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인류 존속을 위해선 ‘격차’와 ‘환경’을 동시에 해결해야”···‘마르크스 연구’에서 기후·경제 위기 해법 찾는 사이토 고헤이 인터뷰

김종목 기자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로 세계적 주목

부유층의 저소득층·지구착취 한계

홍수 등 기후변화로 인류 위기 초래

마르크스의 자유·평등 향한 고민

야만적 자본주의 타파할 지혜 있어

사이토 고헤이는 해외 마크르스 연구자 중 가장 주목받는 이다.  그는 마르크스 연구노트에서 생태사회주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사이토 고헤이 제공.

사이토 고헤이는 해외 마크르스 연구자 중 가장 주목받는 이다. 그는 마르크스 연구노트에서 생태사회주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사이토 고헤이 제공.

사이토 고헤이 일본 도쿄대 교수는 해외 마르크스 연구자 중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이다. 33세 때인 2020년 9월 출간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다다서재, 원서 제목은 <人新世の‘資本論’>) 일본 판매량은 9월 50만 부를 넘겼다. 이달 스페인어로 번역 출간한다.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번역 출간도 결정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부는 또 다른 책 ‘Marx in the Anthropocene(인신세의 마르크스)’를 낸다. 여러 조명을 두고 영국 가디언지가 특집 기사를 최근 게재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가 연구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편리한 생활이라는 풍요를 손에 넣기 위해서 제어가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처리할 수 없는 폐기물까지 만들어내는 원자력발전이라는 것을 인간이 사용해도 될까 같은 여러 의문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 답을 마르크스 철학에서 찾으려 했다.

마르크스의 ‘노트’를 연구했다. 만년의 마르크스 노트에 자연과학 내용이 많고, 그가 환경 문제에 비판적으로 접근했다는 걸 알아냈다. 사이토는 인터뷰에서 “‘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에서 이윤을 올리기 위해 기술 발전만 중시하면 노동자는 점점 더 복종해야 하고, 자연환경도 훼손된다고, 마르크스는 분명히 비판했다”며 “생산력의 성장을 찬미한 사상가”라는 마르크스에 대한 통념을 깨려 한다.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로 가속하는 기후 위기와 경제 성장 문제를 비판하며 탈성장과 코뮌의 대안을 쉽게 풀어 제시한 게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다. 사이토는 인터뷰에서 “부유한 자들이 지구를 희생시키면서 더욱 부유해지는 자본주의의 구조는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며 “경제 성장 그 자체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에코백과 텀블러를 쓰고, 전기자동차를 모는 것으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다다서재)와 <人新世の‘資本論’>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다다서재)와 <人新世の‘資本論’>

인터뷰는 e메일로 진행했다. 영어 질문에 일본어로 답했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를 옮긴 김영현 번역가가 사이토의 답변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기울임체 부분은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에서 발췌했다.

- 일본 내 대중 호응이 뜨겁다. 해외에서도 책에 주목하는데.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자본주의의 한계’가 뚜렷이 드러난 게 대중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빈부나 경제) 격차가 너무나 커져 버렸다. 미국에서 두드러진다. 제프 베조스,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등 일부 성공한 자들이 막대한 자산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팬데믹 상황에서 끊임없이 자산을 늘렸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닌다. 전 세계에 호화로운 저택을 몇 채씩 소유했다. 이제는 우주까지 가려 한다. 한편 팬데믹으로 일자리를 잃고, 정말로 하룻밤 사이 노숙자가 되어버리는 등 괴로운 생활로 떠밀린 사람이 일본에도 정말 많다. 일이 있고 의식주가 보장된 사람들이라 해도 도저히 풍요롭다고는 할 수 없다. 달마다 집세나 대출 이자를 내고, 휴대전화 요금을 납부하고, 몇 번 술이라도 마시면 수중에 남는 건 거의 없다. 근근이 생활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엄청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언제 직장에서 잘릴지 모르는 불안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일하는데도 말이다. 또 다른 문제는 기후 변화가 심각한 위기로 대두되는 것이다. 지금 같은 추세로 기후 변화가 진행되면, 현재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상 기후는 화산과 홍수 같은 자연재해뿐 아니라 물 부족과 식량 위기를 초래하고 난민 문제도 일으킬 것이다.”

