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속의 검은 잎 | 기형도
(기형도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이 땅의 날씨가 나빴던 1989년 이른 봄에 추리소설의 마지막 장면 같은 죽음이 있었다. 종로의 한 극장에서 숨을 거둔 기형도 시인. 그리고 그해 봄이 끝나갈 무렵, 그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세상에 나왔다.
시집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이 시집을 읽었던 것 같다. 날씨가 나쁜 시대, 그 날씨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꽤나 무딘 인간이라 한쪽 눈만 뜨고서 그 날씨에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다. 몸이든 생각이든 무뎌진 상태로 살다 보면 그대로 굳어진 삶을 살게 된다.
지금도 이 시집을 읽으면 내 굳은살이 도려내지는 느낌을 받는다. 너무나 예리한 언어가 나를 베는 것 같은 찌릿하고 무거운 통증을 느낀다. 이 시집에는 조용히 다문 입과 소리 없는 눈물 그리고 죽음이 있다.
연극은 살아 있다는 것을 가장 강력하게 증명하는 행위다.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최대치로 느끼려는 사람들이 연극을 한다. 하지만 영혼과 소통하려는 우리 작업에서 죽음만큼 가까운 것은 없다. 그러니까 우린 죽음을 등에 업고 춤추는 사람들인 것이다.
몇 달 전 20년을 함께한 연극동료 이윤주가 영면했다. 하지만 극단에선 그녀가 연기하고 연출한 작품을 그대로 무대에 올린다. 그녀의 작품이 계속 공연되고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시간은 그녀를 삼키지 못하고 그녀는 소멸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입 속의 검은 잎>을 펼쳐보았다. 김현 선생의 해설 중에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그의 시가 충격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는 빨리 되살아나 그의 육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육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