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 상택(서태화)과 2차로 노래방에 온 부산의 조폭 두목 준석(유오성)이 노래를 부른다. 곡명은 ‘마이웨이(My Way)’. 준석은 ‘굴곡진 조폭의 삶이지만 후회 없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듯 각 잡고 비장하게 이 노래를 부른다. 그 모습에 함께 온 부하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의 한 장면이다. 부하들이 눈물을 흘릴 때 영화관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난다. 장엄한 비극의 서사라도 되는 양 폼 잡아봐야 조폭은 조폭일 뿐이라는 거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1969년 발표한 ‘마이웨이’는 팝송의 명곡이다. 클로드 프랑수아라는 샹송 가수가 발표한 노래에 폴 앵카가 프랭크 시나트라를 떠올리며 가사를 다시 썼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돌이켜보니 충만한 인생을 살았고, 나는 나만의 길을 걸어왔다’는 내용이다. 이고르 오진스 감독의 1972년작 <위너스(The Winners)>의 주제가로도 쓰였다. 슬럼프에 빠져 있던 프랭크 시나트라는 이 노래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마이웨이’는 곡이 장엄한 데다 고별사 같은 가사 때문에 주요 인물의 은퇴식 등에 자주 쓰였다. 1997년 4월2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OB베어스 투수 박철순의 은퇴식 때는 고별사 도중 마이웨이가 울려퍼졌다. 감옥에서 돌연사한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이 지난달 1일 열렸는데, 입관식이 진행되는 동안 ‘마이웨이’가 흘러나왔다고 미국 CNN 방송이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참석한 대통령비서실장 이·취임식이 지난 2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관섭 전 비서실장이 단장을 맡았던 대통령실 합창단 ‘따뜻한 손’이 이 전 실장의 애창곡인 ‘마이웨이’를 불렀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마이웨이식’ 국정운영이 4·10 총선에서 호되게 심판받았다. 그 책임을 지고 이 전 실장이 물러나는 마당에 하필 고른 노래가 ‘마이웨이’라니 그 무감각이 실로 놀랍다. 윤 대통령은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뒤에도 ‘국정 방향은 옳다’고 했다. 대통령실에 울려퍼진 ‘마이웨이’가 ‘마이웨이식’ 국정운영의 지속을 예고하는 징조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