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키아프(KIAF) 대 프리즈(Frieze) 한판승부가 2일부터 6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벌어진다. 갤러리현대, 학고재, 가나아트, 페로탕, 가고시안, 애콰벨라갤러리즈 등 국내외 굴지의 화랑들이 참여하는데 키아프가 17개국 164곳, 프리즈는 21개국 110곳이다. 작가도 백남준, 곽인식, 윤형근, 이건용, 김수자, 피카소, 데이미언 허스트, 루이스 부르주아 등 현대미술 거장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국내외 내로라하는 컬렉터들이 떼를 지어 찾는 만큼 2022년도 한국 미술시장 규모를 벌써부터 1조원대 이상으로 점치고 있다. 언론에서는 단군 이래 최대의 미술시장이 열렸다고 환호한다. 하지만 필자는 동서의 총성 없는 문화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프리즈 서울’은 그림 장사 이전에 한국 미술시장의 위험요인과 강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코리아니즘’ 실현을 가능케 할 근원적인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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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정치 불안은 글로벌 아트마켓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다. 근년에 벌어진 홍콩의 아트바젤 사태가 그 예다. 서울 또한 안보 불안이 상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프리즈가 아시아 여러 도시 중 서울을 택한 이유는 세계 10대 경제강국인 한국의 구매력과 물류, 금융 등의 강한 인프라에 있다는 것이 미술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프리즈 서울’을 가능케 한 더 큰 힘은 서구미술 한계를 극복해낼 잠재력이 동양미술, 그중에서도 한국미술 속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세계 미술의 큰 바람이 아시아로 불어온 지도 오래되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은 지정학적으로나 콘텐츠 창출능력 측면에서 프리즈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 중에서도 극동에 위치한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 문명을 녹여 제3의 문명을 창출해내는 용광로다. 한자문화권에서도 한국은 말과 글은 물론 서화, 가무 등 시청각예술이나 조각, 건축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세계유산이 즐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즈의 서울 상륙은 한국미술 내부의 고질적이고도 당면한 과제를 되돌아보는 거울이 되고 있다. 우선 미술시장 구조의 심각한 왜곡이다. 특히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가격차가 격심하다. 추사의 대련이 2억~3억원대라면 이우환의 윈드 시리즈는 20억~30억원대다. 피카소나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1000억원대를 넘나드는 실상과는 좋은 대조를 보인다. 이 문제의 일차적인 해결책은 국가 차원의 공공뮤지엄 유물 구입을 통한 가격 정상화 개입이다. 그간 국가는 유물의 가격이나 진위 감정평가를 방치하였다. 혹자는 현대미술판에 고미술을 왜 들고나오는가 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고미술이 살아야 현대미술도 살 수 있다. 고미술 가치의 저평가는 결국 한국예술의 절대가치 추락과 직결된다. 현대미술이 기댈 가장 큰 언덕이 고서화다. 다음은 미술의 깊이와 색깔 문제다. 지금 한국의 현대미술 고향은 여전히 파리, 뉴욕이나 진배없다. 일제강점기 이전은 시추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제 한국에서 미술 하면 서화미술이 아니다. 미술은 서예가 빠진 그림일 뿐이며, 현대미술은 서구미술로 직통한다. 한국미술의 유전인자이자 본원적인 자산을 우리 스스로 내다버린 결과다. 그래서 프리즈 앞에 한국미술 색깔은 초록이 동색인 것처럼 변별력이 떨어진다. 서예 언어 부재의 공백이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이번 키아프와 프리즈 전쟁에서 피카소에 맞짱을 뜰 추사 걸작 시리즈 정도는 기획되어도 좋았을 것이다. 더욱이 프리즈가 “작품을 팔러 온 것이 아니다”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서울을 ‘메인 세션’ ‘프리즈 마스터즈’ ‘포커스 아시아’로 전쟁 판도를 짜고 침공하고 있는 마당이고 보면 더더욱 그렇다. ‘프리즈 마스터즈’에는 피카소, 마티스, 몬드리안, 자코메티,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 로이 리히텐슈타인, 데이비드 호크니 등 20세기 거장들이 참여한다. 문화전쟁에 무혈입성하는 프리즈를 우리가 마냥 환호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키아프 도약을 위한 문제와 답을 프리즈가 던져주고 있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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