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투병 앞에…엄마는 내 자식이 되었다

이영경 기자
[책과 삶]투병 앞에…엄마는 내 자식이 되었다

어금니 깨물기
김소연 지음
마음산책 | 228쪽 | 1만4500원

“나는 엄마를 오래 싫어했다.”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 <어금니 깨물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머니와 딸 사이 애증의 관계는 보편적인 동시에 개별적이다. 작가에게 엄마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를 착취한 사람이었고, 오빠보다 뒤에 있기를 지나치게 종용해온 억압의 주체”였다고 회고한다.

회고 또한 감정이 한 차례 정리되고 나서야 가능한 법이다. 시인에게 그 계기는 엄마의 투병이었다. 엄마가 치매를 앓고 “누군가의 엄마로 살았던 시간들을 거의 다 망각”해버리면서 시인은 특별히 엄마와 화해한 것도 아닌데 저절로 엄마를 싫어하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억을 잃어가고 노쇠해가는 엄마를 돌보며 “엄마는 엄마를 끝내고 나의 자식이 되었다”고 말한다.

<마음사전> <한 글자 사전> 등 사전 형식으로 이뤄진 섬세한 에세이를 펴냈던 김소연 시인의 신작 <어금니 깨물기>는 이렇듯 시인의 가슴속 깊은 곳에 품고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머니에 대한 고백을 시작으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유년 시절의 추억을 소환한다. 이발사 놀이를 한다며 여동생의 머리를 엉망으로 잘라놓은 오빠, 그 소동 속에서 ‘피해자’로서의 권력을 획득한 어린 시인의 마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보냈던 연애편지를 몰래 읽으며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상상하던 모습 등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슬프다가 웃기다가 마음 아프다가 따스해지다가 한다. 가족이란, 기억이란 대개 그런 것이다.

저자의 본업인 시와 시 쓰기에 관한 이야기도 산문집에 함께 담았다. 시 쓰기의 고단함과 환희, 자신에게 큰 기쁨과 영향을 준 시인들의 이야기를 시인만이 포착해낸 섬세하고 예리한 문장으로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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