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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얼굴

입력 2024.04.24 20:50

수정 2024.04.2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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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가 개념으로 자리 잡은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근대 초기, 빠른 과학 발전과 부강한 민족국가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인류가 열등한 과거에서 우월한 미래로 진화하고 있다고 믿게 했다. 이때 ‘진보’는 역사적인 단계를 의미했으며, 그 주인공은 스스로 역사의 주체가 된 보편적 인류였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르러 인류가 진보한다는 믿음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면서 진보는 필연적 법칙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인류가 더 강해지고 더 똑똑해지고 더 새로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그럴 것이며, 무엇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가치인가? 이제 진보는 역사 발전의 ‘단계’가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가 되었다.

이 간략한 역사로 알 수 있는 것은, 진보를 의미하는 특정한 사상, 이념, 정치가 따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진보’에는 더 나은 미래라는 뜻이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차라리 대다수의 사상가, 이념가, 정치인이 저마다의 진보를 자임한다고 말해야 한다. 특히 한국현대사에서는 냉전 체제 이후 반공 이데올로기가 극심했던 1960~1970년대에 한동안 진보 담론이 공소했다가, 군사독재정권이 물러난 이후 민주화 운동이 가열되었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 진보 담론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여기는 이는 “이전보다 더 발전했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기보다는 그것을 다만 ‘전제’한 상태에서 행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슬픈 사회주의자>)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진보의 의미란, 역사 발전의 단계도 아니고,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도 아니며, 이전보다 발전했다는 자기증명은 더욱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현재 진보정치를 ‘담당’하는 이들은 더 이상 스스로를 입증하지 않고도, 정권 심판과 적폐 청산이라는 기치 아래 보수라는 외부의 적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상대적인 진보의 위치를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가 최소한으로 합의할 수 있는 진보 정치가 있다면, 수십년 전에 배치된 구도 안에서 어느 진영에 소속되어 어떤 이념을 천명하느냐가 아니라, 지금 이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실제로 절박한 문제와 필요한 가치를 새롭게 갱신해 나가고 있느냐를 물어야 한다. 소수 진보정당이 흔적을 감추고 거대 양당과 그 위성정당의 이분법적 구도가 강화된 시점에서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부패하고 불공정한 통치 집단의 인적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 제도 안에 평화운동, 기후운동, 퀴어 페미니즘, 장애인 권리와 질병 담론 등 더 나은 삶을 위한 다양한 의제에 귀 기울이는 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억압과 폭력이 기득권의 인적 교체 이후에 ‘나중에’ 해결해도 되는 문제로 밀려나고 있는데도, 진보의 가치가 획일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감증이다.

진보의 얼굴은 필연적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더 나은 삶, 더 좋은 사회, 더 나아간 정치를 지향하는 저마다의 꿈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린 시기에조차 진보의 이미지는 최소한 농민, 노동자, 청년, 여성, 소수자 등의 다양한 얼굴로 상상되었으나, 지금은 차라리 수십년째 독재정권에 저항해 정의를 부르짖는 투사의 단일한 얼굴로 표상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진보가 더 나은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무관할 수 없다면, 그것은 억압과 폭력에 고통스러워하는, 그러나 여전히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수많은 이들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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