문제의 뿌리는 훨씬 깊은 곳까지 뻗어 있다. 지금까지 경제 성장을 떠받쳐 왔던 대량 생산 대량 소비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 그래서 2019년에는 1만 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기후 변화는 유복한 생활양식으로 인한 과잉 소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외치며 기존 경제 메커니즘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유복한 생활양식’을 누리며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사람들은 선진국의 부유층이다. 전 세계의 상위 10퍼센트 부유층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절반을 차지한다는 놀라운 데이터도 있다.(아래 표 참조)특히 자가용 비행기와 고급 스포츠카를 굴리며 대저택을 몇 채씩 소유한 상위 0.1 퍼센트의 부유층은 환경에 매우 심각한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소득 계층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비율. 출처: 옥스팜( Oxfam)의 ‘극단적인 탄소 불평등(Extreme Carbon Inequality)’(2015년).

소득 계층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비율. 출처: 옥스팜( Oxfam)의 ‘극단적인 탄소 불평등(Extreme Carbon Inequality)’(2015년).

- 책 원제가 ‘인신세의 자본론(人新世の’資本論‘)’인데

“젊은 세대와 개발도상국 사람들에게 커다란 환경 변화는 말 그대로 사활을 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인류 경제 활동이 지구 환경을 바꿔버린 인신세(또는 인류세, ‘Anthorpocoene’의 ‘anthropo-’는 인류, 지질학적 시대를 지칭하는 ‘-cene’는 ‘새로운’을 뜻한다. 사이토는 번역어로 인신세를 사용한다)의 위기다. 이 위기에도 역시 경제 격차 문제가 숨어 있다. 부유층은 편리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 대량의 에너지와 자원을 사용한다. 이를테면 혼자 편하게 타기 위해 굳이 막대한 연료를 소비하여 자가용 비행기라는 거대한 쇳덩어리를 하늘로 날린다. ‘가진 자’들이 ‘쾌적함’을 추구하여 터무니없을 만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다. 그들은 기후 변화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이다. 더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기후 변화 때문에 인류 존속이 위태로워진다. 부유한 자들이 지구를 희생시키면서 더욱 부유해지는 자본주의의 구조는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 마르크스주의 학자 중 최고의 젊은 스타라는 평가도 나온다. 책은 ‘신서대상 2021’ 1위, ‘기노쿠니야 인문대상 2021’ 2위 등 여러 상을 받았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마르크스 연구자가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련 붕괴 후 일본의 마르크스 연구는 급속하게 힘이 약해졌다. 자본주의 위기를 눈앞에 두고, 자본주의 비판에서 나아가 자본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하기 위해서라도 마르크스를 새롭게 읽어내는 젊은 세대가 계속해서 등장하길 기대한다.”

-왜 마르크스주의에서 새로운 희망과 낙관을 찾았는가.

“오늘날 같은 위기의 시대에서야말로 마르크스의 <자본>이 자본주의의 강고한 이데올로기를 타파하여 지금과 다른 풍요로운 사회를 그릴 상상력, 구상하는 힘을 되찾고 행동을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런 옛날 책보다 최신 경제학 연구 등을 읽는 게 좋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마르크스나 19세기 후반 사회주의자의 생각이 왜 지금도 중요할까? 그건 마르크스가 혁명과 유토피아를 그린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사상에는 종종 이제 혁명도 세계대전도 일어나지 않고 안정된 상황에서 경제 성장을 추구할 수 있다는 암묵의 규정이 존재했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의 복지국가 노선처럼 국가를 잘 활용하면서 점점 사회를 개량하면 된다는 낙관적인 사상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제 그런 낙관적인 예측은 더 통하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이 낙관적인 기술 예측과 인류가 더더욱 진보할 가능성을 거듭해서 주장하고 있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세계는 앞으로 더 혼탁해질 가능성이 크다. 신자유주의의 시대는 끝났다. 팬데믹, 전쟁, 기후 위기 등 만성적 긴급사태의 시대에서는 강한 국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하지만 만성적 긴급사태를 방치하면 점점 더 국가의 힘이 강해져 파시즘이나 전체주의가 되어버릴 것이다. 제2의 스탈린과 히틀러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야만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일찍이 격차와 착취, 전쟁과 폭력, 식민 지배와 노예제 같은 문제와 맞서 국가의 폭주에 저항하며 자유와 평등의 가능성을 필사적으로 고민했던 사상가들의 지혜와 상상력이 필요하다. 바로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어야 한다.”

- 후쿠시마 참사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박사 논문 주제를 왜 마르크스 생태학으로 정했나.

