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회 ‘새누리, 이젠 백 투더 퓨처!’

이대근 논설위원

최근 출간된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가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새누리당은 회고록의 한 대목을 빌미로 ‘2007년 11월 참여정부가 북한의 결재를 받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을 결정했다’며 공세에 나섰다. 정확하게는 차기 대선주자로 유력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책임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과연 새누리당의 공세는 정치적으로 효과가 있을까.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이 20일 공개한 팟캐스트 <이대근의 단언컨대> 126회 ‘새누리, 이젠 백 투더 퓨처!’에서 이를 분석했다.

최근 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가 논란이 되고 있는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이 지난 10월17일 서울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정지윤기자

최근 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가 논란이 되고 있는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이 지난 10월17일 서울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정지윤기자

■2007년 11월15~20일 청와대, 싱가포르

송민순 장관 회고록과 관련 당사자 증언을 정리하면 이렇다. 2007년 11월15일 오후 5시 서별관 회의에서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연다. 문재인 비서실장도 참석했다. 송 장관 외 모두 유엔 북한인권결의에 기권하자는 의견을 냈다. 주무장관인 송 장관은 찬성하자는 주장을 했다. 다음은 회고록 내용이다.

송 장관은 “찬성과 기권입장을 병렬해서 지난해처럼 대통령의 결심을 받자”고 제안했다. 문재인 실장은 왜 대통령에게 그런 부담을 주느냐면서 다수 의견대로 기권으로 합의해서 건의하자고 말했다. 송 장관은 동의할 수 없다면서 버티자 회의는 파행됐다.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회고록에 따르면 파행 사실이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송 장관은 이해했다. 그러나 다른 참석자들 증언은 다소 다르다. 다수는 기권 의견, 송 장관은 찬성 입장이라는 사실을 보고한 것으로 증언하고 있다. 송 장관은 파행을 강조했지만 다른 참석자들은 토론 내용을 보고했고, 그 때문에 사실상 결론이 난 것으로 설명했다.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노 대통령이 “통일부 장관 의견을 따른 것이 옳다, 이것으로 결론을 냅시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음 날인 16일 남북정상회담 후속 조치의 하나로 남북 총리회담이 개최되었고 김영일 북한 총리가 청와대를 방문했다. 노 대통령은 북한 김영일 총리와 오찬을 한 뒤 오후 대통령주재로 안보관계 장관 5인이 참석한 가운데 다시 토론을 했다. 송민순 회고록은 이렇게 되어 있다. 노 대통령이 “방금 북한총리와 송별 오찬을 하고 올랐는데 바로 북한인권 결의안에 찬성하자고 하니 그거 참 그러네”라고 말했다.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으로 회의에 참석했던 김경수 의원도 “대통령께서 ‘송 장관 말이 맞지만 이번엔 기권으로 갑시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15일 다수가 기권이라는 보고를 받은 노 대통령이 공식 결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기권하기로 결심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남북관계가 최상이었고 남북화해 분위기가 절정이었던 당시 분위기가 청와대를 지배했을 것이고 그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다시 회고록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노 대통령은 나와 비서실장을 보면서 우리 입장을 잘 정리해 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뒤에 남아 격론했지만 결론을 낼 수 없었다.

회고록대로 공식 결론은 못 냈지만 이 시점에는 이미 송 장관만 제외하고 대통령을 포함한 나머지는 결론을 낸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송 장관은 공식 결론이 나지 않은 이상 찬성으로 돌려놓을 기회가 있다고 판단하고 장관직을 건 투쟁을 시작한다. 노 대통령에게 장문의 편지를 쓴다. 찬성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내용이다.

그러자 다음 날인 18일 노 대통령이 비서실장은 다시 회의를 열어 의논해보라고 지시한다. 회고록은 이 대목을 이렇게 썼다.

이구동성으로 이미 결정된 사항을 자꾸 문제 삼느냐고 (송 장관에게)불만을 터뜨렸다. 내가 장관 자리에 있는 한 기권할 수 없다고 했다. 국정원장이 남북채널을 통해 북한 의견을 직접 확인해보자고 했다. 모두 찬성했다. 나는 “그걸 대놓고 물어보면 어떡하나, 나올 대답은 뻔한데”이렇게 말했다.

결국 결론은 이미 내려졌고 반발하는 송 장관을 설득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북한에 의견을 물어보나마나라는 것은 송 장관이나 나머지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20일 싱가포르 대통령 숙소. 회고록은 이렇게 되어 있다.

