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읽다]강요배의 제주 민중항쟁사

김종목 기자

강요배의 ‘메멘토, 동백’전에 다녀왔다. 1부 ‘상(象)을 찾아서’(관련 기사 :분노하듯 흐느끼듯 출렁이는, 저 겨울 바다)에 이은 2부다. 1부는 그림 판매 목적의 전시고, 2부는 일반 관람을 위한 전시다. 갤러리는 그림을 사고 파는 곳인데, 간혹 미술관처럼 판매 말고 관람을 위해 기획전을 열기도 한다.([기자칼럼]갤러리 가는 길) 학고재 갤러리의 이번 2부 전시가 그렇다. 학고재는 1992년 ‘제주 민중항쟁사’ 전시를 열며 강요배를 소개했다. 화집 <동백꽃 지다>도 냈다. 학고재 갤러리의 이번 전시는 제주 4·3 70주년과 1992년 전시를 기념한다. 1989년~1992년 제작한 작품 50여 점과 1992~2016년 4·3을 기념해 만든 작품 10여 점을 ‘동백꽃 지다’와 ‘동백 이후’로 나눠 전시한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7월 15일까지 열린다(무료). 4·3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수준 높은 회화의 깊이도 느낄 수 있는 전시다.

■동백 이후

강요배의 ‘불인(不仁)’은 제주 4·3 비극 중 하나인 ‘북촌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강요배의 ‘불인(不仁)’은 제주 4·3 비극 중 하나인 ‘북촌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강요배 작품을 실제로 처음 본 것은 지난 5월 제주도립미술관의‘기억투쟁과 평화예술을 위하여’ 콘퍼런스 때다.((관련 기사 ‘4·3 양민학살’설과 ‘5·18민주화운동’ 명명은 항쟁과 투쟁을 지운다) 이 콘퍼런스는 ‘4·3 70주년 특별전 포스트 트라우마’전 연계행사다. ‘포스트 트라우마’전의 백미가 강요배의 ‘불인’이었다. 3.33×7.88m짜리 대작이다. 1949년 1월17일 해안마을 조천면 북촌리에서 일어난 ‘북촌사건’을 다룬다. 4·3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다. 군인들은 주민 300여명을 사살했고, 가옥 1000여채를 불태웠다. 군인 2명이 무장대 기습을 받아 숨지자 ‘빨갱이 색출’을 명목으로 대량 학살한 것이다. 강요배는 주검도, 총칼도 그리지 않았다. 불에 그슬린 팽나무, 풀밭에 사그라지는 불꽃과 희미한 연기로 학살 현장임을 암시할 뿐이다. 이 그림을 보며 먹먹했다. 4·3을 소재로 한 작품이란 걸 알고 봤기에 그림의 ‘역사 재현’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작가가 생략한 세부 묘사는 닫힌 게 아니라 열린 듯 했다. 거칠고 두터운 마티에르 점점에서 북촌 사건에 관한 숫자나 기록이, 불꽃 속에 사그라지는 죽음을 느꼈다. 최근작인 ‘불인’은 학고재 전시에선 빠졌다. 대신 그 못지 않은 작품을 여러 점 볼 수 있다. ‘팽나무와 까마귀’다. 자연 묘사에 4·3의 고통을 짓이겨 넣은 작품이다.

팽나무와 까마귀, 1996, 캔버스에 아크릴릭, 97x162.2cm. 학고재 제공

팽나무와 까마귀, 1996, 캔버스에 아크릴릭, 97x162.2cm. 학고재 제공

다음은 ‘버트 하디 사진에 대한 경의’다. 강요배는 실제 보도 사진을 카피해 그림에 붙였다.

버트 하디 사진에 대한 경의, 2016, 캔버스에 아크릴릭, 182x455cm. 학고재 제공

버트 하디 사진에 대한 경의, 2016, 캔버스에 아크릴릭, 182x455cm. 학고재 제공

사진은 영국 작가이자 한국전 종군 기자 버트 하디가 1950년 9월1일 트럭에 실린 부산형무소 재소자들을 촬영한 작품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일 “촬영 시기와 정황 등으로 보아 집단학살 현장으로 이동하기 직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촬영 시기와 정황 등으로 보아 집단학살 현장으로 이동하기 직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1950년 7~9월 부산·마산·진주형무소 등에 수감된 재소자와 민간인 최소 3400여명이 군인과 경찰 등에 의해 불법적으로 희생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형무소엔 제주4·3 여순 사건 관련자들이 수감돼 있었다. 이들은 집단 학살 뒤 수장됐다고 한다. 오른쪽이 수장된 바다다. 학고재는 이렇게 설명한다. “강요배는 이 작품을 제주에서 일어난 4·3항쟁과 묶어 이야기 한다. 결국은 사상의 충돌과 권력자들의 욕망이 뒤엉킨 지옥에서 시민이 희생된 아픈 역사다. 작품과 마주했을 때 드는 숙연함은 발길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작가가 신문 한 귀퉁이에서 이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예술가로서 사건을 어떻게 증언하고 관계자 및 희생자에게 경의를 표해야 할지 고민했을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래는 2007년 작 ‘젖먹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일 것이다. 강요배의 <동백꽃 지다>(보리)에는 김석보씨(조천읍 북촌리)의 증언이 나온다. “사람들이 동요해 흩어지기 시작하자, 군인들이 사람들 머리 위로 총을 난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너댓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중엔 한 부인도 있었는데, 업혀 있던 아기가 그 죽은 어머니 위에 엎어져 젖을 빨더군요. 그날 그곳에 있었던 북촌리 사람들은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겁니다.”

