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브리핑 수어통역사는 왜 마스크 안 쓸까?…“표정이 반이라서”

노정연 기자 | 영상 이바미 인턴PD
‘코로나19’의 수어 표현. ‘우한’이라는 지역명+바이러스 모양+‘코로나’의 영문 ‘C’를 포함한 손동작(사진1)을 화살표 방향으로 돌린 후 숫자 ‘19’(사진2)를 연결해 표현한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코로나19’의 수어 표현. ‘우한’이라는 지역명+바이러스 모양+‘코로나’의 영문 ‘C’를 포함한 손동작(사진1)을 화살표 방향으로 돌린 후 숫자 ‘19’(사진2)를 연결해 표현한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손동작만큼 ‘비수지’ 기호 중요
입술·눈썹 움직임 등 더해야 정확
1시간 브리핑 움직임으로 전달
체력 소모 커…규정상 2명이 교대

국내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50여일이 지났다. 온 국민의 눈과 귀가 모아지는 정부의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 정부 관계자들만큼이나 익숙해진 얼굴들이 있다. 바로 발표자 바로 옆에서 수어로 브리핑 내용을 전하는 수어통역사들이다. 중계 화면 전면에 나온 수어통역사들의 모습은 그동안 시선 밖에 있던 36만 청각장애인의 세계를 뉴스 화면 안으로 끌어왔다. 하루하루 긴박한 호흡으로 진행되는 코로나19 수어통역의 치열한 현장, 그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 수어는 손으로만 한다? “얼굴이 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국내 발생 현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3월11일 0시를 기준으로 총 누적 확진자 수는….”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의 브리핑이 시작되자 옆에 선 고은미 수어통역사의 손이 바빠진다. 손만 바빠지는 것이 아니다. 입 모양과 표정, 눈빛까지 빠르게 변한다.

“말할 때 억양이 있듯 수어에서는 표정이 그 역할을 해요. 얼굴을 찡그리거나 고개를 갸웃하는 것도 모두 의미가 있어요. 손동작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얼굴을 가리면 의미가 절반밖에 전달되지 않아요. 수어통역사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유예요.”

수어의 구성 요소에는 손동작 외 ‘비수지’ 기호가 있다. 얼굴 표정을 비롯해 입술 모양, 눈썹의 움직임, 몸의 방향까지 섬세하고도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모여야 정확한 수어가 완성된다. 수어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얼굴이 반”이라는 게 ‘상식’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어는 손으로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보니 요즘 같은 시기에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때가 때이니만큼 왜 마스크를 쓰지 않는지 묻는 분들이 많아요.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혼자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으니 감염에 대해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특히 브리핑이 진행되는 곳이 정부 중앙기관인지라 더 위험에 노출되면 안된다는 부담감도 있어요. 브리핑 시작 직전까지 마스크를 쓰고 있다가 통역을 하는 동안에만 마스크를 벗고 끝나자마자 다시 써요. 통역사들끼리도 서로 건강체크를 하면서 각별히 조심하고 있습니다.”

현재 오전과 오후 하루 두 차례 진행되는 정부 중앙기관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는 10여명의 베테랑 수어통역사가 참여하고 있다. 지난 2월4일, 브리핑 현장에서 첫 수어통역이 시작된 이후 통역사들은 한 달 넘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이 진행되는 정부세종청사와 오후 정례브리핑이 있는 오송 질병관리본부를 오가는 중이다. 시청자들이 뉴스를 통해 보는 브리핑 생중계는 10분 남짓이지만 현장에서는 기자들의 질의응답까지 포함해 1시간가량 브리핑이 이어진다. 말을 움직임으로 전하다 보니 체력 소모가 크다. 한 사람의 통역사가 한 번에 30분 이상 수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에 따라 한 번 브리핑에 2명의 통역사가 대기·교대하며 현장 수어통역을 소화하고 있다.

