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매체 “새로운 전성기” 평가···‘전략’ 따라 소원 오간 북·러관계 78년

박은하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손을 맞잡고 있다. TASS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손을 맞잡고 있다. TASS연합뉴스

북·러관계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러시아는 서방 제재를 뚫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끌고 갈 발판을 마련했다. 북한은 비핵화를 논의했던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4년7개월 만에 세계질서의 변수로 부상했다. 북·러는 이 같은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며 탈냉전 이후 유례없이 밀착할 전망이다.

북한과 러시아 모두 양국 관계 진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북한 공식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17일 “조·러(북·러) 두 나라 관계 발전의 역사에 친선 단결과 협조의 새로운 전성기가 열리고 있는 시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3일 정상회담 만찬에서 “소련은 새로 창건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처음 인정했다”며 냉전시대 양국의 역사적 유대를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기억한다고 언급했으며 “새로운 친구 두 명보다 옛 친구 한 명이 더 좋다”는 러시아 속담도 인용했다.

북·러관계는 1945년부터 현재까지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해볼 수 있다. 양국은 냉전시대 전통적 우방국이었지만 협력 일변도의 관계만은 아니었다. 양국은 지난 78년 동안 전략적 목표에 따라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련은 1940~1950년대 북한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에 개입하며 북한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945년 8월 만주 지역에서 일본을 패망시키고 한반도에 진주한 소련군은 연해주 극동전선군 산하 88독립보병여단 대위였던 김일성을 내세워 친소 정권을 수립했다. 소련 최고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1950년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허락하고 무기를 제공했다. 북한의 핵개발도 1950년대 구 소련과의 핵연구 협정에서 출발했다. 북한은 소련의 두브나 핵연구소에 과학자들을 파견해 핵기술을 습득하게 했다. 또 북한 최초의 원자로인 IRT-2000 연구용 핵반응로를 제공한 것도 소련이었다.

북한은 1960~1980년대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며 실리를 챙겼다. 스탈린의 뒤를 이은 소련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는 1956년 자본주의 진영과의 평화공존 제창과 스탈린 격하 운동을 펼쳤다. 중국 공산당 내에서 절대권력을 구축하려던 마오쩌둥은 이에 반발했다. 국경분쟁과 공산진영 내 패권경쟁까지 맞물려 1960년대 중·소갈등이 이어졌다.

북한은 이 시기 중·소분쟁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으며 중·소 양국과 모두 안보 조항이 포함된 우호조약을 맺었다. 국립외교안보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 등거리 외교를 펼친 이유는 중국으로부터의 안보·경제 지원 외에도 “소련의 과학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핵 기술의 핵심을 이전을 이전받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1964년 자체 핵 개발에 성공한 중국도 북한으로 핵 기술 이전은 거부했다. 북한이 제국주의 전쟁이라고 규정한 베트남 전쟁에 중·소 양국이 모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에 북한은 1966년을 기점으로 중·소 양국과 거리를 두는 외교노선을 공식화해 중·소 양국으로부터 자율성을 보이는 이른바 ‘주체외교’로 전환했다.

북·러관계는 소련의 1980년대 개혁·개방 정책과 한국의 북방정책, 소련 붕괴 등을 거치며 소원해졌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0년대 중반 러시아 외교는 ‘친남소북’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협력을 매개로 한국과 밀착하면서 북한과의 군사협력에 힘을 뺐다. 러시아는 1995년에 북한과 1961년 맺은 ‘조소우호조약’ 파기를 선언했다. 이후 2000년 9월 러시아 외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조러우호선린협력조약’을 맺었지만 이 조약에는 조소우호조약에 있었던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제외됐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대 러시아의 ‘친남소북’ 외교를 남북한에 대한 ‘등거리 외교’로 전환했다. 한국과의 밀착이 러시아의 역내 발언권을 떨어뜨린다는 판단에서였다. 러시아는 남북대화 촉진, 한반도 긴장완화, 북핵문제 해결, 한반도 비핵화 등의 원칙을 유지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4자회담, 극동 가스관 개발 등 남·북·러 삼자관계 내에서 한반도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려 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러 양자관계는 새로운 전환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러 양국의 전략적 필요가 수렴됐다”며 “러시아는 전쟁으로 세계질서 새판짜기에 나섰으며 ‘장기 소모전’을 염두에 두고 안정적인 군수지원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 연구위원은 “북한은 이번 전쟁을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고도화하면서 철저한 국제적 고립에 직면 상황에서 빠져나올 기회로 삼았다. 북한은 국제적 압력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한은 이례적으로 침묵하다 사흘 만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패권에 맞서는 전쟁이라는 논평을 냈다. 이후 유엔의 6차례 걸친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반면 한국은 서방의 대러 제재에 적극 동참하는 것을 넘어서 한·미·일 밀착 행보를 보였다. 이런 점이 러시아의 대한반도 전략 전환으로 이어진 배경 중 하나로 평가된다.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는 “러시아는 북·러관계 강화로 미국의 관심을 동북아로 분산시키며, 인도·태평양 동맹과 대서양 동맹을 연결하는 미국의 구상에 한국이 역할을 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제 교수는 “다만 러시아에게 북한은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흔들 만큼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라면서 “안보리 제재를 최대한 우회하며 북한과 어떻게 협력할까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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