백종천 안보실장이 대통령 앞에서 북한 입장이 담긴 쪽지를 읽어보라고 송 장관에게 건넸다. ‘역사적 수뇌회담을 한 후에 반공화국 세력의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송 장관은 반발한다. “이렇게 나올 줄 모르고 물어봤느냐.” 이에 노 대통령은 “북한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찬성투표하고 송 장관한테는 바로 사표를 받을까하는 생각도 얼핏 해봤는데”라고 하자 송 장관은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말한다. “이렇게 물어까지 봤으니 그냥 기권으로 갑시다, 묻지는 말았어야 하는데, 송 장관, 그렇다고 사표 낼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리고 다음날 청와대는 대변인을 통해 기권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몇 가지 쟁점

■북한의견에 따라 기권했나?

세 가지 견해가 있다. 북한 문의 후 기권, 기권 후 북측에 통보, 북한의 사전 결재 받고 기권. 북한 문의 후 기권은 송 장관 회고록에 나오는 내용이고, 기권 후 통보는 민주당 주장, 북한 결재 받고 기권은 새누리당 주장이다. 어느 것이 진실일까?

우선 북한 문의 후 기권 주장을 보자. 15일 이후의 토론 내용을 보면 기권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문의가 거론된 때가 18일이므로 이후 북한에 문의했다면 노무현 정부가 사실상 기권으로 굳힌 뒤의 일이다. 그러므로 문의가 정부의 기권 판단을 강화할 수는 있지만 정부의 결정을 실질적으로 좌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송 장관도 문의는 아무 소용 없는 일임을 밝혔다. 그러나 기권을 공식 결정한 것은 20일이므로 시간 순서상으로는 문의 후 기권도 맞는다고 할 수 있다. 기권 후 북측에 통보했다는 더민주당 주장은 문의 후 기권과 순서가 정반대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기권 결정을 한 뒤 북측과 소통했다는 것이므로 송 장관의 회고록과 별로 다르지 않다. 물론 송 장관은 공식 결정을 하지 않은 이상 결정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통보와 문의의 차이를 어떻게 규정짓든 북측과의 소통은 실질적으로 기권 이후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을 고려할 때 북한의 사전 결재를 받고 기권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이 주장은 북한이 기권하라고 남측에 지침을 내렸고, 남측은 무조건 따랐다는 것인데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회고록을 봐도 북한의 의견이 남측 결정을 좌우한 것으로 되어 있지 않다. 물어보나 마나 결과가 뻔한 사항을 북한에 물어보는 절차를 거치는 것 자체를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18일 시점에 다른 참석자들은 이미 결정 난 사안이라고 못을 박았다는 점을 송 장관도 인정했다. 그러므로 북한이 기권을 종용하고 남측이 그대로 따랐다는 것은 왜곡이다.

문제는 북측과 소통하는 형식이 통보인지, 문의인지 하는 것이다. 회고록은 노 대통령이 북측에 물어보았다고 했으니 문의이지만 민주당은 통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토론할 주제는 좁혀진다. 문의는 어떤 성격인지, 문제 있는 행동인지 하는 것이다.

지금과 달리 남북화해 분위기가 절정이었으니 문의, 혹은 협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만큼 남북협력 관계가 진전되었다는 증좌이니 얼마나 좋은 현상이냐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그래도 정부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일인데 정책의 상대에게 물어보는 것은 부적절했다고 비판할 수 있다.

이건 충분히 토론해볼 만한 주제의 하나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당면한 주요 과제를 다 제치고 정권이 우선 집중해야 할 일은 못 된다. 9년 전의 일이다. 이미 유엔 북한인권 결의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저성장에 경기 침체, 청년실업, 불평등 심화, 최순실 의혹 등 눈 앞의 과제가 산적한 데 그걸 다 잊어버리고 국력을 쏟아야 할 만큼 중요하고 최우선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북측과 내통했다, 북한의 결재를 받았다, 종북 및 반역행위를 했다며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을 하고 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 전체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그 정부에 참여한 이를 부적격자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설사 북한에 물어보았다 해도 정부 결정을 지배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문제 삼고 싶다면 왜 물어보았느냐를 따져야 하다. 그러나 그걸 따지기 위해 매일 의총 열고, 당지도부 회의하고 극언을 쏟아내고 나라를 뒤흔들고 국정을 팽개쳐야 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유엔북한인권 결의 기권 바람직했나?

북한인권 결의 기권에 대해서는 여론이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한겨레 신문도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이 주제는 얼마든지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서 토론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당시 정부로서는 현실론을 제기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남북 총리회담 마치자마자 인권 결의 찬성으로 ‘북한을 등 뒤에서 찔러야 할지’ 복잡한 심경을 밝힌 바 있다. 물론 그럼에도 남북대화는 남북대화고 북한인권 문제는 인권문제로 따로 접근하는게 더 나은 접근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이런 논쟁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오직 문재인이 북한에서 결재를 받아왔느냐 쪽으로만 쏠리고 있다.