“내게 전환점이 되었던 일은 2011년, 지금의 청년들과 비슷한 나이에 경험한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편리한 생활이라는 풍요를 손에 넣기 위해서 제어가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처리할 수 없는 폐기물까지 만들어내는 원자력발전이라는 것을 인간이 사용해도 될까 같은 여러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 의문의 답을 마르크스의 철학을 연구해서 찾아보려고 했다. 마르크스는 흔히 생산력의 성장을 찬미한 사상가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의 사상을 깊게 파고들다 보니 (교환가치가 아니라) ‘사용가치’를 중시하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목표로 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제언을 얻었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연구 노트’를 읽으니 보이기 시작했다. 마르크스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자본>이지만, 그 책은 완성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연구했지만, <자본>은 미완성인 채 끝났다. 그래서 만년의 마르크스 사상을 알려면 그의 연구 노트를 읽어야 한다. 그 노트에는 자연과학에 관한 내용이 무척 많다. 나는 첫 책에서 그 노트를 해독했는데, 만년의 마르크스가 환경 문제에 꽤 열심히 주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에서 아무튼 이윤을 올리기 위해 기술 발전만 중시하면 노동자는 점점 더 복종해야 하고, 자연환경도 훼손된다고, 마르크스는 분명히 비판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빚어지는 문제들은 바로 마르크스가 ‘가치와 사용가치의 대립’으로서 문제시했던 것들이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상품의 ‘사용가치’란 병을 고치는 약의 효력이며, ‘가치’란 상품으로서 약에 매겨진 가격이다. 백신과 발기부전 치료제를 비교하면,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생명을 구하는 백신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돈벌이가 우선시된다. 값비싸고 불티나게 팔리는 약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식량 역시 고가에 팔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값비싼 복숭아와 포도를 재배하여 수출하지만, 그런 작물로는 식량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이런 일들은 상품의 ‘가치’를 중시하고 ‘사용가치’(유용성)를 무시하는 자본주의에서 늘 일어난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야만 상태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와 결별하고 ‘사용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마르크스의 비판이 지금 어떻게 유효한가.

“그 비판을 오늘날에 적용해보겠다. 자본주의가 오로지 경제 성장만 목표한 결과, 인류는 지구 환경을 토대부터 바꿔버렸다. (그것의 결과가) 지금 기후 변화와 팬데믹 같은 형태로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이 위기는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로는 해결할 수 없다. 만년의 마르크스가 직면한 과제는 다음과 같았다. 즉, ‘격차’와 ‘환경’이라는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라면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령 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금까지 했듯이 대량 생산, 대량 소비로 경제 성장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가속하는 생산과 소비에 자연이 견디지 못하고 환경이 파괴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격차’와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지 않으면 문명 붕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그 길이 바로 탈성장이다.”

- 독일로 유학을 간 이유는.

“마르크스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마르크스의 수많은 노트가 간행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그 노트에는 아직 해명되지 않은 마르크스의 사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남아메리카의 칠레에서는 유럽과 미국 사람들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서, 즉 제국적 생활양식을 위해서 수출용 아보카도를 재배해왔다. ‘숲의 버터’라 불리는 아보카도 재배에는 무척 많은 물이 필요하다. 또한 아보카도가 토양의 양분을 전부 빨아들이기 때문에 한번 아보카도를 기른 땅에서는 다른 작물을 재배하기가 어렵다. 칠레는 아보카도를 위해 자신들의 생활용수와 식량 생산을 희생해온 셈이다.
그런 칠레에 최근 몇 년간 최악의 가뭄이 일어나 심각한 물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 이 가뭄 역시 기후 변화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앞서 살펴봤듯이 기후 변화는 전가의 결과다. 게다가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에 따른 팬데믹도 연달아 칠레를 덮쳤다. 그런데 칠레에서는 가뭄 탓에 귀해진 물이 코로나 전염 방지를 위한 손 씻기가 아니라 수출용 아보카도 재배에 쓰인다고 한다. 상수도가 민영화되었기 때문이다.

-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당신은 책에서 칠레의 아보카도 생산과 주민의 생활용수 부족 문제를 연결했다. 전기자동차 생산과 관련한 디커플링 문제와 칠레의 리튬 생산, 콩고민주공화국의 코발트 생산에 관한 분석도 이어갔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남반구)’의 불평등 문제를 두고 제국적 생활양식과 생태제국주의 문제도 다뤘다. 그린 뉴딜과도 이어지는 문제인데.

“팬데믹 후의 새로운 자본 축적 체제는 그린 뉴딜(Green New Deal, GND)로 실현될 것이다. GND는 노동자 계급에게도 신자유주의 체제와 비교해 더욱 안정된 고임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면서 지속 가능한 경제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한다. 그 과정에서 GND가 계급 간 갈등이 극심한 사회에 새로운 ‘계급 타협’을 실현하리라 기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울리히 브란트와 마르쿠스 비센이 ‘제국적 생활양식’이라 불렀던 것을 강화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제국적 생활양식이란 간단히 말해 글로벌 노스의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제국적 생활양식은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실현해주기 때문에 보통 바람직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글로벌 사우스의 사회집단과 지역에서 벌어지는 수탈, 나아가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생활의 대가를 글로벌 사우스에 떠넘기는 구조가 존재한다.

