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힘들 땐 나도 주문을 외워볼까, 연이처럼…버들 도령 문 열어라!

손버들 기자
[그림책]마음이 힘들 땐 나도 주문을 외워볼까, 연이처럼…버들 도령 문 열어라!

연이와 버들 도령
백희나
책읽는곰 | 88쪽 | 1만8000원

<구름빵> <장수탕 선녀님> <알사탕>의 백희나 작가가 돌아왔다. 전작 <나는 개다> 이후 3년 만이다. 신작 <연이와 버들 도령>은 우리에게 익숙한 설화를 백 작가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등장인물은 세 명이다. 연이, 버들 도령, 나이 든 여인. 옛이야기 속 계모는 나이 든 여인으로 바뀌었다. ‘계모=악’이라는 도식을 부수고, 시련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확장시켰다. ‘어린 여자애’인 연이와 나이 든 여인은 새로운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대립으로도 읽힌다.

연이는 나이 든 여인과 함께 산다. 나이 든 여인은 연이에게 온갖 일을 시킨다. 심지어 한겨울에 상추를 뜯어오라고도 한다. 분명 혼을 내기 위한 명분일 텐데, 연이는 묵묵히 나선다. 날은 어둑해지고 추위 속에서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을 때, 연이는 ‘살기 위해’ 몸을 녹일 곳을 찾는다. 나무뿌리 아래 작은 동굴을 발견하고, 버들 도령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 이를 의심한 나이 든 여인은 연이의 뒤를 밟고 버들 도령을 죽인다. 죽임을 당한 버들 도령을 연이가 살려낸다. 이야기는 구전동화의 기본 틀을 유지한다. 그렇지만 노련한 작가는 작품 안에 반전 요소를 집어넣어 새로운 의미를 길어 올린다.

[그림책]마음이 힘들 땐 나도 주문을 외워볼까, 연이처럼…버들 도령 문 열어라!

버들 도령은 연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 연이는 버들 도령이다. 연이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타인에게 순종적이고 수동적이었던 여성이 내면의 동굴을 통과한 뒤 주체적 자아로 거듭나는 것을 비유한다. 통쾌한 복수도 없다. “나이 든 여인은 나이가 들어 죽었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 말야”로 이야기를 맺는다. 세월의 무상함이 복수라면 복수일까. <연이와 버들 도령>은 계모 설화를 바탕으로 한 권선징악형 동화가 아니다. 역경에 처한 여성이 백마 탄 왕자를 만나 ‘팔자를 고치는’ 신데렐라 이야기도 아니다. 이 책은 내면의 공포를 벗어던지고 세상을 향해 홀로 서는, 순도 100% 성장 동화다.

상추를 찾아, 하얀 눈과 검은 나무와 푸른 대기 사이를 헤매는 연이의 모습은 보는 이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서늘하다. 실제 풍경을 배경으로 닥종이 인형을 놓고 사진을 찍었다. 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백 작가도 정선 가리왕산, 서울 남산, 일산의 황룡산 등을 ‘헤매었다’. 닥종이로 만들어진 연이의 얼굴에는 추위에 튼 듯한 살결과 여린 솜털까지 세세하게 드러난다. 나이 든 여인은 깊게 팬 주름과 높이 솟은 광대뼈를 대치해 캐릭터의 ‘삐딱한’ 성격을 생생하게 전한다. 종이와 헝겊, 스컬피(sculpy) 등으로 만든 다양한 오브제를 실사와 그림자극 형식 위에 얹었다. 한국화풍 그림으로 서정성을 더했다. 지금까지 선보인 작업 방식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클로즈업숏과 롱숏을 적절하게 배치해 영화적 긴장감도 준다. 한 땀 한 땀 이야기를 바느질해갔을 작가의 고투가 책장마다 느껴진다. 작업할 때마다 수많은 좌절을 경험한다는 작가의 고백이 절절히 다가온다.
 
누구나 한번쯤 어두운 동굴 앞에 서는 날이 있다. 오직 나만이 문을 열 수 있는 무거운 돌문 앞에 서 있다면 이 주문을 외워보자.
 
버들 도령, 버들 도령, 나 왔다, 문 열어라.


Today`s HOT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