젖먹이, 2007, 캔버스에 아크릴릭, 160x130cm. 학고재 제공

젖먹이, 2007, 캔버스에 아크릴릭, 160x130cm. 학고재 제공

■동백꽃 지다

강요배는 1980년대 후반 4·3을 그리기 시작했다. “혹, 내 생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면 내가 꼭 해야만 할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4·3을 떠올렸다고 한다. 4·3유적지를 답사하고, 생존 희생자들의 증언을 들었다. “내 상상력은 체험의 진실성 앞에 무릎을 구부린다. 역사의 진정한 의미는 끊임없는 숙고 속에만 있는지 모른다.” 학고재는 강요배의 역사화를 두고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의 실체를 담고 있으며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4·3의 참상이 아니라 그 지옥 같은 나날을 통과해야 했던 제주 사람의 삶”이라고 말한다. ‘제주 민중항쟁사’는 ‘항쟁의 뿌리’, ‘해방 1945~1946’, ‘탄압 1947’, ‘항쟁 1948’, ‘학살 1949’라는 다섯 개의 파트로 구성한 서사화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다음은 전시 주요 작품과 학고재의 설명 자료다.

시원 (始原), 1989, 종이에 펜과 먹, 38.7x53.2cm. 학고재 제공

시원 (始原), 1989, 종이에 펜과 먹, 38.7x53.2cm. 학고재 제공

“‘시원(始原)’은 ‘제주 민중항쟁사’의 첫 작품이다. 폭낭 아래에서 백발의 할망과 손자가 앉아 있는 장면을 그렸다. 곱슬머리처럼 굽어진 폭낭의 가지는 아름답지만 살기엔 척박했던 제주의 고됨을 보여주는 듯하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어딘가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 강요배가 <시원>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제주’라는 섬의 신화와 역사를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조선 시대 장한철이 쓴 <표해록>(1771)에는 제주와 관련한 마고 할미인 선문대 할망이 나온다. ‘천지개벽 시에 하늘과 땅이 서로 붙어 있었는데 선문대 할망이 천지를 분리시켜 하늘을 위로 가도록 하고 땅은 아래로 가도록 한 뒤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물속에서 흙을 파 올려 제주도를 만들어 놓았다.’는 구술 채록도 있다. ‘시원’ 속의 할망은 이러한 태곳적의 할망으로 그 모든 것의 신화적 서사를 함의하고 있다.”

유격대원, 1989, 종이에 펜과 먹, 79.3x54.4cm. 학고재 제공

유격대원, 1989, 종이에 펜과 먹, 79.3x54.4cm. 학고재 제공

망보는 소년들, 1992,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3x162.1cm. 학고재 제공

망보는 소년들, 1992,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3x162.1cm. 학고재 제공

“‘유격대원’은 총으로 무장한 유격대원들을 그린 작품이다. 한 인물은 성인으로 보이고 다른 한 명의 인물은 소년으로 보인다. <동백꽃 지다>(1992)에 수록한 증언들에 따르면 유격대에는 겨우 중학교에 입학한 소년들도 다수였다. 겨우 열 네다섯 살이었지만 그들은 총을 들고 용맹이 맞서 싸웠다. ‘제주 민중항쟁사’에는 이렇게 소년 또는 청년이 자주 등장한다. ‘시원’의 어린 소년이 다른 장면들에서 시공을 초월해 여러 형상으로 출현하는 것이다. 소년은 ‘잠녀 반일 항쟁’, ‘해방’, ‘인민 위원회’, ‘망보는 소년들’, ‘하산민’ 등에서 앞서 싸우거나 사건을 목격하는 목격자의 역할을 취한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아픔의 순간을 초감각적으로 확보하는 장치로 우리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한라산 자락 사람들, 1992, 캔버스에 아크릴릭, 112x193.7cm. 학고재 제공

