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경찰 미제살인 사건 범인 영상 첫 공개

강현석 기자
그놈 얼굴. 2009년 3월19일 광주 북구 중흥동 한 교회 화단에서 발생한 엔진수리공 살인사건 용의자 몽타주.

그놈 얼굴. 2009년 3월19일 광주 북구 중흥동 한 교회 화단에서 발생한 엔진수리공 살인사건 용의자 몽타주.

“포기하지 않으면 미궁은 없다”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이른바 ‘태완이법’이 2015년 8월부터 시행되면서 경찰청은 미제사건 전담팀을 정식 발족했습니다. 전국 17개 경찰청에 소속된 미제사건팀에는 형사사건 경력이 많은 베테랑 경찰관들이 투입돼 전 국민을 경악과 분노에 빠트린 강력 미제사건 해결에 나서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제사건 수사를 주제로 한 드라마 <시그널>이 인기를 끌면서 오랜시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건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미제사건의 국민적 관심을 확산시켜 해결의 단초를 찾아보고자 이들 사건을 다시 들여다 보기로 했습니다. 포기하기 않으면‘미궁’은 없다고 믿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제보를 기다리겠습니다.


‘놈’은 내게 연신 “죄송합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라고 했다. 변명이 듣기 싫었다. 그만 숙소로 돌아가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일 출근이 걱정됐다. 그동안 한 번도 결근해 본 적이 없는 나였다. 오전 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드는 일은 1년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하지만 놈은 한사코 나를 붙잡았다. 1시간여 동안 길거리에서 승강이를 벌였지만 끝까지 따라오며 앞을 막았다. 참을 수 없어 화를 내려는 순간 두 눈에서 불이 번쩍 튀었다. 무언가 끈적끈적한 것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힘겹게 숨을 쉬자 놈은 쓰러진 나의 머리를 또다시 내려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벽돌 파편과 피가 튀었다. 교회 십자가가 잠시 보이는 듯 싶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앞에서 무릎까지 꿇고 빌었던 놈의 손에는 피 묻은 벽돌이 들려 있었다. 악마가 눈 앞에서 희미해 졌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놈 때문에 나와 가족의 고통은 봄이 여섯 번 지나는 동안 계속되고 있다.

김상민 화백

김상민 화백

평범했던 2009년 어느 봄 날

그날은 평범한 봄 날 이었다. 마흔아홉의 내 이름은 김남선, 엔진수리공이다. 2009년 3월18일 나는 광주 북구 중흥동에 있는 중고엔진 수리 회사로 출근했다. 회사는 내가 2008년 8월부터 월세로 살고 있는 모텔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였다.

매월 220만원을 받고 2008년 8월부터 이곳에서 각종 중고 엔진을 고쳐왔다. 수명이 다한 것 같은 엔진들이 내 손을 거쳐 힘차게 다시 돌아가면 뿌듯했다. 사람들은 “말이 없고 무뚝뚝하지만 성실하다”고 했다.

술 마시고 결근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7시면 퇴근했다.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나쁜 일을 한 적도 없었다. 골칫거리라면 수년 전 동거했다 헤어진 여자의 보증을 서줬다가 여자가 돈을 제 때 갚지 못해 “170만원을 대신 내라”는 ‘독촉장’이 날아오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전화해서 “빚을 해결하라”고 말한 적도 없다. 좀 귀찮을 뿐 미운 생각은 없었다. 두 곳의 통장에는 45만원과 1300만원이 들어있다. 170만원 정도는 충분히 갚을 수 있었지만 인연이 끝난 여자의 빚을 대신 갚고 싶지는 않았다.

오후 7시20분쯤 일을 마치고 동료와 자주 가던 회사 근처 추어탕 집으로 향했다. 소주도 2병 시켰다. 1시간쯤 이어진 짧은 술자리는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숙소로 갈까”하다 성인오락실에 가기로 했다.

모텔 달방을 얻어 생활하는 나의 유일한 취미는 ‘성인오락실’ 이다. 1주일에 2∼3번은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락실은 숙소에서 걸어서 10여분 정도면 도착한다. 지갑에는 마침 찾아 둔 현금 10만원도 있었다.

오후 9시 자주가던 광주 북구 임동의 한 오락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면이 있던 여사장이 아는 척을 했다. 오락실에서는 이곳에서 만난 서모·오모·박모·김모씨 등이 먼저 와 있었다. 인사를 하고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날 오락실에 가는 것이 아니었다.

◇김씨의 사고 당일 행적
-2009년 3월18일 오전 7시30분: 광주 중흥동 숙소에서 출근

-오후 7시20분-오후 8시30분: 업무 마친 뒤 동료와 술 마심

-오후 8시30분-오후 9시: 동선 확인 안됨

-오후 9시-오후 11시45분: 광주 북구 유동 성인오락실서 오락

-동선 확인 안됨

-19일 오전 0시09분-0시36분: 광주 북구 유동 백화점 CCTV에 용의자와 등장

-오전 0시36분-42분: 광주 북구 증흥동 교회 인근에서 용의자와 다툼

-오전 0시10분: 사망 추정

-오전 4시40분: 교회 신도가 시신 발견해 신고



사망 당일 김씨의 행적을 바탕으로 만든 이동 동선.

사망 당일 김씨의 행적을 바탕으로 만든 이동 동선.

