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연계는 ‘여성 서사’ 돌풍…2030 여성이 이끈다

허진무 기자
뮤지컬 <레드북>의 주인공 ‘안나’ 역의 옥주현. 더웨이브 제공

뮤지컬 <레드북>의 주인공 ‘안나’ 역의 옥주현. 더웨이브 제공

공연계에서 여성 주인공을 앞세운 ‘여성 서사’ 작품들이 잇달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여성이 남성 주인공을 보조하는 작품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여성 주인공이 극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작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공연 관객의 절대다수인 여성들의 지지와 공감이 흥행의 동력이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공연 티켓 구매자 중에서 여성이 73.2%로 압도적 다수였다. 특히 20·30대 여성이 47.1%로 전체의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공연계는 여성 팬덤의 구매력을 겨냥해 유명 남성 배우를 캐스팅하곤 했다. 하지만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갈망하는 여성 관객들의 수요가 높아졌다.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20·30대 여성들이 지갑을 열면서 ‘여성 서사’ 공연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뮤지컬부터 창극까지 ‘여성 서사’

‘여성 서사’의 흥행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뮤지컬이다. <레드북>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파혼한 여성 주인공이 사회의 편견을 뚫고 작가로 성공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해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 연출상, 작품상, 음악상을 휩쓸어 뮤지컬계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았다. 올해 프리뷰 공연 티켓은 지난달 오픈 당일 전석 매진됐다. 오는 5월28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다시, 봄>은 가족과 가정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했던 중년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서울시뮤지컬단 50·60대 여성 단원 7명의 실제 경험담과 생각을 극으로 재구성했다. 대본이 없는 상태에서 배우들이 직접 창작에 참여하는 ‘디바이징 시어터’ 방식이다. 지난해 초연 당시 얻은 호평에 힘입어 올해에도 무대에 올랐다. 오는 4월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한다.

뮤지컬 <다시, 봄>의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제공

뮤지컬 <다시, 봄>의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제공

뮤지컬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의 한 장면. 알앤디웍스 제공

뮤지컬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의 한 장면. 알앤디웍스 제공

창극 <정년이>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창극 <정년이>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미국 여성 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실화를 토대로 재창작한 <실비아, 살다>(대학로 TOM, 4월16일까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강머리 앤>을 각색한 <앤>(예그린씨어터, 4월9일까지), 영국 왕 헨리 8세의 여섯 왕비를 다룬 <식스>(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 3월26일까지) 등도 여성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대문호의 미발표 원고 소유권을 다투는 재판을 배경으로 평생 원고를 지킨 할머니 에바 호프가 자기 삶을 찾아가는 내용의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두산아트센터 연강홀, 3월28일부터 5월26일까지)도 개막을 앞뒀다.

‘여성 서사’는 연극과 판소리가 결합한 장르인 창극에도 진출했다. 창극 <정년이>는 1950년대 여성 소리꾼들의 꿈과 성장을 다룬 네이버 인기 웹툰 <정년이>가 원작이다. 주요 캐릭터를 모두 여성 배우가 맡았고, 연출가 남인우와 소리꾼 이자람을 비롯한 여성 창작진이 제작했다. 여성 팬들 사이 입소문이 나면서 국립극장 역대 최고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고정관념 깨는 공연 많아져야

뮤지컬 <데미안>의 한 장면. 낭만바리케이트 제공

뮤지컬 <데미안>의 한 장면. 낭만바리케이트 제공

뮤지컬 <데미안>의 한 장면. 낭만바리케이트 제공

뮤지컬 <데미안>의 한 장면. 낭만바리케이트 제공

남성 캐릭터를 여성 배우가 맡아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젠더 프리’ 캐스팅도 활발해졌다. 뮤지컬 <데미안>(드림아트센터, 3월26일까지)에서는 남성 캐릭터인 ‘싱클레어’와 ‘데미안’ 역을 여성 배우인 홍나현·박새힘·이한별·임찬민도 연기했다. 연극 <아마데우스>(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4월11일까지)에선 모차르트의 재능을 질투하는 ‘살리에리’ 역을 차지연이 연기했다. 지난달 막을 내린 연극 <오펀스>도 등장인물 세 명이 모두 남성 캐릭터지만 여성과 남성 배우가 번갈아 맡았다.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젠더나 인종이 주체인 공연예술이 많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한국에서 ‘젠더 프리’라고 불리는 작품 대부분은 사실상 생물학적 성별만 뒤바뀐 ‘섹스 프리’라는 것이다. 다른 인종 배우가 주역을 맡는 ‘컬러 프리’ 공연도 많지 않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해외에선 성소수자나 흑인이 주역인 공연이 큰 관심을 받는데 한국은 이제야 여성이 주역인 단계까지 왔다”며 “사회적 고정관념을 깨려는 공연이 많아져야 문화도 더욱 풍요롭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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