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77)대장장이 님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씨앗이 씨를 깨고 ‘앗’ 틔운다. 움 솟나니 빈 껍질이다. 뿌리내리고 싹 키우면 씨는 온데간데없다. 껍데기조차 남지 않는다. 쑥쑥 자라면서 껍질에 제 어린 싹까지 야금야금 먹어치운다. 틔워 솟아 자라고 크면서 앞 꼴은 뒷 꼴의 먹이가 된다. 꼴은 그렇게 나날이 죽고 살지만, 앗은 죽지 않는다. 앗은 숨이요 빛이다. 뒤바뀌는 꼴에 숨빛 솟는 앗이 내고 낼 뿐이다. 열매가 영글면 ‘앗’ 다시 씨알이다.

본디, 씨·껍질·껍데기·꼴은 날마다 나죽는다.

나죽으니 몸이 성하다.

본디, 알·앗·숨·빛은 늘 살아서 이어 잇는다.

나죽지 않고 이으니 맘이 놓인다.

나날이 죽고 살아야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가 예 솟는다.

꺼지지 않는 바탈(本性) 불꽃이 환하다.

사람들은 씨·껍질·껍데기·제 꼴값에 목맨다.

구린내가 진동한다.

사람들은 알·앗·숨·빛 따위 눈 안에 없다.

먼지로 뒤범벅이다.

제 몸뚱이에 끈질겨서 가만있지 못하고 나 뒹군다.

천근만근이다.

가서 예수를 파보라. 텅 비었으리라. 가서 붓다를 파보라. 빛 구슬이리라. 예수붓다의 자리에 흙 묻은 씨앗은커녕 뿌리도 꼴도 없다. 그들은 빛의 씨앗이요, 숨의 나무요, 스스로 솟는 ‘참꼴’(眞身)이다. 없이 있으니 나죽지 않는다. 노자 늙은이는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게 목숨이라고 했다. 그 숨이 ‘앗’이다. 씨를 깨고 앗을 틔워야 삶이 거듭나 숨 돌린다. 그저 텅 빈 자리에 빛 구슬이다.

씨앗이 씨를 깨고 ‘앗’ 틔운다. 틔워 솟아 자라고 크면서 앞 꼴은 뒷 꼴의 먹이가 된다. 꼴은 그렇게 나날이 죽고 살지만, 앗은 죽지 않는다. 앗은 숨이요 빛이다. 닝겔, 흐르는 시선32, 2022, 아이패드

씨앗이 씨를 깨고 ‘앗’ 틔운다. 틔워 솟아 자라고 크면서 앞 꼴은 뒷 꼴의 먹이가 된다. 꼴은 그렇게 나날이 죽고 살지만, 앗은 죽지 않는다. 앗은 숨이요 빛이다. 닝겔, 흐르는 시선32, 2022, 아이패드

죽엄은 죽음이요 주검이다. 죽어 죽은 주검은 하늘땅(天地)이 하는 일이다. 하늘땅이 잘몬(萬物)을 내고 또 거둔다. 그 내고 거두는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다. 하늘의 일이다. 땅의 일이다. 스스로 그러함의 일이다. 스스로 그러함을 따르는 씨알은 늘 죽엄을 두려워 않는다. 본디 있는 그대로 나고 사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꼴값에 목매는 제나(ego)도 늘 죽엄을 두려워 않는다.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기 때문이다.

<도마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이다.

“사람들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들은 내가 이 세상에 분열을, 불과 칼과 전쟁을 주러 왔음을 알지 못한다. … 나는 너희에게 주리라. 눈으로 결코 보지 못한 것, 귀로 결코 들어보지 못한 것, 손으로 결코 만져보지 못한 것, 사람의 마음에 결코 떠오르지 않았던 것을”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제나로 하여금 늘 죽엄을 두렵게 할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에 결코 떠오르지 않았던 참나(眞我)를 어떻게 줄 수 있을까?