-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브란트와 비센에 따르면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중산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합의는 종종 주변부의 사회 집단과 자연환경을 수탈하여 이뤄지는 경제 성장에 의해 실현됐다. 한편, 그 경제 성장의 대가는 철저하게 계속 외부화하여 중심부에서는 보이지 않게 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흔들린 계급 타협이 기후 위기 시대에 맞춰 새로운 제국적 생활양식으로 부활할까? 하지만 중국, 브라질, 인도 등이 경제 성장을 하는 상황에서 제국적 생활양식을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여기에 러시아와 전쟁이라는 새로운 문제도 더해졌다. 인신세(인류세)란 바로 외부화의 여지가 소진된 시대를 가리킨다. 그런 와중에 기후 위기가 열어젖힌 새로운 시장을 마주하고 여러 국가가 패권 다툼을 벌일 것이다. 그러면 자본주의의 ‘녹색화’라는 명목으로 주변부에서 이뤄지는 수탈은 더욱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 자원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질 뿐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의 주민과 환경은 더욱 철저하게 수탈·착취를 당할 것이다. 또한 GND가 실현하는 중심부 노동자 계급의 생활 개선이 더욱 친환경적인 활동으로 이어지리라고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오히려 제국적 생활양식이 중산 계급과 노동자 계급을 자본주의적 소비주의로 끌어들였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럴 가능성은 작다. 결국 점점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가 소비되고 에너지와 자원 소비량도 증대하면서 ‘녹색 자본주의’가 지구 환경을 크게 파괴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에 적었듯이 경제 성장을 계속하면서 환경 부하를 줄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친환경적인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만들려고 해도 당연히 자원 채굴 등으로 꽤 큰 환경 부하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효율화를 하여 생산성을 높여도 그 탓에 상품 가격이 내려가 수요가 늘어나면 효율화의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순환형 경제 역시 재활용과 재이용을 하려면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반드시 추가 에너지가 필요하다. 기술 혁신은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사회로 전환할 수 없다. 결국, 경제 성장 그 자체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후행동추적(Climate Action Tracker)의 ‘2100 온난화 예상(2100 warming projections)’ (2018년).

기후행동추적(Climate Action Tracker)의 ‘2100 온난화 예상(2100 warming projections)’ (2018년).

디커플링이란 ‘떼어냄’, ‘분리’ 등을 뜻한다. 일상생활에서는 들을 기회가 적지만, 경제와 환경 분야에서는 널리 쓰이는 개념이다.
지금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만 설명하겠다. 보통 ‘경제 성장’에 따라 ‘환경 부하’는 증가하게 마련이다. 그동안 연동해서 증대되었던 두 현상을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서로 떼어내는 것이 바로 디커플링이다. 즉, 경제가 성장해도 환경 부하가 커지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기후 변화와 관련한 디커플링이란, 신기술을 개발하여 경제 성장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삭감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을 예로 들겠다. 발전소와 전력망 등 인프라를 정비하고 주택과 자동차 등을 소비하는 것은 개발도상국의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데, 동시에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도 한다. 만약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지원을 받아 효율적인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다면, 낡은 기술인 채로 인프라 정비와 소비가 이뤄질 때보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완만하게’ 상승할 것이다. 이처럼 효율화를 해내어 경제 성장률과 비교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증가율을 상대적으로 저하시키는 것을 ‘상대적 디커플링’이라고 한다.

‘상대적 디커플링’은 기후 변화 대책으로 적절하지 않다.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절대적인 양을 줄이지 않으면 기온 상승올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적 디커플링’은 절대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경제 성장도 목표한다.(…) ‘절대적 디커플링’의 사례 중 하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자동차를 보급하는 것이다. 가솔린 자동차를 줄여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삭감하는 동시에 전기자동차를 생산 판매함으로써 경제도 성장시키는 것이다.

-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텀블러 같은 개인 노력으론 한계
개인 비행기·단거리 비행 없애고
환경에 부담하는 세금 늘리는 등
근본적 사회 시스템 전환이 절실


- 한국에서도 에코벡 사용 등을 두고 ‘그린 워싱’의 문제점이 점차 알려졌다. 디커플링 개념은 널리 전파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전기차 인기는 높아지고 있는데.

