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의 3일, 한 여성의 고통과 해방의 기록 ‘스펜서’

고희진 기자
전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를 다룬 영화 <스펜서>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전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를 다룬 영화 <스펜서>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국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1961~1997)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개봉한다. 전세계의 사랑을 받았으나 불행한 결혼생활과 비극적 죽음으로 기억되는 다이애나의 삶을, 영화는 3일간의 이야기로 압축해 그려낸다. 사건 설명보다는 인물의 감정선에 치중해 기존 다이애나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와 차별화했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전작 <재키>에서도 인물의 감정에 극도로 집중한 연출을 선보인 바 있다. 다이애나 역을 맡은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실존 인물을 완벽히 재현해 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는 왕실 가족이 영국 샌드링엄 별장에 머무는 크리스마스 연휴를 다룬다. 시작부터 왕실의 폐쇄적 분위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왕족의 휴가를 책임질 음식들은 군인들에 의해 마치 군수 장비처럼 비밀리에 운송된다. 연회에 입장하는 사람들은 전통에 따라 몸무게를 잰다. 파티를 즐겼다는 의미로, 연휴가 끝날 때 몸무게가 늘어야 한다. 왕족이 입을 옷은 개인의 체형, 취향과는 상관없이 날짜별로 상황별로 정해져있다. 다이애나에겐 이 모든 게 억압적으로 여겨진다. 다이애나가 쉴 틈을 보일 때는 오로지 아들인 윌리엄, 해리와 함께할 때뿐이다.

다이애나는 존 스펜서 백작의 셋째 딸로 태어나 1981년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으나, 1992년 별거를 시작해 1996년 이혼했다. 영화가 그리는 시간은 별거 직전이다. 다이애나는 이미 남편의 외도를 눈치채고 있다. 왕실 가족을 비롯해 하인들 모두 그 사실을 알지만 모른 체한다. 진실을 드러낼 수 없고, 역할극만 강요되는 왕실 생활에서 다이애나의 섭식장애는 더욱 심해진다.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냉정한 눈빛이 스크린에 지나간다. 영화는 이렇듯 인물 간 관계를 일일이 설명하기보다 장면의 이미지 하나로 구현해 낸다.

전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를 다룬 영화 <스펜서>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전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를 다룬 영화 <스펜서>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전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를 다룬 영화 <스펜서>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전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를 다룬 영화 <스펜서>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무엇보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다이애나의 정신적 공황 상태를 부각한다. 왕족들이 등장할 때는 바로크 음악을, 다이애나의 단독 신에서는 재즈 음악을 주로 사용했는데, 둘 다 인물의 불안한 정신 상태를 나타내는데 일조한다. 주인공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인물 주변을 카메라로 감싸고 도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이 역시 다이애나의 정신적 고통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다. 별장 근처에 위치해 있지만, 이제는 접근 불가가 돼버린 다이애나의 옛집과 역시 비극적 삶을 살았던 헨리 8세의 두번째 왕비 앤 볼린에 대한 전기를 담은 책도 다이애나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재클린 케네디를 다룬 전작 <재키>에서도 단 1주일간의 이야기로 인물의 복잡한 내면과 미국 전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암살 후 백악관의 불안함을 드러낸 바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는 연출은 이번 영화에서 더 도드라진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고개를 비스듬히 세우고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는 모습은 실제 다이애나를 떠올리게 한다. 극을 거의 혼자 이끄는 데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배우 샐리 호킨스가 맡은 왕실 드레서 ‘매기’ 등 영화를 위해 창조된 조연 캐릭터도 흥미롭다.

영화 속 다이애나의 드레스 등 다양한 의상을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데, <작은 아씨들>, <안나 카레니나>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재클린 듀런이 의상감독을 맡았다.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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