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서 온 하이틴 스릴러 ‘알라와비 여고’…근데 이제 ‘여성 인권’을 곁들인

최민지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알라와비 여고>. 요르단 수도 암만의 알라와비 여자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이틴 스릴러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알라와비 여고>. 요르단 수도 암만의 알라와비 여자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이틴 스릴러다. 넷플릭스 제공

[오마주]아랍에서 온 하이틴 스릴러 ‘알라와비 여고’…근데 이제 ‘여성 인권’을 곁들인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어서와, 아랍 하이틴은 처음이지 #shorts #오마주

하이틴 영화·드라마를 볼 만큼 본 OTT계의 ‘고인물’들에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익숙한 그 맛’이 하이틴 장르의 매력이라고 해도요. 하이틴 장르 특유의 ‘오그라듦’을 견디기 힘든 시청자들도 때론 ‘조금 다른 하이틴’은 없을까 탐색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알라와비 여고>는 이제까지 본 하이틴 드라마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작품입니다. 드라마의 배경이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아랍 국가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요.

넷플릭스 시리즈 <알라와비 여고>의 한 장면. 권력가의 딸인 라얀(가운데)과 그의 단짝 친구인 라니아, 라콰이아는 학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인공 마리암을 괴롭히는 데도 앞장선다. 넷플릭스 갈무리

넷플릭스 시리즈 <알라와비 여고>의 한 장면. 권력가의 딸인 라얀(가운데)과 그의 단짝 친구인 라니아, 라콰이아는 학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인공 마리암을 괴롭히는 데도 앞장선다. 넷플릭스 갈무리

<알라와비 여고>는 요르단 수도 암만의 알라와비 여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6부작 하이틴 스릴러입니다. 드라마의 뼈대가 되는 스토리는 단순합니다. 주인공은 알라와비 여고에 다니는 열일곱 소녀 마리암입니다. 마리암은 공부도 잘 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는 모범생입니다. 그런 마리암에게 고민이 있습니다. 마리암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못살게 구는 라얀 때문이에요.

권력가의 딸인 라얀은 학교에서 동경과 공포의 대상입니다.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도 라얀에겐 꼼짝 못합니다. 라얀은 모범생이면서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리암이 못마땅합니다. 그래서 친구인 라니아, 라콰니아와 함께 마리암을 집요하게 괴롭힙니다. 언어 폭력은 물론이고 따로 불러내 폭행을 가하기도 합니다. 폭력의 수위가 날로 높아지자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마리암은 복수를 계획합니다. 라얀 무리에게 괴롭힘을 당한 친구 디나와 전학생 노프가 합세하면서 본격적인 복수극이 시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소셜미디어는 중요한 수단이 되죠.

<알라와비 여고>의 주인공 마리암(오른쪽)은 친구인 디나, 노프와 함께 라얀 일당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노프(가운데)는 라얀의 휴대전화를 해킹하는 데 성공한다. 넷플릭스 갈무리

<알라와비 여고>의 주인공 마리암(오른쪽)은 친구인 디나, 노프와 함께 라얀 일당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노프(가운데)는 라얀의 휴대전화를 해킹하는 데 성공한다. 넷플릭스 갈무리

여기까진 익숙한 설정입니다. 새로운 것은 마리암과 친구들이 선택한 복수의 방식에 있습니다. 중동 국가의 여성이 처한 상황, 여성 인권의 열악함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마리암은 가짜 SNS 계정을 만들어 라얀 일당 중 한 명인 라콰니아에게 접근합니다. 달콤한 말로 라콰니아를 안심시킨 뒤 히잡을 벗은 사진을 줄 것을 요구합니다. 라콰니아가 남성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보내자 마리암은 그것을 SNS에 공개해버립니다. ‘머리카락을 내보인 문란한 여자’라는 낙인이 찍힌 라콰니아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됩니다. 마리암이 라니아와 라얀에게 복수하는 방식도 이와 유사합니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은 모호해지고, 마리암을 응원하던 시청자의 마음도 복잡해집니다. 라얀과 그 무리 역시 가부장제 속 피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죠. 실제 라얀 일당이 벌이는 일탈 중 많은 수가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에서 벗어나려 찾은 숨 쉴 구멍입니다. 수학여행 중 숙소를 빠져나와 클럽에 가거나, 격리 기간과 다름 없는 방학을 앞두고 남자친구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몰래 하는 결석 같은 것들이에요. 10대 청소년이 충분히 벌일 법한 이 행동들은 성차별적이고 ‘가족의 명예’를 중시하는 구조 안에선 충격적인 결과로 돌아옵니다.

<알라와비 여고> 한 장면.  마리암 일당이 놓은 덫에 걸려 히잡을 벗은 얼굴 사진이 온라인에 뿌려진 라콰니아가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고 있다. 어머니는 ‘여자는 유리와 같다’며 머리카락을 보인 라콰니아를 ‘깨진 유리’에 비유하고 있다. 넷플릭스 갈무리

<알라와비 여고> 한 장면. 마리암 일당이 놓은 덫에 걸려 히잡을 벗은 얼굴 사진이 온라인에 뿌려진 라콰니아가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고 있다. 어머니는 ‘여자는 유리와 같다’며 머리카락을 보인 라콰니아를 ‘깨진 유리’에 비유하고 있다. 넷플릭스 갈무리

지난해 8월 이 시리즈가 처음 공개됐을 때 요르단 현지에서 시청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큰 화제가 됐습니다. 동시에 논란의 중심에 섰는데요. 요르단의 문화를 부도덕하게 묘사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2019년 첫 아랍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진>이 공개됐을 때 반응도 비슷했습니다. 10대 등장 인물들의 키스신에 보수적인 요르단 사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외설’ 논란 속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이 드라마는 시즌 2 제작이 무산됐습니다. 저에게는 이런 현지 반응이야말로 <알라와비 여고>와 같은 콘텐츠가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로 느껴집니다. 이란에서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히잡 시위나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여성인권 탄압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시리즈가 가진 사회고발적 측면을 강조했지만 그 자체로 볼 만한 하이틴 스릴러물입니다. 낯선 중동 국가의 문화와 언어, 온통 모랫빛인 수도 암만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고요. 등장인물이 한국식 손하트를 날리거나 BTS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등 중동 지역 내 한류 열풍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지난 5월 넷플릭스는 <알라와비 여고>가 시즌 2로 돌아온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인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첫 시즌을 끝낸 뒤 다음 시즌을 두근두근 기다리는 것도 OTT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요.

신선 지수 ★★★★ / 어서 와, ‘아랍 하이틴’은 처음이지?

몰아보기 지수 ★★★ / 한 편당 약 50분씩 6개 회차. 3시간이면 충분!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