“먼저 내가 경제 성장과 이산화탄소 배출의 디커플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에너지 절약 기술과 재생 에너지 도입으로 이미 디커플링은 일어나고 있다. 다만, 그중에 절대적 디커플링은 그 비율이 불과 3.4% 정도로 필요한 것보다 많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환경청(EEA) 보고서도 환경 보전과 경제 성장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GND가 ‘기술에 의한 변화뿐 아니라 소비와 사회적 생활양식의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탈성장을 검토하도록 촉구했다. 즉, ‘성장 없는 GND’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앞으로 재생 에너지 도입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2050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려면 경제 성장은 족쇄가 될 뿐이다. 경제 성장이 계속되는 만큼 극적인 디커플링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패스트패션, SUV, 공장식 축산 등 본래 그만큼 필요하지 않은 것을 대폭 줄일 수 있다면, 환경 부하도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어들 것이다. 그것이 탈성장이 요구하는 ‘소비와 사회적 생활양식의 변화’다. 또한 재생 에너지는 자원 집약적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배터리 등을 대량 생산하려면 희토류 자원 채굴이 심해지는 걸 피할 수 없다. 그것은 새로운 채굴주의(extractivism)의 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나아가 수요가 늘어나 자원 가격이 오르면 저소득 국가는 탈탄소화를 진행하지 못하고 점점 더 화석연료에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는 기후 위기를 멈출 수 없다. IPCC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재생 에너지와 에너지 절약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아직 개발 중인 BECCS(탄소 포집・저장을 갖춘 바이오 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역배출 기술을 대대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바이오 에너지(BE)를 위해서는 무척 넓은 농지가 필요하다. IEA의 1.5도 시나리오에서도 2050년까지 파키스탄과 인도를 합친 면적에 필적하는 4.1억 헥타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만한 경작지가 어디에 있는가? 개발도상국에서 토지 수탈(land grabbing)이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역시 대기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저장해두는 장소가 문제다. 그 역시 개발도상국에 밀어붙일까? 그러면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생활은 파괴되고 생물 다양성 역시 손실된다. 선진국의 녹색화를 하려고 오히려 식민지 지배와 수탈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걸 피할 유일한 방법이 선진국의 탈성장이다.”

-‘환경 프롤레타리아트’를 주체로 선언한 이유는.

“프롤레타리아트라고 하면 공장 노동자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을 듯싶은데, 자본주의 아래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은 모두 일종의 프롤레타리아트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피폐한 필수 노동자(essential worker), 불안정한 일자리 때문에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물론, 일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일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시장의 논리, 경쟁 원리에 휘둘린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우리는 모두 프롤레타리아트인 것이다. 나아가 인종과 젠더 문제, 환경 문제, 이주민 문제 역시 자본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본주의가 없어진다고 그런 문제가 전부 단숨에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수많은 불평등이 발생하고, 불평등은 수많은 ‘계급’을 만들어내고, 그 계급에 따른 빈곤과 어려움은 고정된 채 변치 않고 있다. 기후 변화 역시 이상 기후는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그 영향이 모든 사람에 똑같이 미치지는 않는다. 가난한 사람, 개발도상국의 사람, 난민 등 가장 심각한 피해를 가장 먼저 보는 이는 글로벌 사우스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본주의에 희생된 이른바 ‘환경 프롤레타리아트’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온갖 것들을 상품화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격차와 분단을 일으키고 약자들을 더욱 수탈한다. 그리고 시장은 화폐가 없는 자를 배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품화의 힘을 약화시키고, 사람들이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영역을 경제까지 넓히자는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온갖 것들의 ‘상품화(commodification)’에서 온갖 것들의 ‘커먼화(commonification)’로 대전환을 꾀하는 코뮤니즘의 싸움이다. 코뮤니즘은 계급, 젠더, 인종 등의 억압과 지배가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목표하는 운동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 국가의 힘을 전제로 삼으면서도 ‘커먼’의 영역을 확장하여 민주주의를 의회의 바깥, 생산 차원까지 넓힐 필요가 있다. 앞서 소개한 협동조합, 사회적 소유, 시민영화가 그 사례들이다.
그와 동시에 의회 민주주의 자체도 크게 변화해야 한다. 이미 살펴봤지만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는 지방자치주의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생산의 ‘커먼화’, 지방자치주의, 시민의회. 이처럼 시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확산되면 진정 살고 싶은 사회에 대해 더욱 근본적인 토론이 시작될 것이다. 즉, 일의 의미, 삶의 의미, 자유와 평등의 의미에 대해서 열린 형태로 처음부터 논의하는 것이다. 의미를 근본부터 다시 질문해서 지금 ‘상식’이라 여기는 것을 전복하자. 바로 그 순간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참으로 ‘정치적인 것’이 현실에 나타난다. 지금 제안한 것은 ‘자본주의 극복’, ‘민주주의 쇄신’, ‘사회 탈탄소화’라는 목적들이 한데 모이는 삼위일체의 프로젝트다. 경제, 정치, 환경의 시너지 효과를 증폭하면 사회 시스템의 대전환이 가까워질 것이다.