■ 남북 정상회담을 미국에 사전 통보 안 해도 괜찮은가?

송 장관이 남북정상회담 사실을 발표 당일 알았고, 그 때문에 미국에 사전 통보도 못했다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당시 상대는 부시의 네오콘 행정부였다. 김대중 정부 때 부시의 공세에 남북관계가 파탄난 적이 있어서, 노무현 정부는 사전 통보할 경우 미국의 압력으로 원만하게 정상회담을 하지 못할 것으로 우려해서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 해도 한·미간 긴밀한 협력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게 알리지 않은 사실을 두고 무슨 죽을 죄를 지은 것처럼 몰아부쳐서는 안 된다. 그건 전략적 선택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2002년 8월에 나온 외신 기사를 잠깐 보자. 일본은 고이즈미 일본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간 정상회담에 합의하고 이를 공식 발표 3일전에 미국에 일방 통보했다는 내용이다. “미국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방북을 사전협의하지 않고 결정된 뒤 갑자기 통보를 하는 바람에 크게 당황해 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3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고이즈미 총리는 미·일 안보 전략회의 참석차 일본에 온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과 제임스 베이커 주일 미 대사를 8월27일 오후 접견한 자리에서 처음으로 방북이 결정된 사실을 알렸다. 고이즈미 총리는 아미티지 부장관에게 “다음달 17일 평양에 가 김정일(金正日) 총서기와 만나게 됐다”고 알려준 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게 전달해달라고 요청했다. 모종의 절충이 진행 중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던 아미티지 부장관은 갑작스런 정상회담 통보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원래 꺼내려고 했던 이라크 문제에 대해 거의 말도 하지 못한 채 접견을 마쳤다. 도쿄(東京) 미 대사관은 부랴부랴 상세한 정보를 수집해 백악관에 보고했고, 미 정부는 아시아 정책 담당자들을 긴급 소집해 정보를 분석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부시와 친했다”는 고이즈미도 이랬다.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가 주도하고 외교부는 밀렸다는 것도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 때 통일부를 폐지하려 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외교부가 주도하고 통일부 존재감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어떤가? 정권의 성격에 따라 부처의 부침은 있기 마련이다. 노무현 정부만 물고 늘어지는 것은 억지다.

*박근혜정권 왜 이러나?

지난 10월19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 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대북결재 요청사건 진상조사위 정갑윤 위원장이 회의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br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난 10월19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 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대북결재 요청사건 진상조사위 정갑윤 위원장이 회의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현상 유지 아닌 현상 타파가 필요했나?

새누리당은 요즘 마치 야당 같은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보통 집권세력은 기득권 세력이기도 하기 때문에 현상유지 경향이 있다. 반면 권력을 잃은 야당은 현상을 변경하려고 한다. 현상 변경 하려는 야당은 고발하고 저항하고 비판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여당이 이런 야당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10년 가까이 집권했으니 현 체제는 자신들이 만든 체제이다. 그런데도 자기 체제에 뭐가 그리 불만인지 툭하면 단식하며 목숨을 건다느니, 국기가 문란해졌다느니 하며 나라가 금방 무너질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거의 10년전 자신들이 야당일 때의 일이 집권세력이 된 지금 최대 국가 현안인양 주장하고 있다. 지금 나라가 그 지경이라면 집권세력 그들 때문이지 누구 때문이겠는가? 야당 했던 추억이 깊이 각인될 결과일까? 성장 장애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면 아직도 야당처럼 행동하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국정 마비, 국정난맥상에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런 행동으로 나타난 것일지 모른다. 상상 임신처럼 자신이 야당한다는 기분으로 집권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기득권은 기득권 대로 누리면서 책임은 회피하고 현 난맥상을 두고 남을 공격하며 지내는 것처럼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자신들이 보기에도 집권세력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 만족스럽지 않은가 보다.

그래서 현상 변경, 즉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심정이라면 정말 이해해줘야 하지 않을까?

■ 국정동력이 소진됐다, 아무거나 땔감으로 쓰자?

현실은 무너지고, 미래는 깜깜하다. 이제 매달릴 데는 과거 밖에 없다. 그런데 과거를 소환하는 이유가 자기들의 영광의 시절을 되살리자는 것도 아니고 겨우 정적의 흠집이라고 믿는 것을 파헤치는 것이다.