코로나19 브리핑 현장의 권동호 수어통역사. 수어통역사들은 주로 검은색 옷을 입고 액세서리도 하지 않는다. 전달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코로나19 브리핑 현장의 권동호 수어통역사. 수어통역사들은 주로 검은색 옷을 입고 액세서리도 하지 않는다. 전달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15년차 수어통역사 권동호씨는 브리핑 직전까지 코로나19 관련 기사와 현황 자료들을 꼼꼼하게 살핀다. 혹시 모를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의 특성상 매 브리핑의 수어통역은 사전 자료 공유 없이 실시간 동시통역으로 진행된다. 오랜 시간 각종 현장에서 전문 수어통역을 해온 베테랑 수어통역사들이 매번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고 단상에 오르는 이유다.

“보통 발표 내용이 사전 공유되는 일반 브리핑과 달리 코로나19 브리핑은 직전까지 상황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 사전에 자료가 공유되지 않아요. 통역사들도 어떤 내용이 발표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긴장도가 높아요. 특히 브리핑이 빨리 진행되다 보면 감염 확진자와 사망자 등 중요한 숫자 부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집중합니다.”

브리핑에 새로 등장하는 단어나 의학 관련 전문용어의 수어 표현을 통일하는 것도 뉴스 화면 밖 수어통역사들이 고민하는 일이다. 통역사들이 서로 다른 표현을 쓸 경우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용어가 등장할 때마다 한국농아인협회와 공공 수어 브리핑 통역사들이 협의해 표현을 정한다. ‘코로나’부터가 낯선 데다가 ‘우한 폐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등 초반에는 부르는 이름이 많아 수어에서도 여러 가지 표현을 썼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코로나19’ 수어 표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처음에는 ‘중국에서 온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썼어요. 이후 ‘우한’이라는 표현이 추가됐고, 둥근 형태의 바이러스 이미지가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면서부터는 바이러스 모양을 수어로 만들어 썼죠. ‘코로나19’로 공식 명칭이 정해진 다음엔 거기에 숫자 ‘19’를 붙여 쓰고 있어요. 현재 수어통역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코로나19’ 수어 표현은 이와 같은 단어들이 합성돼 만들어졌어요.”

우한폐렴·코로나19 ‘새로운 단어’
농아인협회·통역사 협의로 ‘통일’
화면 하단서 나오다 발표자 옆으로
청각장애인들 크게 ‘볼 수’ 있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변종 바이러스가 통일된 한 가지 형태의 수어로 ‘진화’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친 셈이다.

브리핑에 등장하는 어려운 의학용어도 통역사들을 애먹이는 요소다. 통역사의 재량에 따라 문자 그대로를 ‘지문자’(자음과 모음의 수어 표현)로 전달하기도 하지만, 되도록이면 의미를 쉽게 풀어서 표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예를 들어 ‘자가격리’는 ‘사람을 집에 격리’, ‘코호트 격리’는 ‘병원에 집단으로 격리’로 풀어 쓰는 식이다. 단어는 짧은데 길게 풀어서 표현하다 보니 브리핑에 이 같은 의학용어나 전문용어가 자주 등장할 때에는 통역사의 몸동작이 더욱 빨라진다.

말할 때 억양이 중요하듯 수어에서는 표정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수어통역사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유다.   연합뉴스

말할 때 억양이 중요하듯 수어에서는 표정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수어통역사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유다. 연합뉴스

