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열풍의 종말···자연에 이끌렸다가, 현실에 질려 떠난다

박미라 기자

인구 1687명 감소···14년 만에 ‘순유출’

20대서 2002명 빠져나가 가장 큰 규모

청년 “일자리·근로환경 열악, 물가 부담”

제주 감귤따기 체험. 제주도 제공

제주 감귤따기 체험. 제주도 제공

인천에 살지만 제주도에서 가족들과 일주일이나 한 달씩 머물던 박미소씨(40)는 완전 이주를 고민하다가 포기했다. 그는 “제주의 자연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어 짧은 ‘제주살이’를 해왔다”면서도 “집값이 너무 비싸고 맞는 일자리가 없어 이주는 포기했다”고 말했다.

‘자연환경이 좋은 제주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겠다.’ ‘인생 2막은 제주에서 열겠다.’

이 같은 바람으로 지난 10여년간 이어진 ‘제주살이 열풍’이 막을 내리면서 제주 역시 인구 유출을 걱정하는 지역이 됐다. 특히 인구 유출의 중심에 20대 청년층이 있다는 점에서 제주의 고민이 크다.

14일 제주도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로 전입한 인구(8만1508명)에서 전출한 인구(8만3195명)를 뺀 순이동 인구는 마이너스 1687명으로 집계됐다. 제주를 찾은 사람보다 떠난 사람이 더 많다는 의미다. 제주 인구가 순유출로 전환된 것은 2009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제주는 2010년부터 인구 유입이 유출을 앞섰다. 특히 2016년 순유입 1만4632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한해 전입자가 평균 8만명 안팎에서 2016~2018년 10만명대로 늘었다. ‘제주살이’ ‘제주이주’가 유행처럼 번진 데다 관광객 증가와 공공기관과 수도권 기업의 이전, 영어교육도시 등에 힘입어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2019년부터 인구 증가세가 둔화했고 유입 규모도 한해 2000~3000명대로 내려앉다가 결국 지난해 순유출로 전환됐다.

인구 유입이 줄어든 배경에는 수년간 전국 최고 수준이었던 부동산값 상승에 따른 이주 부담과 정주 여건 악화 등이 있다.

제주지역 아파트 분양가는 지난해 3.3㎡당 평균 2500만원대를 오르내렸다. 또 대도시와 다를 바 없는 교통혼잡과 주차난, 대규모 개발에 따른 환경 훼손도 원인이다. 관광 외 일자리가 부족하고 투자·기업 유치가 더뎌진 점 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제주로 이주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통계청의 ‘2023 국내인구이동 통계’를 보면 자연환경은 제주 유입을 끌어당기는 요인이지만 교육과 직업, 주거환경은 인구 유출 요인이 됐다.

2014년 실시한 제주살이 체험학교. 제주관광공사 제공

2014년 실시한 제주살이 체험학교. 제주관광공사 제공

특히 20대 청년층의 ‘탈제주’ 현상이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제주의 연령별 인구이동을 보면 20~24세에서 1397명, 25~29세에서 605명의 순유출이 발생했다. 20대에서만 2002명이 더 제주를 떠났다. 지난해 제주 전체 순유출 인구(1687명)보다 큰 규모다. 학령인구인 10대에서도 740명이 순유출됐다.

청년층의 이탈은 학업과 직업, 정주 환경 악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2022년에 실시한 제주도청년통계를 보면 제주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으로 ‘일자리 부족’(50.9%)이 1순위로 꼽혔다. 이어 열악한 근로환경(40.2%)과 높은 생활 물가(30.2%), 주거비용 부담(26.3%), 문화 활동 기회 부족(10.8%) 등을 호소했다.

제주에 계속 거주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는 직장·사업장 부재, 문화인프라 부족, 경제적 부담 등을 들었다. 주택 가격은 치솟았지만 제주지역 연평균 임금은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제주로 이전한 기업의 관계자는 “제주에서 지역 인재를 채용하더라도 도외로 나가고 싶어한다”면서 “특히 제주의 부동산 가격은 수도권과 맞먹는 수준으로, 주거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 보니 인구 유입도 예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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