-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당신은 책에서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 연구진의 ‘3.5%’를 강조했다. 9월24일 한국 서울에서 기후정의집회가 열렸다. 400여 개 단체 회원 3만5000명이 참가했다. 일본에서 어떤 시민들의 움직임이 있나.

“한국의 사진은 나도 SNS에서 봤다. 매우 많은 사람이 참가해서 무척 놀랐다. 같은 날 일본에서 내가 참가한 기후 시위는 도쿄에서 개최했는데도 400명 정도만 참가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은 매우 미약하고, 선거에서도 쟁점이 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3.5%의 급진적인 운동을 조직하자는 게 내 책의 주장인데, 자민당의 아베 신조가 장기 집권을 한 결과 일본 사회 전체가 보수화한 탓에 현재로서는 그 3.5%도 무척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생활에 흠뻑 빠져서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이 책에서 언급한 이념과 그 내용에 대해 큰 틀에서는 찬동하지만, 시스템 전환 같은 커다란 과제를 마주하고 어떡하면 좋을지 몰라 망연자실 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자본주의와 그것을 좌지우지하는 1퍼센트의 초부유층에 맞서자는 것이니 에코백과 텀블러를 쓰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은 자명하다. 잘 풀릴지 어떨지도 모르는 계획을 믿고 99퍼센트의 사람이 움직이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뒷걸음질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3.5퍼센트’라는 수치가 있다. 무슨 수치인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하버드대학의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의 연구진에 따르면 ‘3.5퍼센트’의 사람들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들고일어나 진심으로 저항하면 반드시 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사이토 고헤이(왼쪽에서 두번째)가 9월 24일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  중 FFF(Fridays for Future, 미래를 위한 금요일) 회원인 대학생들과 현수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 현수막은 “일본 기업은 방글라데시의 자연과 생활을 파괴하지 마!”, 왼쪽은 “파키스탄의 CO2 배출 비율은 1% 미만, 원조가 아닌 기후 배상을! ”이라고 적었다. 사이토 고헤이 제공

사이토 고헤이(왼쪽에서 두번째)가 9월 24일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 중 FFF(Fridays for Future, 미래를 위한 금요일) 회원인 대학생들과 현수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 현수막은 “일본 기업은 방글라데시의 자연과 생활을 파괴하지 마!”, 왼쪽은 “파키스탄의 CO2 배출 비율은 1% 미만, 원조가 아닌 기후 배상을! ”이라고 적었다. 사이토 고헤이 제공

- 당신이 강조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낙관하는가. 앞으로 어떤 실천이 필요한가.

“필요한 것은 시스템 전환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개인마다 큰 차이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해도 애초에 가능한 노력의 폭에 격차가 있는 것이다. 이미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의 생활방식은 환경 부하가 큰 경우가 많기에) 친환경적인 생활로 크게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격차를 ‘개인의 노력’이라는 말로 불가시화하거나 여러 이유로 친환경적인 생활을 하기 힘든 사람에게 죄악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개인마다 친환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다르기에 개인의 의식이 아니라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나. 생활 중에 실천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은.

“어린아이가 두 명 있기에 자동차는 가지고 있다. 나 혼자 이동할 때는 자전거를 이용한다. 나는 혼자서 SUV를 타는 사회가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에도 시대(*옮긴이: 한국으로 치면 조선 시대)의 생활로 돌아가자고 하지는 않는다. 필요한 것은 누구나 지나친 부담 없이 최저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의 편중을 바로잡는 동시에 이동 수단과 노동 방식 등도 바꾸어 사회 전체가 공정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 “전 지구적 수준에서 생태 위기가 닥치고 있는 시대에 강고한 국제연대를 구축해야만 하는 과제가 시급하다”고 했다.

“기후 변화 문제는 한 나라의 힘으로는 해소할 수 없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보수파가 여전히 강한데 지금까지 했던 방식으로는 기후 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 젊은 세대야말로 기후 변화라는 문제에 맞서 담대한 시스템 전환을 촉구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문화 등에서도 교류하는 젊은 세대가 새로운 아시아의 연대를 구축하길 바라고 있다.”

