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원래 엄마와 함께 잤다

전중환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잠들 시간이다. 엄마는 불을 끄고 가버렸다. 아이는 홀로 침대에 눕는다. 세상이 온통 암흑이다. 아이가 설핏 잠이 든다. 갑자기, 벽장 문이 쾅 열린다. 청록색 털북숭이 괴물이 튀어나온다. 고함을 내지르며 아이에게 달려든다!


[진화의 창]아이는 원래 엄마와 함께 잤다

2001년에 개봉한 픽사의 장편 만화영화 <몬스터 주식회사>의 한 장면이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대개 아이를 부모와 따로 재운다. 이렇게 자기 방에서 혼자 자야 하는 아이들은 종종 침대 밑이나 벽장 속에 괴물이 숨어 있다고 호소하며 엄마 방문을 두드린다.

어떨 때는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 엄마와 같이 잘 거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딱 오늘만 같이 자겠노라고 세련되게 엄마와 협상을 시도하기도 한다. 말하는 아이는 그나마 낫다. 말 못하는 아기는 더 딱하다. 어두운 방에서 자다가 깨면, 집이 떠나가라 우는 방도밖에 없다. 엄마를 애타게 찾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육아 지침서의 가르침에 따라 아기가 울다 지쳐 잠들게 하려는 엄마에게 심한 죄책감을 안긴다.

왜 아기들과 어린아이들은 밤에 부모와 떨어져 혼자 자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는가? 엄마와 뽀뽀하기, 놀이터에서 놀기, 어린이날에 장난감 선물 받기를 싫어하는 아이는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말이다. 혹시 아이는 원래부터 엄마와 함께 자게끔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가 잘 설계해 놓은 게 아닐까?

물론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아이가 부모와 같이 잤다. 단칸방에서 여러 자식과 함께 잤던 흥부 부부를 떠올리면 알 수 있다. 아이를 부모와 따로 재우는 관습은 현대 서구 사회에 들어 나타난 예외적인 현상이다.

서구의 영향을 받아 우리 사회의 젊은 부부들도 이 관습을 많이 따르고 있다(인터넷에서 ‘아이 혼자 재우기’를 검색해 보시라). 어쨌든 예외는 예외일 뿐이다. 지금껏 남아 있는 수렵·채집 사회들을 포함해 90곳의 전통 사회를 비교·조사했더니, 엄마와 아기가 다른 방에서 잠을 자는 경우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예컨대 아프리카의 쿵족 엄마는 잘 때뿐만 아니라 외출할 때도 아기를 데리고 다닌다. 시야를 더 넓혀서 모든 고등 영장류 종의 암컷들도 새끼와 바싹 붙어서 잠을 잔다. 즉 인류가 진화한 수백만년에 걸쳐 아이는 엄마와 같은 침대나 요에서 잠을 잤다.

현대 산업사회의 ‘별스러운’ 양육 지침은 아이가 적어도 세 살부터는 혼자 자는 습관을 들여야 독립심과 자존감이 길러진다고 주장한다. 우는 아이가 애처로워 엄마가 방문을 열어준다면,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자식으로 자라게끔 아이를 망칠 뿐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경험적 증거는 없다. 학자들의 희망 섞인 추측일 뿐이다. 정반대로, 어릴 때 혼자서 잤던 이들은 부모와 함께 잤던 이들보다 덜 행복해하며, 다루기도 더 어렵고, 자존감도 낮다는 것을 발견한 연구들이 점점 더 많이 나오고 있다.

아이가 엄마와 함께 잠을 자는 행동은 어떤 이점을 주게끔 진화적으로 설계되었을까? 진화인류학자 제임스 맥케나는 <아기와 함께 자기>라는 책에서 몇 가지 이점을 든다.

첫째, 아기가 엄마로부터 보살핌을 더 많이 받는다. 바로 옆에 엄마가 누워 있으므로 아기는 엄마가 자고 있을 때라도 원한다면 언제나 젖을 빨 수 있다. 함께 자는 엄마는 따로 자는 엄마보다 두 배나 더 자주 아기에게 젖을 물려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둘째, 엄마와 아기 모두 잠을 푹 잘 수 있다. 아이를 따로 재우는 부모라면 이 대목에서 혀를 끌끌 찰지 모르겠다. “이봐요. 책만 파신 교수님. 따로 재워도 아이가 한밤중에 갑자기 울면 아이 방으로 달려가느라 잠을 설치거든요. 하물며 아기랑 함께 잔다면 나는 아예 한숨도 못 잘 텐데 무슨 소리예요!” 실제 연구에 따르면, 엄마와 함께 자는 아이는 자다가 갑자기 깨어서 목 놓아 우는 일이 거의 없다. 결국 아이는 편안히 잘 수 있다. 엄마는 바로 옆의 아기를 돌보느라 선잠을 자긴 하지만, 밤중에 난데없이 우는 아이 방으로 건너가느라 잠이 몇 번씩 깨끗이 달아나는 엄마들보다는 더 푹 잘 수 있다.

셋째, 영아가 밤에 잠든 이후에 사망하는 영아돌연사증후군(SIDS)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기를 바닥에 엎어 놓고 재우면 아기가 호흡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므로 돌연사할 가능성이 커진다. 즉 돌연사를 방지하는 좋은 대책은 아이가 천장을 보도록 똑바로 눕혀서 재우는 것이다.

엄마와 함께 자는 아기는 자주 엄마 젖을 빨게 된다. 젖을 빨기 위해 아기는 똑바로 누운 자세를 자연스럽게 오래 유지한다. 실제로 맥케나는 아기를 따로 재우는 사회에서는 아기를 함께 재우는 사회보다 영아돌연사증후군이 10배 이상 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이는 엄마와 함께 자게끔 선천적으로 타고난다는 말이 반드시 오늘날 모든 가정에서 아이를 따로 재우는 관습을 몰아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진화의 관점은 아이를 따로 혹은 함께 재우는 결정에 따르는 비용과 편익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결정은 각자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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