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기차 ‘피바다’에서 살아남기

김용현 한국폴리텍대학 부산캠퍼스 전기자동차과 교수

눈 쌓인 제주공항에서 택시를 탔다. 영하에 차 안이 너무 추웠다. 알고 보니 히터를 틀면 주행거리가 짧아지는 전기차였다. 기사는 난방을 포기하고 운행을 선택했다. 주유소에 상업용 전기자동차가 줄을 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차 안의 난방을 위해 난로 기름을 사야 한다. 미국 시카고는 불어닥친 한파로 전기차가 멈춰 섰다. 추우면 배터리가 금방 방전되고 충전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은 충전소를 전기차의 무덤이라고 표현한다. 모두 추위에 꼼짝 못하는 배터리 때문이다. 아직까지 온도와 무관하게 성능을 발휘하는 배터리는 없다. 결국 기술적인 한계가 소비자 불편으로 연결됐다.

이에 더해 최근 전기차 판매량이 급속도로 하강했다. 아시아, 유럽, 미국까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미국 포드는 인기 전기차 모델 생산량을 대폭 줄여 직원 1400명이 공장을 떠난다. 일본은 장려금을 2배 늘려 판매 둔화세를 극복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유럽은 보조금을 삭감하고 배기가스 규제를 손질하려 한다.

경제 전문가는 이런 현상을 ‘캐즘’이라 부른다. 신기술이 확산되기 전 겪는 정체현상을 말한다. 이 과정을 극복하면 시장에서 널리 팔리고 못하면 사라진다.

여기에 전기차를 흔드는 변수가 있다. 중국이 가격 출혈을 주도하는 것이다. 사실상 중국은 전 세계 전기차 산업을 쥐락펴락한다. 중국이 가격을 올리면 올려야 하고 내리면 역시 따라 내려야 한다. 그 막강한 테슬라도 값싼 LFP배터리를 장착해 가격을 낮추고 있다. 각국 자동차 회사도 가격 할인에 동참하며 제 살을 깎고 있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전기차 시장을 ‘바닥을 향한 경쟁’이며 ‘피바다(bloodbath)’가 될 것이라 했다.

캐즘과 가격 출혈 전쟁터에서 한국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정답은 내수 시장을 탄탄히 하는 것이다. 해외 판매가 부진해도 막강한 내수 시장으로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전기차를 운전하는 소비자들의 불편을 해소해야 한다. 방법은 충전 인프라를 확산하는 것이다. 한파에 급감하는 배터리의 용량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쉽고 빠른 충전이다. 결국 충전소 확대에 정부와 기업 모두 노력해야 한다. 정부가 올해 충전소 보급 투자를 늘린 것은 옳은 판단이다. 여기에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해 보급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

자동차 제조사 역할도 크다. 충전소 확산에 따른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충전 사업에 여러 대기업이 뛰어들고 있으나 수익에 앞서 소비자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는 가격도 포함된다. 현재 충전 가격보다 더욱 저렴하게 제공해야 한다. 테슬라는 무료 충전 서비스 사업을 여러 번 했다. 일부 모델은 3년간 무상 충전을 진행 중이다. 미끼상품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으나, 충전 서비스 혜택은 긍정적이다.

과거 정보 확산이 느렸던 시대에는 시장 변화도 느렸고 대응에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정보 유통이 빠른 현재 소비자가 겪는 불편은 금방 공유되고 전파된다. 기업과 정부가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소비자는 전기차를 외면할 것이며 캐즘을 돌파하기 어렵다.

특히 제조사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 ‘역대급’ 실적을 올린 현대차·기아는 이 부분을 곱씹어보아야 한다. 회사 성장에는 국내 소비자의 선택과 희생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내연기관 초창기 차량 품질이 좋지 않았을 때도 소비자는 아낌없이 선택해주었다. 전기차 시대로 전환되는 현재도 동일하다. 독과점에 가까운 지위를 누리는 기업으로서 제조사는 수익을 앞세운 시장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겨울 추위에 히터도 못 틀고 운전하는 소비자의 어려움을 십분 이해해야 한다. 정부보다 더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가 가능한 제조사는 소비자들이 겪는 고충을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결국 전기차 피바다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국내 소비자의 마음을 붙잡아놓는 것이다.

김용현 한국폴리텍대학 부산캠퍼스 전기자동차과 교수

김용현 한국폴리텍대학 부산캠퍼스 전기자동차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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