- 가디언과 인터뷰할 때도 우려한 사안이다. 한국만 해도 당장 일본 자유 여행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이는 곧 비행기 운항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선 자가용 비행기는 금지해야 한다. 나아가 프랑스처럼 단거리 국내선 비행도 폐지해야 한다. 나는 국내선을 이용하지 않고 철도로 이동하고 있다. 쓸데없는 출장과 여행을 자숙할 수도 있고, 비행기에 매기는 세금을 늘려서 이용을 제한할 수도 있다.”

-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전쟁 때문에 생겨난 에너지난이 기후 대응에는 낙관적이라는 분석도 나왔는데.

“에너지와 전력 비용 상승에 영향을 받는 건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에 비해 석유회사 등은 역대 최대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를 방치하는 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 2020년 9월 이 책을 출간하고 2년이 지났다. ‘저성장’ 논의가 진전됐다고 보는가. 출간 뒤 우려하는 사건이나 사안은 무엇인가. 긍정적인 움직임이나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앞서 적었듯이 소련 붕괴 후, 마르크스주의는 주류에서 다루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지만 최근 2년 동안 마르크스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여러 방송국과 신문 등에서도 마르크스를 크게 다뤄주는 일이 늘어났다. 기시다 정권이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거는 등 지금까지 했던 신자유주의가 흔들리니 자본주의를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런 변화에 내 책이 공헌한 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아직 기후 변화가 선거의 쟁점이 안 되고 있고, 커다란 진보가 일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일본의 ODA(정부 개발 원조)를 받아 방글라데시에서 건설되는 마타바리 석탄화력발전소를 반대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FFF(Fridays for Future, 미래를 위한 금요일)의 ‘마이너리티로부터 생각하는 기후 정의 프로젝트’의 청년들과 여러 메시지를 발신해왔지만, 일본에서는 사회문제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껏 선진국의 경제 성장에 외상으로 도움을 준 개발도상국에 보상 또는 배상을 생각해야 하는데, 너무나 큰 문제 대 사회운동의 작은 목소리라는 구도가 전혀 바뀌지 않아서 다 함께 좀 더 기세를 높여야 한다는 것을 매일 통감하고 있다.”

- 팬데믹 이후 생태와 자본주의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하는가.

“분명히 말해두겠다. 위기 전에 있었던 당연했던 세계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문제는 바이러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팬데믹은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는데, 지금껏 존재해온 구조적 모순이 드러났고, 진행되고 있던 사회 변화가 가속되었다. 그중에서도 격차 문제가 심각하다. 실물경제가 침체되어 일이나 집을 잃고 일상을 꾸리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한쪽에서 부유층은 매우 보기 드문 주가 덕에 금세 자산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증대시키고 있다. 디지털화와 자동화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속될수록 부의 집중은 한층 더 심각해질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야생동물 거래와 기업식 농업 경영을 위해 자연을 계속 난개발하면, 위기는 더욱 복합적으로 심각해질 것이다. 인간 사회와 자연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면 다른 신형 바이러스와 접촉할 가능성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무분별한 삼림 벌채를 그만두지 않으면 기후 변화도 더욱 진행된다. 급격한 환경 변화에 견디지 못한 동물도 큰 수가 줄어들 것이고, 동물이 이주하는 만큼 사회에 바이러스가 진입할 위험성도 높아진다. 팬데믹,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손실은 전부 연결되어 있고, 만성적 긴급사태로서 문명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다. 인류의 활동 범위는 자본주의의 세계화로 지구를 뒤덮을 정도가 되었고, 이제 지구상에 인류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이란 남아 있지 않다. 무엇보다 인류의 힘은 지나치게 비대해졌다. 하지만 그 힘으로도 자연의 지배를 실현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가뭄, 산불, 슈퍼태풍, 해수면 상승 등 인류로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자연의 회귀’를 일으켰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상황에서도 자본주의에 관해 적극적으로 논하는 것을 피하려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흐름이 계속해서 우세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인신세’ 논의에서는 오히려 ‘자본세(Capitalocene)’라는 용어를 쓰며 환경 위기의 근본적 문제는 자본주의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주장이 수많이 나오고 있다. 물론 생태적인 관점에서 하는 자본주의 비판, 인간이 손대지 않은 자연을 회복하자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 논의에서 다루는 것은 무한한 경제 성장을 추구하여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야 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라는 슬로건이 세계적으로 퍼지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시스템 전환을 목표하느냐는 것이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가 한국에서도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는 논의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는 전작인 <칼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두번째 테제)보다 쉬운 편인데.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를 쓰려고 마음먹는 것에는 기후 변화 문제가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파키스탄은 홍수 때문에 크나큰 피해를 보고 있다. 이상 기후를 방치하면 이런 자연재해가 점점 더 심해져 코로나 팬데믹과 비교할 수도 없는 장기적·비가역적 변화로서 난민 문제, 식량 문제, 전쟁 등을 일으킬 것이다. 일본 사회에는 위기감이 결여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생활을 새롭게 하고, 우리 미래를 다시 한 번 스스로 만들어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모두에게 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학술서가 아니라 읽기 쉬운 형식으로 출판했다. 결과적으로 그 목적을 어느 정도는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 학교 일이나 연구 말고 하는 일은

“사생활에서는 육아로 정신이 없다. 아이들과 놀거나 텃밭을 짓거나 여행을 가거나 한다.”

