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 집권당 "프랑스어 보호 위해 영어 사용자에 불이익"...'언어 논쟁' 촉발

박하얀 기자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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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퀘벡시의 새 법안이 ‘언어 논쟁’을 촉발했다. 집권당이 프랑스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기업 채용시 언어 장벽을 높이고 지자체의 이중언어(영어·불어)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담은 법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차별하고 다문화주의에 반하는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퀘벡 집권당인 퀘벡미래연합(CAQ)이 지난 5월 발의한 ‘96호 법안’은 공공장소와 직장 등에서 프랑스어 사용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업이 프랑스어 이외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고용할 때의 채용 기준을 높이고, 공립 고등교육 기관인 씨젭(CEGEP)에서 영어로 공부하는 학생의 비율을 전체의 17.5%로 제한하도록 했다.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지자체 가운데 영어 사용 인구가 전체의 50% 미만인 곳은 표지판에서 공공 문서에 이르기까지 주요 대민 서비스를 불어로만 제공하도록 규정했다.

캐나다에서 불어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퀘벡에서 영어 사용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식까지 도입하면서 ‘프랑스어 지키기’에 나선 이유는 불어 사용이 점차 줄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2017년 캐나다 통계청 보고서는 퀘벡 가정에서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이들의 비율이 2011년 82%에서 2036년 약 75%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낮은 출생률, 고령화, 이주민 증가 등에 따른 현상으로 분석된다.

캐나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절반 이상인 57%가 영어를 사용하며 프랑스어 사용 인구는 21%에 그친다. 프랑수아 르고 퀘벡 수상은 “프랑스어가 쇠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급히 법을 제정해 불어 사용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몬트리올대 인구통계학자인 마크 테르모트는 “프랑스어에 대한 위협은 환상이 아니다”라며 “인구 통계는 프랑스어권의 편에 있지 않다”고 짚었다.

하지만 퀘벡시의 법안은 특정 언어 사용에 낙인을 찍는 자멸적인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영어를 사용하는 시민들에게 발언권과 온전한 대민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등 차별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크다. 폰티악 의회 소장인 제인 톨러는 “영어만을 구사하는 노년층은 의료 서비스 등을 받기 어려울 것이며 시민 참여가 제한될 것”이라고 CBC방송에 말했다.

가용 인력을 불어 사용자로 국한해 기술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잃을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프랑수아 빈센트 캐나다 독립기업연맹 부회장은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장소가 될 것”이라며 “이 법안은 관료주의, 인건비 증가, 형식주의만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년층의 영어권 교육을 제한한 것이 미래 세대에 대한 차별,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캐나다는 1969년 영어와 프랑스어를 국가 공식 언어로 지정했다. 퀘벡에서는 불어가 공식 언어로 자리매김했다. 공공 표지판과 상업 광고 등에서도 불어 사용이 우세해야 하며, 이민자 가정의 자녀는 프랑스어권 학교에 다니도록 규정돼 있다. 앞서 몬트리올주 정부는 주에서 흔히 사용하는 인사말인 “봉주르 하이(bonjour hi)”를 “봉주르(bonjour)”로 바꾸도록 요구하는 결의안도 통과시켰다.

퀘벡시 서부 지역 대표들은 영어를 사용하는 앵글로폰(복수 언어 사용국의 영어 사용자)을 보호해야 한다며 법안 재고를 주에 청원했다. 19일 회기가 새로 시작하면 96호 법안을 포함해 지난 회기 때 발의된 법안은 모두 폐기된다. 하지만 정부가 입법 절차를 재개할 가능성이 크고 법안은 조만간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사이먼 졸린 바레트 퀘벡 언어 담당 장관은 “이 법안은 앵글로폰 주민들이 필요한 서비스에 접근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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