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주기-(4)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이태원에서 살아남은, 지켜본, 살아내는 두 사람

전지현 기자

1년 지나 다시 돌아온 가을바람

더는 마냥 즐길 수가 없어

“작년엔 펜스·안내 요원 없어

그때도 올해처럼 이렇게 해주지”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근처에서 경호 업무하다가, 참사로 쓰러진 사람들을 목격한 뒤 새벽까지 CPR 등 구조 작업 실시한 경호원 이주승씨. |권도현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근처에서 경호 업무하다가, 참사로 쓰러진 사람들을 목격한 뒤 새벽까지 CPR 등 구조 작업 실시한 경호원 이주승씨. |권도현 기자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씨가 지난 1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용산이태원참사진상규명과재발방지를위한국정조사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씨가 지난 1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용산이태원참사진상규명과재발방지를위한국정조사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초롱/ 김초롱씨(33)는 자전거를 탈 때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좋아한다. 그는 지난해 10월29일 불던 바람의 쾌청함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친구들과 각자 준비한 코스튬을 입고 서울 용산 이태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그 날 아침, 초롱씨는 천변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오늘 얼마나 재미있을까?’ 기대했다.

1년이 지나 다시 돌아온 가을바람을 그는 더는 마냥 즐길 수가 없다.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10월 들어 바람이 피부로 닿을 때, 그날의 감정이 트라우마처럼 되살아나더라”고 말했다. 아픔은 계절처럼 문득 찾아오는 것이니, 그땐 꼭 다시 상담을 찾으라던 상담사의 조언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주승/ 경호원 이주승씨(21)는 그날 이태원의 한 술집으로 오후 8시쯤 출근했다. 그와 팀원들이 경호업무를 맡은 술집은 참사가 발생한 바로 그 골목에서 1분 거리에 있었다. 3년 만의 노마스크 핼러윈, 이씨는 지난해 그날 몰려들 인파를 일찌감치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사람은 훨씬 많았다. 출근길의 한 골목에서 그는 7살쯤 돼 보이는 어린아이가 인파에 치이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아이를 붙잡아 골목 옆의 계단 위로 들어올렸다. 일터에 도착한 그는 곧장 팀원들에게 당부했다. “사람이 너무 많다. 이러다 사고 나겠는데? 조심하고, 안전하게 하자.”

경찰이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첫 핼러윈 기간을 맞아 시민 안전을 위한 종합대책을 시행한 가운데 경찰들이 지난 2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을 순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경찰이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첫 핼러윈 기간을 맞아 시민 안전을 위한 종합대책을 시행한 가운데 경찰들이 지난 2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을 순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그날의 다짐은 지켜지지 못했다. 참사 1년을 맞은 지난 27일, 이씨는 이태원의 같은 골목을 지나 같은 가게로 출근했다. 1년 전과 달리, 거리는 한산했고 곳곳에 경찰관·구청 공무원들이 있었다.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를 가로질러 설치해 둔 안전펜스를 본 그가 말했다. “작년엔 이런 펜스도, 기준선도, 안내 요원도 없었어요. 그때 이렇게 해주지….”

경향신문은 참사 당일 같은 공간에 있었던 김씨와 이씨에게 그들이 살아 온 지난 1년을 물었다. 서로 다른 모양으로 참사를 겪어낸 두 사람은 아물지 않은 그 날의 상처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2022년 10월29일 그날, 두 사람은

2022년 10월29일 오후 3년 만에 거리두기 없는 핼러윈 축제가 시작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가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제공

2022년 10월29일 오후 3년 만에 거리두기 없는 핼러윈 축제가 시작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가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제공

초롱/ 반짝이는 밤이었다. 온갖 분장을 한 채 거리를 누비는 어른들과 부모님 손을 붙든 채 사탕 바구니를 흔들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아이들이 거리에 가득했다.

오후 10시가 넘어선 시각, 김씨와 친구들은 참사 현장 골목으로 떠밀리듯 이동했다. 어느 순간 사람들 사이에 끼여 건너편이 보이지 않고,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였다. 발은 ‘동동’ 떠다니는 듯 했고 가슴은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조여왔다. ‘이상한데, 괜찮겠지’ 두 가지 생각이 번갈아 들었다고 그는 훗날 책에 썼다.

김씨는 한 가게 테라스 쪽으로 몸이 밀려난 덕에 인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가게 직원이 열어준 문으로 몸을 피했다. 김씨는 함께 있던 친구가 대피한 가게로 이동해 그곳에 머물렀다. 약 2시간 후 ‘대규모 압사 사고’ 속보를 보기 전까지, 그는 지나온 골목에서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곳이었다.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근처에서 경호업무하다가, 참사로 쓰러진 사람들 목격한 뒤 새벽까지 CPR 등 구조 작업 실시한 경호원 이주승씨가 지난 27일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근처에서 경호업무하다가, 참사로 쓰러진 사람들 목격한 뒤 새벽까지 CPR 등 구조 작업 실시한 경호원 이주승씨가 지난 27일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주승/ 오후 10시40분쯤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나선 이씨는 50여명의 사람들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것을 봤다. 쓰러진 이들은 얼굴과 배가 밟힌 채, 차마 눈길을 줄 수 없을 만큼 멍이 들거나 피를 흘리고 있었다. 경사진 골목에 열 겹이 넘는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지옥이 있다면 그날 그곳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심폐소생술(CPR)을 진행해달라’는 구조당국의 요청에 이씨와 팀원들은 일제히 뛰어나와 CPR을 도왔다. 한 남성에게 CPR을 하던 그에게 “제발 살려달라. 제발 도와달라”고 부탁하던 그 남성의 여자친구를 이씨는 잊지 못했다. “제가 꼭 살릴 테니 제발 진정하시라”고 말했던 기억이 죄책감으로 남았다. “그분이 돌아가셨을 수도 있잖아요. 그 말을 하지 말걸 싶었어요. 저 때문에 나중에 더 큰 절망감을 느끼셨을 수도 있어서….” 이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전 6시 해가 뜨고, 마지막 소방 브리핑이 나올 때까지 그는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살아낸 1년, 두 사람이 마주한 것