- 지금도 한국 경상대학교 사회과학한국(SSK) 공동연구원인가.

“그렇다. 정성진 교수와는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로 일본과 한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더욱더 깊게 교류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정성진 교수는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에 정통하지만, 반대로 나를 비롯한 일본의 연구자는 한국의 마르크스 연구를 잘 모른다. 더욱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코뮤니즘에서는 미래 사회로 갈수록 화폐와 사유재산을 늘리는 것을 목표하는 개인주의적 생산이 “협동적 부”를 함께 관리하는 생산으로 대체된다. 이를 이 책의 표현으로 바꿔 말하면 그야말로 ‘커먼’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그 전에도 ‘협동적’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했다. ‘게노센샤프트리히’라고 하는 단어에는 ‘협동조합적인’, ‘어소시에이션적인’ 같은 의미가 있는데, 보통은 ‘협동조합적인 생산’, ‘협동조합적인 생산수단의 공유’ 같은 식으로 사용했다.

그러니 ‘고타 강령 비판’에 등장한 ‘게노센샤프트리히’라는 단어의 유래는 마르크스의 이전 저작에 쓰였을 때와 다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무엇에서 유래했을까?

<고타 강령 비판>의 집필 시기를 염두에 두고 추측한 유래는 앞서 언급한 게르만족의 ‘마르크협동체’,즉 ‘마르크게노센샤프트’다. 마르크스가 공동 소유를 연구하면서 받아들인 지식이 <고타 강령 비판>의 한 문장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실은 ‘협동적 부’가 아니라 ‘협동체적 부’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협동체적 부 를 공동으로 관리한다고 읽으면 매우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다시 말해 앞선 인용문 전체가 의미하는 것은, 코뮤니즘에 의한 사회적 공동성은 마르크협동체에서 이뤄지는 부의 관리를 모델로 삼으며, 그것을 서유럽에서도 재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이는 결국 정상형 경제의 원리를 가리키며, 정상형 경제의 원리야말로 넘쳐흐르는 듯한 풍요로운 부를 실현한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풍요란 이것저것 죄다 무한하게 생산하는 풍요가 아니다. 그보다는 제6장에서 자세히 살펴볼, ‘커먼’이 가져다줄 ‘근본적 풍요’를 가리킨다.이것이야말로 마르크스가 생의 마지막 시기에 이뤄낸 이론적 대전환이다.

-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앞으로 계획은

“일본어로는 올해 마르크스의 <자본> 입문서를 출간한다. 그 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에서 펼치지 못했던 화폐와 국가의 문제를 탈성장과 관련지어 생각해보려 한다.”

어떤 방법으로 물에 희소성을 더하면 물을 상품화해서 가격을 매길 수 있다. 사람들이 무상으로 자유롭게 이용하던 ‘공공의 부’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물을 페트병에 담아서 파는 돈벌이가 생겨나고 ‘개인의 재산’이 늘어난다. 그에 따라서 화폐로 계측되는 ‘국가의 부’도 증가한다. 늦든 빠르든, 위기의 시대에는 최종적으로 앞서 언급한 사례들처럼 국가권력이 점점 노골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럴까?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사회의 온갖 관계를 상품화하고, 상호부조하던 관계마저 화폐 상품 관계로 바꿔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변화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상호부조의 요령도 상대를 헤아리는 마음가짐도 몽땅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위기와 직면해 불안해지면 사람들은 이웃이 아닌 국가에 의존하게 되었다. 위기가 심각할수록 국가의 강력한 개입 없이는 자신의 생활을 꾸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후 변화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원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벽을 세우고 환경 난민을 배제하고 지구공학으로 일부 사람들만 지키는 ‘기후 파시즘’이 닥칠까? 아니면 국가가 기업과 개인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철저하게 감시하여 처벌하는 ‘기후 마오쩌둥주의’가 도래할까?

어느 쪽이든 정치가와 테크노크라트의 지배로 희생되는 것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다.

-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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