니, ‘쿠데타’니 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으면 언론도 안 다뤄주고, 국민 감수성도 무뎌져 자극적으로 날선 언어를 구사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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