썩 좋게 멋 짓고, 솜씨 뛰어난 큰 일꾼을 장인(匠人)이라 한다. 옛사람들은 그를 ‘대장’(大匠)으로 불렀다. 쇠를 잘 다루면 대장장이, 나무를 잘 깎으면 대목장, 그릇을 잘 만들면 대장이. 대목장이든 대장이든, 대장(大匠) 일로 빼어난 그들을 일러 모두 ‘대장장이’라 했다. 대장장이는 일의 맨 꼭대기에 올랐으니 늘 일없다. ‘일없’(無事)에 일이 돌아가는 저절로다. 그래서 아무 탈이 없다.

김재섭은 <문자로 나타난 하나님>에 “고조선 말로 임금님은 ‘쇠붙이, 곧 금(金) 만드는 권리를 맡은 님’이라는 뜻”이라 밝힌다. 시우쇠를 달궈 뚝딱 뚝딱 온갖 것을 만드는 대장장이가 곧 임금님이라는 이야기. 이때 대장간은 어머니요, 대장장이는 아버지다. 대장장이 아버지가 불구덩이 도가니에서 ‘불사름’을 낳는다. 사름이 사람이다. 다석 류영모는 사람을 사름이라면서 “나 다 타”라고 했다.

그렇다면 단군(檀君)은? 몽골 말 텡그리가 당고르, 당골, 단골, 단군으로 바뀐 소릿말이다. 텡그리는 ‘하늘’이면서 하늘의 ‘뜻’을 씨알 인류에게 이어주는 샤먼이다. 부랴트족의 바이칼 게세르 신화에는 텡그리가 하늘 신(天神)으로 나온다. 단군에는 하늘임금(天王)의 뜻도 있다. 이렇듯 몽골과 북아시아에 두루 퍼져있는 ‘믿음’(信仰)에는 텡그리가 있다.

고조선의 임금과 샤먼은 둘이 아니다. 샤먼(제사장)과 임금(정치장)이 하나로 제정일치였으니 환인(桓因) ․ 환웅(桓雄) ․ 단군(檀君)은 모두 대장장이 샤먼이다. 임우기는 <유역문예론>에 “단군왕검은 첫 나라 고조선의 제사장이자 임금이었습니다. 환웅천왕과 지모신(地母神)인 웅녀 사이에 태어난 단군은 천지의 도를 실현하는 강건한 인도(人道)의 화신이요 인신(人神)이었습니다. 단군은 고대 무교가 역사 속에서 속류화, 심하게는 미신화되기 이전에 천신을 모신 큰무당의 원형입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위대한 하늘 신이요, 하늘 임금이요, 하늘 샤먼이리라.

이윤기는 <꽃아 꽃아 문 열어라>에 쓰기를 “모든 것은 ‘알’로부터 시작되었다. … 우주적인 알, 즉 우주란은 생명원리의 출발점이다. 분화되지 않은 전체성과 잠재성의 상징이자 존재의 숨겨진 기원과 비밀의 상징이다.”고 했고, “탈해는 철기 문화를 일으킨 대장장이 샤먼, 즉 야장무(冶匠巫)”라면서 “우리 조상은 본디 대장장이였다.”고 이야기한다.

아주 흥미롭게도 노자 늙은이의 도덕경(道德經) 글월 곳곳에는 옛 조선(古朝鮮)으로 이어지는 그물 줄이 넓게 펼쳐져 있다. 풀무질에 빗대어 대장장이를 말하고, 물고기에 빗대어 조선(朝鮮)의 선(鮮)말하고, 큰 활에 빗대어 동이(東夷)를 말하고, 맨 꼭대기(極)에 빗대어 나라(國)를 말하고, 아낌에 빗대어 여름아비(嗇夫)를 말하고, 통나무에 빗대어 등걸(檀君)말하고, 하늘땅사람 뚫려 솟구친 임금(王)에 빗대어 샤먼을 말하고, 옥에 빗대어 속알(德)을 말하지 않는가.