한라산 자락 사람들, 1992, 캔버스에 아크릴릭, 112x193.7cm. 학고재 제공

“‘한라산 자락 사람들’은 5·10 선거를 피해 한라산에 오른 제주 주민을 담아낸 작품이다. 시대의 칼끝에 몰려 선거를 거부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노는 아이와 가축, 그리고 맑고 푸른 하늘이 인상적이다. 순박한 제주인의 모습과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알 수 있다. 강요배는 한라산 자락으로 모여든 그 날의 풍경을 맑고 푸르게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발적으로 산에 올랐기 때문이다. 오롯이 산으로 올라야 자유로워지는 ‘저항’이었다. 미술사학자 박계리는 이 작품에 대하여 ‘통일을 염원에 담은 풍경화’라면서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거부하며, 한라산 자락에 끊임없이 모여들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을 통해 분단이 아닌 통일된 한반도를 꿈꾸는 사람들의 바람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학살, 1992, 캔버스에 아크릴릭, 97x162cm. 학고재 제공

학살, 1992, 캔버스에 아크릴릭, 97x162cm. 학고재 제공

“‘학살’과 ‘붉은 바다’는 상징적 구도와 색 사용으로 사건의 잔인함을 표현해낸 작품이다. ‘학살’에서 총구를 겨눈 군경 토벌대들은 화면의 전면을 장악하고 있다. 일렬횡대로 길게 줄지어서 나란히 총을 든 모습이 공포 그 자체다. 학살자들의 강렬한 모습은 소년의 기백을 제압하며 대규모의 민중들이 바닷가 연안에서 저항하는 모습을 무참히 짓밟는다.”

붉은 바다, 1991, 캔버스에 아크릴릭, 97x250cm. 학고재 제공

붉은 바다, 1991, 캔버스에 아크릴릭, 97x250cm. 학고재 제공

“‘붉은 바다’는 ‘학살’에서 시작된 피의 색채가 섬을 뒤덮어 버린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대지는 시커멓게 타버렸고 하늘과 바다는 온통 피로 물들었다. 작품을 보는 이는 이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작품이 풍기는 잔인함에 압도되어 체험의 진실성 속으로 휘몰아쳐 빠진다. 말을 잇지 못하게 된다.”

동백꽃 지다, 1991,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6x162.1cm

동백꽃 지다, 1991,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6x162.1cm

“‘동백꽃 지다’는 제주 4·3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는 붉은 동백꽃의 기원이 되는 작품이다. 화면 중심부에 등장하는 붉은 동백꽃과 화면 뒤쪽 내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물, 그리고 화면 전면에서 느껴지는 붉은 색의 느낌이 인상적이다. 제주도에서 1월부터 4월까지는 지천에서 동백을 볼 수 있다. 동백나무가 주로 바닷가에서 피기 때문이다. 향기 보다는 강한 꽃의 색으로 동박새를 불러들여 꽃가루받이를 할 만큼 붉은 외형을 가지고 있다. 1949년, 동백이 활짝 피는 사이에 제주 마을에서는 잔인한 학살이 자행되었고 동백꽃의 고개가 꺾어질 무렵 그 잔인하고 슬픈 사건은 극에 달했다. 마을의 길가에는 붉은색의 무엇인가가 가득했는데 떨어진 동백 꽃잎과 피가 뒤엉긴 것이었다고 한다. 4·3을 가장 상징적이면서도 처연하게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강요배의 역사화는 4·3만 다룬 것은 아니다. ‘이재수의 난’이나 ‘잠녀 반일 항쟁’ 같은 제주 사람들의 항쟁사도 아우른다. 가뭄과 기아, 착취와 압제에 시달리는 주민, 해방 이후 격변기 주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펜과 목탄, 콘테로 묘사한 역사화도 추가한다.

잠녀 반일 항쟁, 1989, 종이에 펜과 먹, 38.7x53.2cm. 학고재 제공

잠녀 반일 항쟁, 1989, 종이에 펜과 먹, 38.7x53.2cm. 학고재 제공

왜구 퇴치, 1990, 종이에 펜과 먹, 38.7x53.2cm. 학고재 제공

왜구 퇴치, 1990, 종이에 펜과 먹, 38.7x53.2cm. 학고재 제공

강제 노역, 1990, 종이에 콘테, 31x53.2cm. 학고재 제공

강제 노역, 1990, 종이에 콘테, 31x53.2cm. 학고재 제공

기아 (飢餓), 1990, 종이에 콘테, 53.2x38.7cm. 학고재 제공

기아 (飢餓), 1990, 종이에 콘테, 53.2x38.7cm. 학고재 제공

고문, 1991, 종이에 목탄, 65.7x49.7cm. 학고재 제공

고문, 1991, 종이에 목탄, 65.7x49.7cm. 학고재 제공

횃불 시위, 1991, 종이에 목탄, 76x55.3cm. 학고재 제공

횃불 시위, 1991, 종이에 목탄, 76x55.3cm. 학고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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