지난 대선 때, 그리고 집권후 1년 정도 나라를 정신 없게 흔들어 놓아서 박근혜 정권의 실정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게 만드는데 성공했던 사례가 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 할 때 북방한계선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는 흑색선전이 그것이다. 국정 동력이 바닥난 지금 찬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다, 새누리당 정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과거로 돌아가 땅을 파헤치는 것이니, 닥치는 대로 후벼 파서 크게 덧나게 하자고 결심한 것 같다.

■ 북한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정권이라서?

국정에 실패한 박근혜 정권은 믿을 것은 ‘역시 북한 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이미 효험을 본 적도 있다. ‘노 대통령이 북방한계선 포기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사초인데 사초가 사라졌다’고 시민을 현혹시켰지만, 사초는 사라지지 않고 북방한계선도 그대로 있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국가적 과제에 집중해야 할 집권세력이 유령 쫓기로 세월을 보내고도 공식 사과 없이 다시 북한문제를 끄집어 냈다. 이런 일이 반복이 되니 남북 대화와 협력은 나쁜 일이고 북한과의 대화 부재, 남북 대결은 좋은 일처럼 변질되고 있다.

보수정권은 한마디로 북한 없이는 경쟁력도 없고, 북한 없이는 우위를 점할 수도 없는, 자신감 없는 세력이다. 그런 세력이 지금처럼 정권 위기에 처해 방어벽이 아쉬울 때, 도움이 절실할 때 북한에 의존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지지율은 바닥이다. 국정 성과로 지지율을 회복시킬 의지나 능력은 없다. 그래도 뭔가를 해봐야 한다고 절박했던 순간에 송민순 회고록이라는 행운이 굴러들어온 것이다. 역시 북한 문제다. 여기에 불을 지피면 불이 붙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특히 나이 60대 이상은 북한 문제에 관심이 높고, 적대감이 크다. 이들을 재결집시켜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 문재인의 약점을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문재인의 최대 약점의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정부다. 둘 중 하나를 건드리기만 하면 문재인은 자기 페이스를 잃는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왜 그냥 넘어가겠나, 새누리당은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이 회고록의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이라면 노무현 대통령과 송민순 장관이고 남북관계, 한미관계이다. 대북정책, 외교정책을 어떻게 조율하고 일관성을 유지할까 하는 고민을 담고 있다. 거기에서 문재인 약점을 캐낼 수 있겠지만, 선후와 경중을 가려서 접근할 줄 알아야 한다.

■문재인, 백투더 퓨처 하라

새누리당이 회고록으로 문재인을 또 공격하는 것은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의 취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약한 곳만 골라 찌르기를 할 줄 안다는 점에서 정말 새누리당은 유능한 싸움꾼이다. 이번만이 아니라 다음에 또 어떤 계기를 잡아서든 문재인 찌르기를 계속 할 것이고, 그로 인해 정국도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다. 새누리당의 문재인 찌르기, 그것도 앞에서가 아니라 과거 문제로 뒤에서 찌르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새누리당이 기대하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건 문재인이 새누리당이 예측하는 대로 반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문재인이 과거를 변호하고 지키는 쪽을 선택함으로써 좋은 표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도무지 노무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원치 않는다.

어느 정권이나 공과가 있다. 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그걸 넘어섬으로써 표적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그는 그 모든 화살을 온 몸으로 맞겠다는 각오로 차 있다. 그래서 항상 과거 문제만 나오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제 그 역할을 그만 두어야 한다. 이젠 노무현 정부의 시비에 자신이 묶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재인 하면, 과거 어느 정부가 떠오르게 하려는 새누리당의 음모를 깨려면 스스로 족쇄를 풀고 미래로 가야 한다. 거기서 새누리당은 머리 잘린 삼손 처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 불리한 곳에서 싸우려 하나. 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지 않나.

■새누리, 백투더 퓨처하라

참여정부 정책을 다룬 다른 회고록이 많다. 새누리당은 잘 읽고 배울 것이 많다. 대외 정세 변화를 둘러싸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치열한 토론과 설득과 타협의 과정이 잘 담겨 있다. 그런 과정이 너무 생생하게 드러난다고 문제 삼아서는 안된다. 그런 과정이 없는 것이 더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10년 보수 체제다. 지난 노무현 정부 평가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이제는 보수정권이 평가받을 차례이다. 그게 공정한 일이다. 자꾸 그 이전 과거를 끄집어내려 하면 안된다. 물론 현재와 미래가 불안하니 자꾸 과거로 자꾸 되돌아가려는 것이겠지만 이걸 알아야 한다. 보수정권은 언제나 영원히 심판자의 지위를 누릴 수는 없다.

[이대근의 단언컨대] 126회 ‘새누리, 이젠 백 투더 퓨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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