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플랫폼이 의료 공백 대안인가

조경숙 IT 칼럼니스트

얼마 전, 친구와 함께 대학병원에 갔다. 입원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친구는 입원하지 못하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의사가 전공의 파업 때문에 입원해 봐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을 거라고 만류해서다. 진료실 바깥에서는 간호사가 다른 환자들에게 같은 내용을 여러 번 안내하고 있었다. “네, 지난번 진료 보시던 선생님은 지금 파업 중이라서…. 언제 진료실에 들어갈지 아직 알 수 없어요. 오래 기다리셔야 합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전공의 파업이 이어지는 지금, 전국에서 의료 공백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일할 의사들이 없는 곳에 환자를 입원시킬 수 없어 병원마다 병상 가동률도 곤두박질쳤다. 충북대병원의 경우 평소 80% 이상 채워졌던 병상이 40%로 반토막 났다고 한다. 의료현장에 남은 의사들은 과로를 호소하고, 환자들은 저마다 치료가 미뤄져 고통받는다.

혼란 속에서 유일하게 웃는 곳이 있으니, 바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다. 뚝 떨어진 병상 가동률 이상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의 주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중에서도 병원 예약 시스템 ‘똑닥’의 최대 주주 ‘유비케어’는 고작 2주 사이 주가가 70% 이상 뛰었다.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면서 이와 관련해 원격의료를 비롯한 여러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투자가 몰린 것이다.

정부는 의료 공백에 대한 대안으로 원격 진료를 내걸었다. 그러나 입원과 수술이 당장 필요한 환자들에게 이 같은 정책은 무의미하다. 당장 입원할 병상도, 수술할 의사도 없는데 원격 진료가 무슨 소용인가. 그런 데다 지금 이 물결을 타고 가장 먼저 주가 상승의 로켓을 탄 ‘똑닥’은 의료 공공성과 관련한 비판이 계속 제기되었던 서비스다. 똑닥을 구독하지 않는 환자는 진료받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의사 파업이 단순한 ‘밥그릇 싸움’이라 여기고, 정부도 그런 인식을 간절히 원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 속내가 무엇이든, 협력하지 않고 반목하는 지금의 태도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국 곳곳의 병원을 취재한 여러 뉴스와 통계가 여실히 보여주는 바처럼, 의료계와 정부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부담은 현재 환자가 오롯이 부담하고 있다. 입원이 거절되고, 수술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환자들은 오로지 발만 동동 구르며 의사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민간 테크 기업들의 의료 플랫폼이 강화되는 건 더더욱 나쁜 징조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지금까지 ‘플랫폼’이라는 이름을 단 여러 산업이 어떻게 성장하고, 또 어떻게 착취하는지 익히 보아왔지 않았는가. 몇천원의 소액으로 시작된 각종 구독 서비스가 나중에는 만원대로 가격을 대폭 인상해도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해지하지 못한 채 서비스에 발이 묶이게 된다. 그나마 지금까지 이런 구독제 서비스는 대개 OTT 채널 혹은 배달 앱 등 어느 정도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었지만 의료 산업은 다르다. 누구든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의료의 공공성이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는 의료 민영화를 아주 멀고 거대한 것처럼 생각하곤 하지만, 사실 이런 플랫폼 하나하나가 의료 산업에 침투하여 영향력을 넓히는 것 자체가 의료 민영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병원 예약 서비스의 사용료는 시민들이 낸다. 그렇다면 원격진료의 서비스 사용료는 누가 내게 될까? 적절한 합의를 통해 기술을 검토하고 제도를 확장하는 건 물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시행하기로 한 비대면 진료 확대는 신중한 결정이 아니라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임시 조치에 불과하다. 당장의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 서둘러 선택한 지금의 결정은 추후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 막대한 청구서로 되돌아올지 모른다.

조경숙 IT 칼럼니스트

조경숙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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