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자신을 위로하며 ‘쇼미’ 준우승까지…더 위로 올라갈 신스

오경민 기자

“내 팔다리 생활의 달인. 서른까지 무식하게 버텨, 악바리. 하루 빨리 때려치란 아버지의 말이, 나오지 않게 벌떡 걷어차 이부자리.”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가사로 신스(본명 신수진)는 ‘웨이크업(Wake Up)’의 한 부분을 꼽았다. 그는 지난 3일 종영한 Mnet(엠넷)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10>(쇼미)에서 여성 래퍼 최초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을 하겠다며 연고도 없는 서울로 이주해 랩을 시작한지 5년여만이다. 그동안 안 해본 일이 없다. ‘내 팔다리 생활의 달인’이라는 가사는 거기서 나왔다. 아이스크림집부터 일식덮밥집, 패밀리레스토랑, 호텔식당, 치킨집, 족발집, 카페, 편의점, 택배 상하차, 의류업체 물류센터 정리, 아기욕조 판매까지. <쇼미> 녹화 이후에도 시간제 노동을 계속했던 그는 음원 미션 단계까지 오르고 나서야 ‘알바 인생’을 청산했다. 각종 인터뷰와 음악 작업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신스를 2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지난 3일  종영한 <쇼미더머니 10>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래퍼 신스를 지난 20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권도현 기자

지난 3일 종영한 <쇼미더머니 10>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래퍼 신스를 지난 20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권도현 기자

인지도를 차곡차곡 쌓아온 그이지만, <쇼미>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르다. 어떻게 지냈냐는 물음에 그는 “제일 첫 번째로 아버지에게 멋지게 한턱 냈다. 식사 맛있게 하고 서울 돌아와서 화보도 찍고, 인터뷰도 하고 피쳐링도 좀 하며 그렇게 지냈다”고 했다. <쇼미> 이후, 정규앨범의 타이틀 곡 ‘봄비’가 노래방에 등록이 되기도 했다. 광고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 동생과 밥을 먹을 때도 더치페이를 하고, 5만원 이상을 결제해야 하는 날엔 손이 떨려 사인란에 서명 대신 줄 하나를 그었다는 가사를 쓴 그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5년간 뚜벅뚜벅 걸었다. 앞선 시즌에서는 연달아 예선 탈락했다. 주변에선 ‘잘한다’고 했지만 음원이나 공연으로 내는 수익으로 먹고 살기에 턱 없이 부족했다. 아버지는 음악 하는 걸 반대했다. 안정적으로, 평범하게 살라며 공무원 시험을 권했다. 친구들은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다. 홀로 배고프게 음악 하던 시절을 두고 그는 “죽지 않을 만큼만 당근을 주더라”고 표현했다. ‘희망고문’이었다. 학생 때부터 랩을 하며 일찍이 주목받는 이들이 수두룩한데 20대 중반에 랩을 시작해 서른까지 버티는 마음은 어땠을까. 그 마음은 가사에도 드러난다. “끝까지 버티는 XX가 이기는 룰, 깰 수 없게 내가 한번 더 prove(증명한다)(‘Railroad’ 중)”이라고 마음을 다잡다가도 “그만두고 싶어. 사실은 나 꿈꾸라고 말하기에는 쫌 찌들은 나이 … ‘계속 하면 된다’ 했던 말들 나빠. 난 앞이 보이지 않아(‘담배피러가자구’ 중)”이라며 작아졌다.

