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림다방의 빈자리

조운찬 논설위원

2층으로 이어지는 낡은 나무계단이 삐걱댄다. 벽에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광고 포스터가 걸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온통 빈티지풍이다. 나무 탁자에 소파 의자, 옛날 영사기·시계·도자기가 놓인 장식장, 업라이트 피아노, 켜켜이 꽂힌 LP판…. 시간이 멈춰선 곳, 서울 대학로의 ‘학림다방’이다.

[경향의 눈]학림다방의 빈자리

학림다방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이다. 옛날 다방들이 커피숍, 커피전문점으로 바뀌는 속에서도 학림은 꿋꿋이 ‘다방’을 지켰다. 진화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세상에서 학림다방은 옛것을 지킴으로써 살아남았다. 여러 영화의 촬영장소로 사용됐고, 미래 세대에 전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아 ‘서울미래유산’이 됐다. 1956년 문을 연 ‘학림(學林)’의 이름은 건너편에 옛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시간이 쌓이면 공간은 자기의 색깔을 입는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장소성’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공간이 장소성을 부여받은 건 아니다. 장소성은 시간과 사람이 만들어간다. 프랑스 파리 센강 변에 있는 헌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세계 최고의 서점 10곳’에 꼽힐 정도로 유명하다. 100년의 역사가 한몫했지만, 그곳을 명소로 만든 것은 시간이 아닌 사람이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가난한 작가들의 피난처였다. 4만명이 넘는 무·유명 작가들이 이곳에서 숙식을 하며 글을 쓰고 문학을 토론했다. 사뮈엘 베케트,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가 그런 작가였다. 파리 시절 이곳을 단골로 드나들었던 헤밍웨이는 회고록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에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상세히 소개하며 ‘따뜻하고 흥겨운 곳’이라고 적었다.

학림다방은 젊은 영혼들의 안식처였다.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옮겨간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학생이 주요 고객이었지만, 대학로가 문화예술의 거리가 된 뒤로는 음악, 미술, 연극인들의 차지였다. 사교와 우정의 공간이었고, 휴식의 장소였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눈 공론장이었다. 8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는 ‘학림사건’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전혜린 평전>을 쓴 작가 이덕희는 학림다방이 문을 연 1956년부터 2016년 타계 직전까지 즐겨 찾았던 오랜 단골이었다. 1990년대, 건너편 동숭동에서 연극연출에 몰입하던 김민기는 짬을 내 학림에서 휴식을 취했다. 2002년, 파리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작가 홍세화가 공항에서 달려와 기자회견을 한 곳도 학림다방이었다.

학림의 사람들 가운데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백 선생만큼 오래도록 학림다방을 찾은 사람도 없다. 1950년대 자진녹화대를 구성해 나무심기 운동을 벌일 때, 학림은 선생의 아지트였다. 당시 함께 농민운동에 뛰어든 서울대생들을 그곳에서 다독이며 격려하던 이야기는 시가 되어 시집 <젊은날>에 수록됐다. 1989년 통일문제연구소가 근처로 이사한 뒤부터는 학림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선생의 출입이 잦자 학림다방 이충열 대표가 백 선생에게 창가 아래쪽 자리를 지정했다. 손님이 적은 오전이라 가능했다. 격자 창으로 밖이 내다보이는 그곳에서 선생은 신문을 보고 원고를 손질했다. 선생은 항상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을 청해 들었다. 이 대표는 선생이 창밖의 플라타너스를 바라다보며 자연의 변화상을 들려주곤 했다고 전한다. 두 해 전부터 건강이 나빠지면서 선생의 학림 출입이 뜸해졌다. 몸져누운 지난해 말부터는 발길이 끊어졌다.

지난달 28일 학림다방 안팎의 풍경을 보여주는 사진전 <학림다방 30년-젊은 날의 초상>(류가헌, 8일까지)이 개막했다. 전시장에는 사진작가 이충열 대표가 30년 넘게 찍은 인물·풍경 사진 60여점이 내걸렸다. 그중에는 백기완 선생의 사진도 있다. 창가가 보이는 그 자리에, 모시적삼 차림으로 꼿꼿이 앉아 원고를 검토하는 모습이다. 그날 선생은 다시 입원했다. 병상 신세가 아니었다면, 개막식에 참석해 학림다방과의 인연을 들려줬을 것이다. 학림다방에는 4년 전 선생이 문정현 신부와 함께 비정규직 쉼터 ‘꿀잠’ 건립을 위한 <두 어른전>에 출품했던 서예작품이 걸려 있다. 또 계단의 벽보 게시판에는 선생이 휘갈겨 쓴 짧은 시가 남아 있다. ‘밝은 해도/ 캄캄한 밤을/ 하얗게 지새야/ 새벽을 맞이하나니/ 벗이여/ 오늘도 질척이는 벗이여.’ 지난 주말 학림다방을 들렀을 때, 선생이 앉았던 자리가 허전했다. 병마를 떨치고 건강한 몸으로 학림다방의 빈자리로 달려가는 선생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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