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것, 중요한 것, 아름다운 것

인아영 문학평론가

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시의 길이와 무관하게 서사, 장면, 언어라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고 말해보자. 시에서는 일련의 사건이 흘러가기도(서사), 하나의 풍경이 드러나기도(장면), 말 자체가 서술되기도 한다(언어). 한 편의 시에는 세 요소가 혼합되어 있을 테고, 세 가지 모두 시가 꽤나 잘 다루는 영역이지만, 장면에 관해서라면 시라는 장르와 유독 각별하다. 물론 소설처럼 이야기에 육박하는 시도 있고, 사진처럼 순간으로 압축되는 시도 있으며, 철학처럼 명제로 승화되는 시도 있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장면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머물게 하는 일이라면 시만큼 잘하는 장르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시가 그리는 장면이란 무엇일까. 두말할 것 없이 ‘이상한’ 장면이다. 그렇게 확신하게 된 계기는 임유영의 첫 시집 <오믈렛>(문학동네, 2023)을 읽고서다. 첫 시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능숙하고 부드러운 이 시집에 대해서 해설자가 임유영의 시에는 별다른 것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한 마음” 하나만큼은 도드라진다고 적은 이유도 단박에 이해가 간다. 임유영의 시에서라면 이를테면 이런 장면들이다. 어느 성당 뒤뜰의 감나무에 천사가 걸려 있는데 그 발가락 끝에서 물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거나(그러자 젊은 사제가 망설이며 묻는다. “이거 혹시 천사님의 오줌일까요?”), 어느 암캐가 땅만 파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동자가 땀이 젖도록 뛰어갔지만 개는 이미 죽어 늘어져 있다거나(그러자 동자가 엉엉 울며 말한다. “아이고 개야, 개야. (…) 두 번 다시 태어나지 말라”).

이 시집에서 또 이상한 장면 중 하나. 음악을 너무 사랑해서 계절마다 친구들에게 좋은 음악을 모아 들려주는 친구가 있다. 술을 홀짝이면서 네가 정말 좋아할 거라며 이 곡 저 곡을 들려주는 이 다정한 친구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음악을 들려주다가 어느새 깊이 취해버린 채 자기 앞의 술잔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친구를 보며 나는 이상한 생각에 빠진다. 이 사랑스러운 친구가 “거기에 무엇 중요한…… 어떤…… 저절로…… 고여 있다는 듯이” 술잔을 바라보면서 슬픈 생각을 할까봐 두려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의 골똘한 눈빛은 내게로 옮겨온다. “마지막 술을 들이켜지. 난 그때마다 뭔가 잊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거야.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

마침 문학동네 시인선 200호 기념 티저 시집 <우리를 세상 끝으로>에서 신작시를 발표한 모든 시인에게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었기에 50개의 매력적인 답변들 가운데 임유영 시인의 대답도 읽을 수 있다. 시란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잊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고.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란 꼭 시 속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말 중요한 것들은 시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삶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정말 중요한 것엔 영영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친구가 “깊이 취해 고개를 기울인 채 자기 앞의 술잔만을 바라”보고 있는 이상한 장면들 덕분이 아닐까. 이상한 것으로부터 중요한 것을 떠올리게 하고, 중요한 것으로부터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가 우리에게 주는 것 아닐까. 서사가 되기엔 짧고 언어보다는 복잡한 장면들이 우리의 삶엔 언제나 출렁이고 있으므로.

인아영 문학평론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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