음원 하나가 주목 받으며 ‘빵’ 뜨거나, 특이한 캐릭터로 주목받는 래퍼도 많지만 그는 정석대로 했다. 랩을 녹음해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리고, 작은 경연 대회에 나갔다. 싱글 앨범을 만들고, 알음알음 공연에 나갔다가 프로듀서 딥플로우에 눈에 띄어 신예 래퍼를 지원하는 ‘보일링 포인트 프로젝트’로 정규 앨범도 냈다. 계속 미끄러지면서도 7년 연속 <쇼미>에 나갔다. 그를 두고 이번 시즌 프로듀서인 개코와 코드쿤스트는 “편법이란, 지름길이란 없는 사람” “계단이 100개가 있으면 100개를 다 밟고 올라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신스는 “진짜 뭔가 조금씩 이뤄가고 있는데 되게 좋은 말로 들리기도 했다. 탄탄하게 하나하나씩 밟고 올라가는 거니까”라며 “(프로듀서들은) 저희끼리 있을 때 ‘이렇게 올라가는 친구들은 (내리막 없이) 계속 올라간다’고 하셨다. 물론 좀 오래 걸리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멀리 봤을 땐 좋은 거 같고, 저다운 거 같다”고 했다. 결선 진출을 앞두고 제작진은 신스와 아버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고향에서 촬영 뒤 신스가 “아버지, 저 잘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30분 뒤 답신이 왔다. “신스의 음악을 응원한다.” 아버지가 그를 처음으로 ‘신스’라고 부른 날이다.

신스(가운데)는 서울에 와 무명시절부터 같이 랩을 해 온 동료 미란이(왼쪽)와 함께 <쇼미> 결선 무대에 올랐다. 미란이는 지난 시즌 본선에 진출해 ‘브이브이에스(VVS)’ 등의 노래로 크게 사랑받았다. 엠넷 제공

신스(가운데)는 서울에 와 무명시절부터 같이 랩을 해 온 동료 미란이(왼쪽)와 함께 <쇼미> 결선 무대에 올랐다. 미란이는 지난 시즌 본선에 진출해 ‘브이브이에스(VVS)’ 등의 노래로 크게 사랑받았다. 엠넷 제공

그는 무대가 제 집인 듯 하다. <쇼미>에 나오기 전까지는 두세 번밖에 공연에 서보지 않았다는 그가 <쇼미> 경연 무대 위에서 활짝 웃는 모습들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는 “관객분들이 계시니까 뭔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며 “긴장을 좀 많이 하는 편인데, ‘즐기는 게 최고’라는 생각을 한다. 경연이지만 공연하듯이 했다. 뭔가 행복함을 느껴서 이렇게 스르륵 (웃게) 됐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바라던 날이 이젠 내 아침. 처음으로 사인해”라며 이제서야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심정을 노래한 결선 경연곡 ‘사인’은 많은 시청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진즉 그를 알아본 프로듀서 딥플로우는 그의 가사를 두고 “완전 새파랗고 뜨거운 것보단, 꺾인 이십대가 풀어내는 미온의 청춘 가사”라고 평했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막연히 상상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닥친 현재를 허세 없이 담담히 풀어내는 가사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유난히 노동과 생활의 경험이 묻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지금 느끼는 감정, 생각을 쓰고, 주변 일상에서 많이 영감을 얻는다. 과거에 살면 마음이 괴롭고 미래에 살면 마음이 불안하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지금에 살려고 한다”며 “제 이야기를 쓰다 보니 진정성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가사를 쓸 때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거나, 마음을 울리는 가사를 최소 한 줄이라도 쓰자는 생각을 하면서 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 “신스 고 업(Since, go up)”이라는 말을 항상 덧붙인다. 그는 “어디까지 올라갈 지는 모르겠지만 한계를 두지 않고 제가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끝까지 올라가려고 한다”고 했다. 신스가 말하는 ‘위로’는 ‘더 높은 곳에 닿고 싶다’는 욕심인 동시에 팬들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기도 하다. “사람들한테 그냥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것처럼 뭔가 위로가 되고 힘과 원동력이 되는 곡도 만들고,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저만의 음악을 하는 게 저의 목표”라고 말하는 그는 정규앨범 ‘인터루드(interlude)’에 썼다. “사는 게 먼저였던 기억을 뺏어. 채울 때까지 난 go 나를 위로해. … 내 목이 쉬어도 이 말만큼은 안 지겹네. 날 위로해. 날 위로해.”

여성 최초 <쇼미더머니10> 준우승 래퍼 신스.  권도현 기자

여성 최초 <쇼미더머니10> 준우승 래퍼 신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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