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상점이 오래가도록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우리 동네에는 이상한 상점이 있다. 얼마 전 상점과 관련된 단톡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봄이 되고 행사가 많으니 팝업 스토어가 수시로 있을 예정이라며 행사에 나와 일할 자원봉사를 신청하라는 내용이다. 날짜도 참으로 고약한 토일토일, 어쩌다 금요일이 양념처럼 끼어있다. 꽃피고 화사한 봄의 주말을 여기 나와 무급으로 일하라는 요상한 권유다. 내 돈 주고 내가 사서 쓰는, 요즘 말로 내돈내산하는 가게에서 일까지 하라니, 정말 뻔뻔스러운 곳이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이뿐만 아니라 동네사람에겐 개미지옥 버금가는 소비의 공간이기도 하다. 새로 나온 실리콘 용기도 사고, 천연수세미도 사고, 물비누도 필요한 만큼 따라서 사가고, 누군가가 내놓은 중고물품도 사간다. 기념품으로 받았지만 딱히 쓸 일이 없었다는 귀여운 볼펜, 아이가 좋아했지만 이제 더 이상 보지 않는다는 동화책, 작아진 옷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새로운 가족들을 만난다.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못 파는 게 없는 세상이지만, 심지어 그곳에선 돈도 받을 수 있고 흥정도 될 텐데 여기에선 무료로 내어놓고 정해놓은 값을 묵묵히 치르고 나간다. 충동 구매했는데 손이 안 가는 아이템이 있다면 반품이 아니라 다시 기증을 요구한다. 참으로 신박한 고객관리 방법이다.

요즘에는 무턱대고 무료봉사 운운하다간 열정페이 논란으로 혼쭐날 수 있는데, 이곳이 세상의 변화를 몰라서 이렇게 당당한 것은 아닐 테다. 그저 고정적인 출퇴근으로 매장을 꾸준히 책임질 단 한 사람의 인건비, 그리고 공간의 임대료조차 겨우겨우 힘겹게 만들어내고 있는 2023년의 자영업, 더 세분화해서 말하자면 제로웨이스트 숍의 현실과 한계 때문일 것이다. 구경하는 사람도 많고 감탄하는 사람도 많고 칭찬하는 사람도 많지만 구입하는 사람은 한정적이랄까. 가게란 모름지기, 손님들이 돈을 내고 무언가를 자꾸 사야 수입이 늘어날 텐데 끝까지 쓰라고, 조금씩 쓰라고, 덜소비하고 더 존재하라고 주장하는 가게라니 결국 상점은 늘 위태롭다.

자원봉사를 신청하는 사람들도, 갈 때마다 바리바리 살림 아이템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모두 이곳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빠르게 쓰고 버릴 수 있는 물건들을 얼마든지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장바구니도 들고 오고, 담아갈 빈 용기도 들고 오고, 이왕이면 기증할 물건도 갖고 오고, 온 김에 자원활동도 하라는 이 불편한 가게가 한 달씩, 1년씩 그럭저럭 버티고 있어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자연에서 온 소재가 주는 특유의 안정감, 목재나 면화 제품이 주는 부드러운 온기, 지구를 생각하는 이웃들의 다정함은 제로웨이스트 숍의 한쪽 모습일 뿐이다. 어쩌면 인건비와 매출을 고민하고, 구매를 요청하지만 소비를 지양하자고 외치기 위해 어떤 맥락에서 어떤 물건을 팔아야 하는지 머리를 싸매는 모습이 제로웨이스트 숍의 숨은 진짜 모습인 셈이다. 그러니 만약 우리동네에 의미있는 가게가 들어서서 좋다는 생각이 든다면, 환경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지도에서 제로웨이스트 가게에 즐겨찾기를 해두자. 용기를 내어 시작한 사람들이 오래갈 수 있도록 동네사람들의 힘을 보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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