지난 2월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추모제에서 생존피해자 김초롱씨가 증언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2월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추모제에서 생존피해자 김초롱씨가 증언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초롱/ 그 날 새벽부터 김씨는 이틀 밤을 꼬박 새워 참사 관련 뉴스만 찾았다. ‘내가 될 수 있었다’는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은 죄책감이었다. 자신도 그 인파 속의 한 명이었던 점,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고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했던 점이 스스로를 ‘징그럽다’고 느끼게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 자신을 돌보지 않는 극도의 우울감이 김씨를 삼켰다.

지인의 조언으로 시작한 전화 상담은 시작부터 장벽이었다. ‘참사 생존자이시다’는 상담자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는 “훨씬 아프고 다친 사람도 많은데 내가 뭐라고. 나 정도는 괜찮은 것 아니냐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런 김씨에게 상담사는 “당신은 놀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것”이며 “그날 거기에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어딜 가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게 맞다”고 답했다. 그 말에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렸다.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근처에서 경호업무하다가, 참사로 쓰러진 사람들 목격한 뒤 새벽까지 CPR 등 구조 작업 실시한 경호원 이주승씨가 지난 27일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근처에서 경호업무하다가, 참사로 쓰러진 사람들 목격한 뒤 새벽까지 CPR 등 구조 작업 실시한 경호원 이주승씨가 지난 27일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주승/ 이씨는 참사 직후 이태원에서 하던 일을 잠시 그만뒀다. 이태원을 다시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4명의 경호원은 아예 경호업을 관뒀다.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들을 붙잡지 못했다. “손이 두 개밖에 없다는 것에 처음으로 저 자신을 원망했어요. 한동안 계속 천장만 보고 누워만 있었습니다.”

올해 여름까지 ‘이태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이 소스라치게 떨렸다. 하지만 그는 따로 상담을 받지는 않았다.

겪어낸 1년, 다시 이태원으로

초롱과 주승/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1년 전 그날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김씨는 상담을 받으며 느낀 바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했는데, 최근에는 자신이 목격하고 겪은 바를 엮어 책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아몬드)를 펴냈다. “복기하는 건 생각보다 아프고, 우울한 일”이었다는 그는 “너무 감정적으로 쓰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김씨는 같은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멀리서나마 이렇게 살고 있다는 연결감을 그때 그 현장에 있던 수많은 이들에게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이기적인 마음으로 쓴 저만을 위한 글이었는데 사람들이 읽고 힘을 얻었다고 말씀해주시니 감사함을 넘어 고개를 숙이게 되더라”고 했다.

지난 21일 서울 마포 동교동 한 카페에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생존자 김초롱씨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의 앞에는 그의 저서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가 놓여있다. 전지현 기자

지난 21일 서울 마포 동교동 한 카페에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생존자 김초롱씨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의 앞에는 그의 저서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가 놓여있다. 전지현 기자

그는 ‘알려진 생존자’로서 국회와 언론 등에 나서는 일도 피하지 않고 있다. “희생자들과 저는 단순히 운으로 운명이 갈린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사람의 일부를 가져와 제가 살아가고 있는 듯한 생각입니다.” 김씨는 앞으로도 참사를 여러 형태로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지난 2월쯤부터 이태원의 그 가게에서 경호 업무를 다시 맡았다. “어디에서, 누구를, 어떻게 살리려했었는지, 그 얼굴까지도 떠오른다”는 그에게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책임감이 그를 다시 이태원으로 이끌었다. 그도 김씨처럼 스스로를 ‘혼자 빠져나온 사람’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근처에서 경호업무하다가, 참사로 쓰러진 사람들을 목격한 뒤 새벽까지 CPR 등 구조 작업 실시한 경호원 이주승씨가 지난 27일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근처에서 경호업무하다가, 참사로 쓰러진 사람들을 목격한 뒤 새벽까지 CPR 등 구조 작업 실시한 경호원 이주승씨가 지난 27일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다시 돌아온 핼러윈 주간. 사람이 가장 몰리는 금요일과 토요일 근무에 이씨는 자원했다. “다신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할 거예요.” 그가 참사 1년 후의 금요일 저녁, 골목을 돌며 말했다.

계절처럼, 참사의 상흔은 지금도 불쑥 이들의 삶을 덮친다. 김씨는 더 이상 사람이 많은 곳을 찾지 않게 됐다. 이씨는 출근길인 이태원 거리를 걷다 종종 울컥한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에게 남은 상처보다 더 아픈 게 ‘잊혀져선 안될 이들이 잊혀지는 것’이라고 헀다. 너무 쉽게 참사와, 희생자와 유가족이 지워지는 데서 느끼는 안타까움이다.

10·29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왜 기억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두 사람은 같은 대답을 내놨다. “되풀이해선 안 되니까요. 누구라도 기억해야죠. 적어도 저는 그날을 잊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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