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 | 리영희
공연 보러온 후배 손에 들려있던 것인데 빌렸다가 그대로 가진 책이다. 왠지 이 책을 붙들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어릴 땐 그냥 살아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용기라는 게 검은 것은 검다고 말하고 흰 것은 희다고 말하는 그런 것일 때가 많다. 이 쉬운 일이 어떨 땐 전혀 쉽지 않은 것이 인생인 것 같다.
리영희 선생의 자서전 <대화>에는 매 순간, 줄기차게, “검은 것은 검고 흰 것은 희며, 사슴은 말이 아니라 사슴이고, 말은 사슴이 아니고 말”이라고 말해온 선생의 인생 이야기가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해방을 맞고 언론인으로서, 실천하는 지성으로서 살아온 선생의 인생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는 무수한 참상과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체험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날마다 깨어 있는 한 인간을 상상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 글을 써야 했다”고 말했을 때가 49세, “나는 손에서 펜을 놓는 날까지 이 정신으로 탐구하고 쓰고 세상에 알릴 결심”이라고 말했을 때 선생의 연세는 77세였다.
나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참 많이 노력하며 사는데, 그런데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라며 무뎌지고 느슨해진 나를 자주 발견한다. 징그러우리만치 자신에게 엄격했던 선생의 인생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부끄럽게 한다. 나를 부끄럽게 하는 책이 책꽂이에 꽂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