무릎까지 꿇고 빌던 그놈

오락실에서는 나를 ‘김 사장’이라고 부르는 서씨 등 4명과 자주 어울렸다. 가끔 인근 가게에서 소주를 사 나눠마시기도 했다. 그들은 내가 회사 동료를 빼고는 유일하게 교류하는 사람들이었다. 여주인은 “내가 당시 누군가와 통화하며 ‘회에 술 한잔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경찰에 알렸지만 나는 그런 통화를 한 기억이 없다.

그놈을 만난 것은 오락실에서 나온 직후였다. 오후 11시45분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경찰에 찾아 낸 나의 다음 행적은 3월19일 오전 0시9분쯤. 놈은 나를 광주 북구 유동의 한 백화점 뒤 벤치로 이끌었다. 다행히 그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우리의 모습이 잡혔다.

오락실에서 백화점까지는 5분 이면 충분히 갈 수 있었지만 나는 25분 만에 도착했다. 그 25분 사이에 어디에선가 나를 ‘형님’이라로 부르는, 평소 안면이 있던, 놈을 만난 것이다.

키 176㎝의 나는 점퍼를 입었다. 나보다 작은 170㎝키의 놈은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패딩점퍼에 청바지를 입었다. 벤치에 앉은 뒤 10여분이 흐르자 놈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나에게 뭔가 큰 잘못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놈이 머리를 수 차례 조아렸지만 용서할 마음이 없었다. 오전 0시36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바지를 잡고 또다시 애원했다. 뿌리치고 자리를 뜨자 쫓아왔다.

놈이 내게 왜 무릎을 꿇었는지 경찰에게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방법이 없다. 대신 우리를 목격한 사람이 있다. 백화점 경비 책임자가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우리를 봤다. 그때 놈은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했고 나는 ‘알았어 임마, 됐어’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백화점 CCTV에서 사라졌던 나와 놈은 300m정도 떨어져 있는 광주역 앞 한 교회 인근 모텔 CCTV에 다시 나타났다. 오전 1시3분 쯤 놈은 또 내 앞을 막아섰다. 뿌리치고 가면 다시 붙잡았다.

CCTV에서 사라진 얼마 뒤 나는 놈이 휘두른 벽돌에 머리를 맞고 교회 화단에 쓰러졌다. 경찰은 내가 오전 1시10분쯤 놈에게 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 시간 이후 어디에서도 내 행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가 숨진채 발견될 당시 광주 구 중흥동의 한 교회. 사망 장소에서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김씨가 숨진채 발견될 당시 광주 구 중흥동의 한 교회. 사망 장소에서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김씨가 숨진 채 발견된 광주 북구 중흥동 한 교회의 현재모습. 교회 뒤 분홍색 빌딩이 김씨과 용의자와 함께 CCTV에 찍혔던 백화점이다.

김씨가 숨진 채 발견된 광주 북구 중흥동 한 교회의 현재모습. 교회 뒤 분홍색 빌딩이 김씨과 용의자와 함께 CCTV에 찍혔던 백화점이다.

놈은 누구?…“수사는 끝나지 않았다”

오전 4시40분 교회 관계자가 화단에 쓰러진 피투성이의 나를 발견했다. 그는 “오전 4시에 교회를 나갈 때 사람이 쓰러져 있어 술에 취한 사람인가보다 했는데 돌아 올 때까지 그대로 있어 다가갔더니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내 모습은 정말 끔찍했다.

당시 주머니에는 지갑과 돈도 그대로 있었다. 휴대전화는 인근 하수도에서 발견됐는데 내가 쓰러지며 빠진 것인지, 놈이 일부러 버린 것인지 확실치 않다. 경찰이 통화내역 300개를 조사했지만 특별한 게 없었다. 내가 죽은 후에도 통장 2곳에 남아있던 돈도 그대로 였다.

경찰은 내 점퍼에서 신발자국도 하나 발견했다. 나와 한 때 연인관계였던 식당 여종업원까지 조사했지만 놈과의 관계를 밝히지 못했다. 오락실에서 만났던 4명 중 한명이 ‘놈’일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는 “그때 노래방에 있었다”며 알리바이를 댔다. 경찰은 여주인이 오락실 손님 4명 중 누군가와 범죄를 공모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증거는 없었다.

극적으로 놈을 잡을 뻔한 일도 있았다. 광주역에서 노숙을 하던 전모씨가 사건 이틀뒤 “교도소 동기가 근처 교회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다”고 신고했다. 발칵 뒤집힌 형사들이 그를 붙잡았지만 그는 “TV에서 뉴스를 보고 전씨를 겁주려고 그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날 밤, 백화점 벤치에 앉아있을 때 나와 놈을 목격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말해준 인상착의로 경찰은 30대로 추정되는 놈의 몽타주를 만들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였다. 정체를 곧 드러낼 것 같던 놈의 행적은 이후로 6년째 제자리다.

얼굴을 확실하게 볼 수 없지만 두 건의 CCTV는 놈이 찍힌 유일한 자료다. 수없이 영상을 돌려봤던 경찰은 “영상을 보면 놈을 아는 사람들은 알아볼 수도 있다”며 이번에 공개를 결정했다. 또 “범죄 동기에 대해 새로운 가설을 세운 뒤 다시 추적하고 있다. 새로운 단서가 나올 수도 있다”며 수사를 재개했다.

그놈은 도대체 내게 무엇을 잘못했기에 무릎까지 꿇고 빌었을까? 다음 봄, 나는 편히 이승을 떠날 수 있을까? 제보 광주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062-609-2572).

다음 미제사건 순서는 대구 초등생 허모양 납치 살인사건입니다.

[미제사건, 시그널을 찾아라]⑬그놈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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