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사퇴=윤 대통령의 실패”···윤심 논란 점철된 김기현의 9개월

문광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왕궁에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주최로 열린 국빈 만찬에서 답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왕궁에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주최로 열린 국빈 만찬에서 답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체제가 13일 9개월 만에 종료됐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의 실패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자릿수 지지율이었던 김 대표가 당권 레이스에 뛰어든 순간부터 주요 의사결정 국면마다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저조한 지지율 등 내년 총선에서 패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김 대표 사퇴를 불러왔지만, 윤 대통령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문제는 그대로라는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김 대표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오늘부로 국민의힘 당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당이 지금 처한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은 당대표인 저의 몫이며, 그에 따른 어떤 비판도 오롯이 저의 몫“이라며 “부디 우리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를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당내 번진 위기론을 자신의 책임으로 떠안으며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김 대표 체제의 불완전한 종료는 윤 대통령과도 무관치 않다. 김 대표 체제가 처음부터 윤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구조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당권주자 여론조사에서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렀던 김 대표가 전당대회 직전 선두주자로 떠오른 것부터가 윤심 후보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해 12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장제원 의원과 ‘김장연대’를 결성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안철수 의원,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 등 경쟁 후보들은 ‘윤심 후보가 아니다’라는 대통령실의 확인 절차를 거쳐 자연스레 뒤로 밀려났다. 대통령실 행정관들이 김 대표 지지 홍보물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파해달라고 당원들에게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렇게 출범한 김기현 지도부는 용산과의 당정일체에 열을 올렸다. 지난 6월 윤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발언 논란에 박대출 당시 정책위의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대입(대학입시) 부정 사건을 수사 지휘하는 등 대입 제도에 누구보다도 해박한 전문가”라며 윤 대통령을 추켜세웠다.

윤 대통령의 이념전쟁 논란, 부적절 인선 등 잘못된 국정운영에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지난달 8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가 불거진 때에는 입장을 내지 않는 것이 대응이라면 대응이었다. 김 대표는 지난 9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관련 질문에 “이미 입장을 다 밝혔으니 그것으로 갈음하겠다”고만 했다. 김행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선 논란에 대해서도 옹호 일색이었던 당 지도부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직후인 지난 10월12일에서야 대통령실에 ‘사퇴 권고’ 방침을 전달했다.

국민의힘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로 김태우 전 구청장을 공천한 것은 윤심 논란의 절정이었다. 당초 당 지도부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김 전 구청장 공천에 회의적이었지만 윤 대통령이 김 전 구청장을 특별사면한 것을 계기로 분위기가 일변했다. 당시 민주당은 “윤 대통령 눈치를 보느라 공천을 강행하겠다니 뻔뻔하고 한심하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가 전권을 주고 출범시킨 혁신위는 수직적 당정관계에 대한 내재된 불만을 터뜨린 뇌관이 됐다. 혁신위는 당 지도부·중진·윤핵관을 직접 겨냥함으로써 당내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물꼬를 텄다. 이는 김 대표에 대한 리더십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방패막이 됐던 일부 친석열(친윤)계 의원들마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파장이 됐다. 결국 혁신위의 ‘희생’ 요구를 거부하던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김 대표도 사퇴를 강요받게 됐다. 한 비윤석열계 의원은 “대통령의 손아귀에 들어있던 당이 국민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자 김 대표가 책임을 지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김 대표의 퇴진이 윤 대통령의 국정기조 변화로 이어질지 여부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김 대표와 만나 신중한 결정을 주문했다. 그는 이날 유튜브 채널 ‘스픽스’에 출연해 두 사람의 만남을 공개하고, 김 대표에게 “지금 발생한 상황의 가장 큰 책임은 김 대표가 아니니 조금 여유를 가지시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김 대표 사퇴론을 “전투에서 졌는데 지휘관은 멀쩡하게 네덜란드에 있고, 군단장 정도를 원흉으로 모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윤 대통령에게 있는데, 김 대표만 억울하게 토사구팽 신세가 됐다는 취지다. 김 대표가 이날 기자회견도 없이 SNS로 대표직 사퇴를 밝힌 것도 이런 불편한 마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김 대표는 공관위가 발족이 되면 자연스럽게 당 대표는 뒤로 물러나는 수순이니까 그 시간을 기다렸던 것 같다”며 “김기현 당대표를 우리가 사퇴시킨다는 건 윤석열 대통령의 미스가 인정돼버리는 것이라 한 개인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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