■ 수어통역 확대 필요한 이유

현재 중앙기관 정책 브리핑에 참여하고 있는 통역사들은 대부분 프리랜서로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가진 15년차 이상 베테랑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국어원에서 수어통역사들의 배정과 지원을 담당한다. 지난해 12월2일부터 정부의 중요 정책 발표 현장에 수어통역 지원이 시작되며 국립국어원에서 50여명의 수어통역 인력풀을 구성했고 그중 한국농아인협회와 수어전문가, 농인들의 추천을 받아 통역사들을 배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적의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수어통역사 자격시험은 민간자격 국가공인시험 중에서도 합격률이 낮은 시험으로 유명하다. 수어통역 자격을 취득하는 비장애인들의 사연도, 활동 범위도 다양한데, 뉴스와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수어통역사들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편이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수어통역사, 대학 강의 등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교육수어통역사를 비롯해 법원과 경찰, 관공서의 민원 업무 현장과 각종 문화행사, 장례식과 결혼식 등 일상 속 이벤트도 통역사들이 활동 무대다. 그만큼 우리 생활 곳곳에 수어통역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전에 없던 규모로 정부 브리핑 현장에 통역사들이 투입되며 관심과 기대도 크다. 국립국어원 특수언어진흥과 관계자는 “수어의 저변과 인식 확대, 농인들의 알권리와 언어권 보장에도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지금과 같은 국가재난사태를 비롯해 중앙행정기관의 주요 정책 발표, 각종 국가기념일 행사에도 수어통역을 확대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생방송 중계, 실시간 동시통역, 높은 긴장도에 “일반 통역보다 체력 소모가 크지만” 그럼에도 이번 코로나19 정부 브리핑에 임하는 통역사들의 마음가짐은 남다르다. 수어통역사들이 뉴스 화면 전면에 나선 흔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청각장애인들이 크게 ‘볼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수어가 화면에 크게 나온다고 너무 좋아하세요. 보통의 뉴스 화면에서는 수어통역이 노출되는 사이즈가 작다 보니 청각장애인분들이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내용을 놓치기 쉽거든요. 특히 시력이 좋지 않은 청각장애인분들은 더욱 보기 힘들어하시고요. 요즘 브리핑 중계 화면에서는 수어통역사가 발표자와 동일한 사이즈로 나오니 전달력이 월등하죠. 1~2초 짧은 시간을 스쳐봐도 내용이 눈에 확 들어온다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보내주세요.”

청각장애인들의 반응을 전하는 고은미 통역사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엄중한 시기에 중요한 정보가 잘 전달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며 이러한 형식의 브리핑 중계가 정착됐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코로나19 브리핑 수어통역사는 왜 마스크 안 쓸까?…“표정이 반이라서”

사태 초반 수어 지원 없어 ‘항의’
전화로만 마스크 판 공영 홈쇼핑
여전히 많은 부분 음성중심 사고
수어통역 왜 필요한지 알아줬으면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약칭 한국수어법)이 제정되며 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로 인정받았다. 이에 따라 공공 행사와 사법·행정 등의 절차, 공공시설 이용, 공영방송, 그 밖에 공익상 필요한 경우 수어통역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의 정보 소외는 곳곳에 있다. 특히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통로가 한정된 장애인들이 재난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더욱 크다. 정부 정책 브리핑을 비롯해 다양한 공공 영역에서 보다 적극적 형태의 수어통역이 필요한 이유다.



이번 정부 브리핑에서 통역사들이 중계 화면 전면에 나서며 장애인들의 시청권 보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사태 초반에는 감염증 관련 안내 동영상이나 정부 브리핑에 수어통역을 지원하지 않아 장애인단체의 항의와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이 잇따랐다. 여전히 일부 방송사에서는 화면에 발표자만 클로즈업하는 등 수어통역사를 배제한 채 뉴스 화면을 편집하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이에 대해 지난달 28일 재난 상황 시 농인들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MBC와 SBS, YTN 및 종합유선방송사들이 정부가 수어통역사와 함께 실시하는 공식 브리핑 뉴스에 반드시 수어통역사를 화면에 포함시킬 것을 촉구했다.

국가인권위는 “수어통역은 단순히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의 제공 문제가 아닌 한국어 대신 한국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법적 의무”라며 “방송사는 정부가 직접 제공하고 있는 수어통역이 한국어 발표자와 동등하게 화면에 잡히도록 촬영과 편집 관행을 개선하라”고 강조했다.

신종 바이러스가 일상을 잠식하는 동안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었다. 권동호 수어통역사는 코로나19 브리핑 통역을 시작하던 초반과 지금, 현장에서 느끼는 긴장도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긴장감이 더 커진다는 그의 말은 재난 상황 속 장애인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통역사들에 대한 관심에 감사 인사를 전한 그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며 당부의 말을 남겼다.

“최근 공영 홈쇼핑에서 마스크를 판매하는데 콜센터에 전화를 해야만 구입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에게 음성으로 전화 주문을 하라는 것은 말이 안되잖아요. 여전히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음성 언어 중심 사고에 치우쳐 있는 것 같아요. 장애인들에게 왜 수어통역이 필요한지, 특히 재난 상황에서 제대로 전달되는 정보 하나하나가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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