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심야식당’

문학수 선임기자

살벌한 현실, 도시인들에 건네는 위로

밤 12시가 지났다. 신주쿠 뒷골목의 작고 허름한 식당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찾아온다. 쉰살이 넘은 게이, 에로영화 배우, 시집 못간 노처녀 삼총사, 조직 폭력배의 간부, 나이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트클럽 스트리퍼…. 단골들의 면면이 독특하다. 실제로는 가까이하기 두려운 인물들이다. 하지만 뮤지컬 <심야식당>은 그런 인물들의 지치고 외로운 일상을 감싸안는다.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만 문을 여는 이 작은 식당은 그들의 안식처다.

알려져 있다시피 원작은 일본의 만화다. 아베 야로의 만화로, 또 일본의 연작 드라마로도 유명한 <심야식당>이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사흘간의 쇼케이스 공연을 지난달 31일 마무리했다. ‘쇼케이스’란 본격적인 공연을 앞두고 미리 선보이는 무대다. 애초에는 배우들이 대본을 낭독하는 ‘리딩 공연’으로 예정했으나, 관객들의 요구가 빗발치는 바람에 좀 더 공연의 꼴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 주최 측의 설명이다.

뮤지컬이라면 흔히 화려한 무대와 역동적인 군무를 연상한다.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면서 관객의 혼을 빼놓으려는 것이 오늘날 뮤지컬의 일반적인 추세다. 하지만 <심야식당>은 다르다. 소박하지만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상을 관객들 앞에 차려낸다. 게다가 그 작은 접시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담겼다.

극 속에서 ‘마스터’로 불리는 식당 주인은 손님이 원하면 뭐든지 만들어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 단골들이 주문하는 음식은 노상 똑같다. 어떤 이는 소시지 볶음을, 또 어떤 이는 계란말이를, 또 다른 이는 매실이 들어간 오차즈케를 주문한다. 그 음식을 앞에 놓아둔 채 털어놓는 각자의 사연들이 이 뮤지컬의 스토리를 이룬다.

만화와 드라마에서는 각각의 인물과 에피소드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했다. 한 사람의 사연이 한 편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90분짜리 무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인물과 사연들은 하나의 실로 연결된다. 배우 8명이 각자의 이야기를 ‘토스’하는 방식이다. 아마 이 부분이야말로 연출가 김동연과 대본작가 정영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을 성싶다. 일단 성공적이다. 자칫하면 끊어질 수도 있는 이야기의 맥락이 그다지 흔들리지 않고 이어진다. 특히 늙다리 게이의 코믹한 연기는 이 뮤지컬에서 빛나는 감초다. 그러나 노처녀 삼총사의 액션은 좀 더 정제가 필요해 보인다.

원작에서도 증명됐듯이 <심야식당>은 위로의 뮤지컬이다. 살벌한 현실, 단절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을 건네는 작품이다. 밤 12시가 넘어 식당을 찾아든 그들의 이야기는 황량한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나’의 삶과 진배없으며, 각자의 사연을 묵묵히 들어주는 심야식당의 마스터는 고향의 ‘큰형’과도 같은 존재다.

한국에서도 <심야식당>이 인기가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원작자 아베 야로가 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한국 사람들도 마스터 같은 사람이 그리운 모양이죠?”

두산아트센터가 젊은 창작자들을 발굴해 육성하려는 목적으로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두산아트랩’의 올해 세번째 작품이다. 자칫 신파가 될 수도 있는 에피소드들이 절제된 그릇에 담겼다. 어른을 위한 한 편의 동화로 볼 수도 있겠다.

연출자 김동연은 “제작자가 나서는 대로 좀 더 완성도 높은 본공연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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