노자 늙은이 74번 글월은 큰 나무에 빗대어 대목장(大木匠)을 말한다.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일일까? 아니면 정말로 무엇이 있는 것일까?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77)대장장이 님

떠돌이와 사슴뿔이 나섰다. 가보지 않은 데가 없이 세상을 떠돌아 본 떠돌이는 한 때 대장장이였다. 풀무질로 쇠를 시뻘겋게 달구어 꺼낸 뒤 모루에 대고 메질을 했다. 시우쇠를 뚝 끊어 깜을 잡고 다시 달구어 수메를 들이고 날을 세웠다. 시퍼렇게 날을 세운 칼로 나무를 깎기도 했다. 큰 나무를 다루어 집을 지었다. 사슴뿔은 나무를 오르내리며 텡그리 하늘 신을 모셨다. 하늘 모심으로 몸이 올발라지면 한늘 한눈이 열려 예 있는 집집 우주가 다 알아졌다. 텅 빈 자리에 빛 구슬이 환했다. ‘모름직이’로 서니 알음알이가 다 깨져다. ‘있없’ 한 꼴 돌아가는 숨이 넉넉했다.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77)대장장이 님

사슴뿔 : 읽어볼까? 씨알이 늘 죽엄을 두려워 않는다. 어떻게 죽엄을 가지고 두렵게 할까. 사람으로 늘 죽엄을 두렵게 할 것 같으면 다른 짓 하는 이를 내 다 잡아서 죽이겠다. 누가 구태여 할꼬.

떠돌이 : 풀어 읽어볼까? 씨알이 늘 죽엄을 두려워 않는데 어떻게 죽엄을 가지고 씨알을 두렵게 할 수 있을까? 사람으로 하여금 늘 죽엄을 두렵게 할 것 같으면, 두렵게 하는 그 놈을 내가 다 잡아서 죽이겠다. 그러니 누가 구태여 사람으로 하여금 늘 죽엄을 두렵게 하겠는가!

사슴뿔 : 왜 씨알은 늘 죽엄을 두려워 않지?

떠돌이 : 하나는, 씨알이 천지자연을 따르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씨알이 하고픔(欲望)을 따르기 때문이지. 둘 다 어쩔 수 없어. 제 아무리 뜯어 말려도 그 길이 그들에게는 참이니까.

사슴뿔 : 천지자연을 따르는 씨알에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쥐어 잡지 못하는 참(眞)이 가온 숨줄(生命)이지. 참의 숨줄은 끊을 수 없어. 그러니 죽엄을 가지고 두렵게 해 보아야 어림없지! 하고픔을 따르는 사람에게 보이고 들리고 쥐어 잡을 수 있는 ‘제나’가 숨줄이지. 제나의 숨줄은 끊을 수 있어. 그러니 죽엄을 가지고 두렵게 하면 벌벌 떨지.

떠돌이 : 씨알이 두려워하든 안하든, 목숨 줄인 죽엄으로 으르고 다잡는 놈은 아주 나쁜 놈이야. 죽엄은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사슴뿔 : 그렇지!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잘 못 했다간 큰 코 다칠 수 있어.

떠돌이 : 다석 류영모는 “죽음이란 없다. 하늘에도 땅에도 죽음이란 없다. 그런데 사람은 죽음의 노예가 되어 있다. 성경 불경은 죽음의 노예가 되지 말자는 것이다. 죽음이 죽음 아님을 알고 죽음을 무서워 않는 것이 성경 불경의 뜻이지 다른 게 없다.”고 했어. 사람이 죽엄을 함부로 다루는 것도 안 되지만, 끊을 수 없고 나죽지 않는 가온 숨줄의 참올(眞理)로 솟나야 죽엄에서 해방될 수 있어. 그야말로 완전한 자유지.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77)대장장이 님

사슴뿔 : 읽어볼까? 늘 죽임 맡은 이 있어서 죽일 터인데, 죽임 맡은 이를 대신해 죽이면 이는 큰 나무 다루는 이를 대신해 깎는 거 같으니. 그저 큰 나무 다루는 이를 대신해 깎으면 그 손을 안 다침은 드물게나 있을까.

떠돌이 : 늘 죽임 맡은 이는 하늘이지. 큰 나무 다루는 이를 대목장(大木匠)이라고 해. 대목장을 대신해 큰 나무를 깎으면 손을 크게 다칠 수 있어. 그렇듯이 하늘을 대신해 죽엄을 가지고 사람을 두렵게 하면 안 되는 거야. 벼락 맞아 죽을 수 있어. 자, 그럼 74월을 다시 새겨볼까?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77)대장장이 님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배,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 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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